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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백문백답] 동북포루를 왜 각건대(角巾臺)라 부를까?
정조의 설계의도를 엿보다
2020-05-08 17:34:31최종 업데이트 : 2020-05-08 17:33:26 작성자 : 시민기자   이강웅
방화수류정과 용연 위의 동북포루에게 각건대란 고유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각건대의 야경이다.

용연과 방화수류정과 어울리는 동북포루에 각건대란 고유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각건대의 야경.

동북포루는 방화수류정, 화홍문, 용연, 북암문과 이웃하고 있다. 이 일대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하나하나의 시설물도 아름답고 독특하지만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조화를  이루어 화성의 대표적명소가 되었다.

동북포루는 별칭으로 각건대(角巾臺)라 불리운다. 별칭이란 별도로 고유의 이름을 부여한 것으로 중요 시설물, 아름다운 건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시설물에 부여한다. 화성에선 4대문인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외에 화홍문, 방화수류정, 화양루, 그리고 각건대로 8개뿐이다.

동북포루를 왜 각건대라 불렀을까?
선비가 쓰던 관으로 각건이라한다. 각이 진 모습의 모자이다

동북포루의 별칭이 된 각건의 모습으로 선비가 쓰던 각이 진 관에서 각건이라함

동북포루의 상량문에 "사안(謝安)이 동산을 세운 뜻을 따서 이름을 각건이라 지었네"란 기록이 있다. 사안은 동진(東晉)때의 유명한 재상으로 은자(隱者)로 지내다가 동산에서 새롭게 출발해 재기한 인물이다.

또한 각건(角巾)은 모시나 베로 만든 머리에 쓰는 것으로 각(角)이 잡힌 관(冠)을 말한다. 이를 보아 은자가 쓰던 각건과 동북포루의 형태가 유사해 별칭을 정한 것으로 여러 자료에서 말한다. 문제는 여러 답사자들이 "동북포루 모습이 각건과 다르다"라고 지적하는데 있다.

각건 모양과 다를까?

용연과 방화수류전과 각건대로 불리는 동북포루가 어울려져 가장 아름다운 곳이됨

방화수류정, 용연, 북암문, 각건대가 조화를 이뤄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됨

동북포루를 보는 곳은 주로 방화수류정, 용연, 그리고 동암문쪽에서 보는 모습일 것이다. 시점이 다르니 달리 보일 것 같지만 언덕 위에 우뚝 선 모습은 어느 시점이나 유사하다. 각건으로 안 보이는 이유는 시점이 아니라 대상에 있다.

사람이 동북포루를 볼 때 포루로 보느냐, 대(臺)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다. 같은 동북포루가 두 개란 말인가?  그것이 아니고 집을 포함해서 보면 포루이고, 집이 없는 상태에서 보는 것은 대라는 의미이다. 아무 곳에나 서서 갖고 간 각건 그림을 먼저 보고, 다음에 동북포루를 보면서 머릿 속에서 포루에서 집을 지워 보면 각건의 모습과 유사함을 느낄 것이다.  

성 안에서 본 각건대의 모습,동암문과 방화수류정이 좌우로 있는 가운데에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성 안에서 본 각건대의 모습, 높은 산 위에 위치해 방화수류정과 동암문을 좌우로 두고 방어해준다

말장난이라 하겠지만 두 가지 근거가 있다. 하나는 "각건대"라는 명칭 자체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만일 집을 포함한 모습을 보고 각건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이름을 "각건대(臺)"로 짓지 않고 "각건루(樓)"라 지었을 것이다. 집이 없는 "대(臺)"를 본 모습이 각건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현판이 붙어 있지 않지만, 각건대라 부르는 것은  동북포루의 상량문이 근거이다. 동북포루의 상량문에 "사안(謝安)이 동산을 세운 뜻을 따서 이름을 각건이라 지었네"란 기록때문이다. 여기서 상량문 내용이 아닌 상량문 자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장대와 동암문쪽에서 본 각건대의 모습, 새벽에 안개가  끼었고 노송이 각건대를 지키고 있다

동암문쪽에서 본 새벽 안개 속의 각건대로 노송이 각건대를 늘 지켜주고 있다

성역 당시 고유문(告由文), 상량문, 비문 등 글과 개기(開基), 정초입주(定礎立柱), 상량 등 추택일시(推擇日時), 그리고 시설물의 이름 짓기, 현판의 글씨쓰기, 각자(刻字) 등은 엄격한 절차를 따랐다. 이런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염두에 둔다면 상량문을 지을 시점에는 당연히 동북포루는 집이 없는 시점이다. 따라서 집을 지을 대(臺)의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는 시점(時點)이었을 것이다. 집이 없는 "대(臺)"를 본 모습이 바로 각건의 모습이다.

각건대가 각건을 닮았는지 아닌지 문제보다 더 큰 이슈는 화성 시살물 중 위계(位階)가 한참 뒤인 포루(舖樓)에 왜 이름을 별도로 부여했을까?에 대한 해석이다. 역사학자, 소설가, 예술가, 건축학자, 인문학자 등이 해석하는 내용은 각자의 전공 내에 머무른다. 정조(正祖)의 생각을 알고 싶다.

각건대와 용연과 방화수류정을 함께 담은 사진으로 적외선 촬영 사진이다. 푸른색이 흰색으로 나오고 파란색이 검게 나온다

방화수류정, 용연, 각건대의 아름다움을 적외선 촬영으로, 녹색이 희게, 푸른 하늘이 검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화성은 본래 전투시설이므로 시설물의 위계는 유지하되 전략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동북포루에 별칭을 주었을까, 아니면 각루급의 위치인데 포루를 세운 미안함에 별칭을 주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하찮은 포루에 위계를 뛰어넘어 그 쓰임새를 인정하고 별칭을  지어준 정조(正祖)의 실용정신과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각건대다.

화성, 동북포루, 각건대, 이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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