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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암문(暗門)은 비밀통로일까?
覘正祖之圖 : 정조의 의도를 엿보다
2020-06-04 08:19:44최종 업데이트 : 2020-06-04 08:19:40 작성자 : 시민기자   이강웅
성(城) 자체는 폐쇄의 개념인데 문(門)은 소통 내지 개방의 개념이다. 문을 적으로부터 어떻게 방어(防禦)하느냐가 중대한 과제다

성(城) 자체는 폐쇄의 개념인데 문(門)은 소통 내지 개방의 개념이다. 문을 적으로부터 어떻게 방어(防禦)하느냐가 중대한 과제다

성(城)에서 문(門)은 쓰임새와 관계없이 매우 중요하다. 성 자체가 폐쇄성이 강한 시설인데 문 만은 성 안팎의 소통 시설이다. 이런 문을 적으로부터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화성에는 대문 4곳, 암문 5곳, 수문 2곳이 있다. 5곳의 암문은 동암문, 북암문, 서암문, 서남암문, 남암문이다. 

의궤에 암문(暗門)을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내어 두어 적으로 하여금 그 길을 알지 못하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암문은 깊숙하고(奧) 후미진(僻) 곳에 설치하여 적군이 그 길을 모르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은폐(隱蔽)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화성은 과연 어느 정도 이 취지를 따랐을까?
암문의 요체는 깊숙하고(奧), 후미진(僻)이다. 즉 은폐(隱蔽)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서암문(西暗門)의 모습인데 그냥 성의 일부처럼 보인다. 은폐 설계의 모범이다.

암문의 요체는 깊숙하고(奧), 후미진(僻)이다. 즉 은폐(隱蔽)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서암문(西暗門)의 모습인데 그냥 성의 일부처럼 보인다. 은폐 설계의 모범이다.

암문의 설치장소와 외부모양으로 나누어 평가해본다. 서남암문은 용도를 통하여 서남각루와 소통하는 문이기 때문에 평가에서 제외한다. 암문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첫째, 설치장소를 살펴보면 동암문, 북암문, 서암문 모두 양쪽이 높은 지형이고, 그 사이 움푹 내려간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되어 암문의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남암문은 성 안 주택가와 성 밖 장터 사이 한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어 암문의 설치 취지에 안 맞는다.

둘째, 사용자재를 보면 동암문, 북암문, 서암문 모두 벽돌을 사용했다. '검정색'하면 언뜻 은폐가 떠오르지만 좌우의 성은 석성(石城)으로 돌이라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대비가 되어 은폐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눈에 잘 뜨인다. 
팔달산 능선의 서남암문의 설치목적은 다른 암문과 다르다. 용도를 통해 용도의 끝에 있는 서남각루로 통하는 문이다. 더욱이 은폐와는 관계없는 듯 서남포사를 머리에 이고 있다.

팔달산 능선의 서남암문(西南暗門)의 설치목적은 다른 암문과 다르다. 용도(甬道)를 통해 용도의 끝에 있는 서남각루로 통하는 문이다. 더욱이 은폐와는 관계없는 듯 포사(舖舍)를 머리에 이고 있다.

셋째, 모양을 살펴보면 동암문과 북암문은 각각 대원여장(大圓女墻)과 원(圓)여장을, 남암문과 서암문은 각각 비예와 평(平)여장을 하였다. 대원여장, 원여장, 비예 모두 인접한 성의 여장에 비해 크기도 크고 모양도 돋보이는 형상이다.

종합하면 위치는 대체로 암문 설치 목적에 맞는 곳을 선택했으나, 사용자재, 색상, 모양이 암문 본래의 취지인 은폐와 맞지 않고, 오히러 눈에 띄는 계획으로 볼 수 있다. 남암문은 위치까지도 은폐와 너무 동떨어진 상황이다.

왜 눈에 띄게 하였을까?

돌로 쌓은 성의 흰색과 대비되는 검은색 벽돌 외장 재료나 큰 원형여장을 사용하여 성의 여장보다 돋보이게 한 것은 은폐의 개념과는 정반대다.

돌로 쌓은 성의 흰색과 대비되는 검정색 벽돌 외장재료나 큰 원형여장을 사용하여 성의 여장보다 돋보이게 한 것은 은폐의 개념과는 정반대다.

우선 암문의 설치목적을 살펴본다. 의궤에 "성 안으로 거둬들이는 사람, 가축, 수레, 양식 따위는 다 이 문을 통하게 된다"라고 기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암문"이란 단어가 주는 "비밀스러움"이나 "은밀함"과 달리 민간인의 빈번한 통로이다.

또한 "암문이란 것은 성의 사잇문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팔달문은 지역 간 통로, 대규모 통로, 공식적 통로이고, 남암문은 지역 내 통로, 소규모 통로, 백성의 통로다. 성 밖 백성의 실질적 통로로 대문보다 암문이 사용 인원이나  빈도가 더 많았을 것이다.

암문이 적에게 노출되면 위험하지 않을까?

당시 고급자재인 벽돌로 만들고 성과 대비되는 큰 원형여장이 왕관처럼 세워진 북암문을 한 가족이 통과하고 있다. 암문은 숨겨진 문이 아니고 빈번히 사용되는 백성의 문이었다.

당시 고급자재인 벽돌로 만들고 성과 대비되는 큰 원형여장이 왕관처럼 세워진 북암문(北暗門)을 한 가족이 통과하고 있다. 암문은 숨겨진 문이 아니고 빈번히 사용되는 백성의 문이었다.

암문 계획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부분이 전시(戰時)대책으로, 위급할 경우 실시하는 암문봉쇄(暗門封鎖)다. 의궤에 "흙을 쌓아서 이 문을 막으면 성과 똑같게 되는데 형편에 따라 통해 놓기도 하고 막기도 하여 임기음변하기에 편하게 만들었다"란 기록이 있다. 위급 시 흙으로 메워 암문을 봉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짧은 시간에 흙으로 메우기 위해서는 위에서 아래로 쏟아 붓는 것이 유리하다. 동암문, 북암문, 서암문은 사용자재와 여장의 형태가 암문스럽지 않지만, 위치는 양쪽이 높고, 그 아래 푹 꺼진 곳을 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남암문은 좌우 높은 내탁부에 흙을 쌓아두었다가 아래로 쏟아 부었다. 서암문 경우 위급시 우선 문 높이까지 메운다면 18입방미터의 흙이 소요되고 30분 내 봉쇄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
서암문은 은폐 설계도 모범이지만, 보기만 해도 봉쇄 설계도 모범이다. 암문을 1차로 봉쇄하는데 필요한 최소 흙 량은 18입방미터로 30분정도로 본다

서암문(西暗門)은 은폐 설계도 모범이지만, 보기만 해도 봉쇄 설계도 모범이다. 암문을 1차로 봉쇄하는데 필요한 최소 흙 량은 18입방미터로 봉쇄에 30분정도로 본다.

화성의 암문은 백성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오히려 눈에 잘 띄도록 계획했다. 크고 둥근 원여장이나 검정색 벽돌 자재를 사용한 것이 그 이유다. 성역 당시로는 고급자재인 벽돌과 멋진 큰 원여장으로 치장하였다. 화성을 상업의 도시, 자족의 도시로 만들 계획을 한 정조는 암문을 이용하는 상공업에 종사하는 하층민 백성에게 자존심을 세워주는 선물을 한 것이다.
암문의 의미를아는지 모르는지 젊은 연인 한 쌍이 동암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암문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젊은 연인 한 쌍이 동암문(東暗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전쟁기간과 평시기간을 고려한 현실적 배려가 배어있는 암문이다. 이 세상 어느 성의 암문과 다른 화성만의 암문이다. 화성의 암문을 보면서 정조의 애민사상(愛民思想)은 사상이 아니라 실천임을 알았다. 오늘도 머리 숙여 암문(暗門)을 빠져나가며 정조(正祖)의 의도를 엿보았다. 화성 암문은 역발상(逆發想)의 효시(嚆矢)다.

화성, 성역의궤, 암문, 이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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