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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문화유산,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연결해야
한문 기록 국역으로 누구나 읽게 해야
2020-06-14 15:37:17최종 업데이트 : 2020-06-19 10:58:38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한문으로 된 현판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문으로 번역한 글을 함께 전시하는 것이 관람객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한문으로 된 현판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문으로 번역한 글을 함께 전시하는 것이 관람객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KBS 2TV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인기다. 송가네의 이혼 스토리로 다소 과한 설정이었지만, 공감이 가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드라마 중에 사돈 관계인 남녀의 사랑이 볼만하다. 의사인 윤재석은 사돈 송다희를 향한 마음이 남다르다. 둘은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서 서로 가깝게 다가간다. 높은 곳에서 멀리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눈다.

사돈 관계인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장소가 바로 화성이다. 팔달문 왼편을 따라 화성 관람 매표소를 지나면 성곽을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이 가파른 계단에 앉아서 넘을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이 광경에 시청자들도 마음이 안타갑지만, 도심 한가운데 아름다운 성곽의 모습이 겹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달콤하게 물들고 있다.

화성은 역사적 유적이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런 성이 우리에게는 단순히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다. 드라마 촬영에 나오는 것처럼, 남녀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성곽 계단을 올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어, 운동하기 위해 오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상에 수도승처럼 서 있는 소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한다.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즐기는 장소다. 멀리서 온 친척들이 드라마 촬영 장소 화성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기자가 안내했다.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서장대가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는 성곽을 자세히 살필 수 있고, 멀리 수원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장대에서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연을 치른 을묘년 행차 때 장대한 군사 사열식인 성조식(城操式)을 치렀으며, 이를 기념해서 친필로 '화성장대(華城將臺)' 현판을 썼다. 그리고 화성과 장용영 군사들의 위용에 만족감을 표현한 시를 새긴 '어제화성장대시문(御製華城將臺詩文)'을 썼는데, 그 현판이 걸려 있다. 서장대는 화성에서 유일하게 어제(御製·왕이 지은 글), 어필(御筆·왕이 쓴 글씨)이 함께 게시된 건축물로 수원 화성에서 가장 격이 높다.

 현재 현판은 복원한 것이다. 일성록에는 이만수에게 명해 어제시를 써서 내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 현판 원본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었기 때문에 복원할 수 있었다. 현판은 '화성성역의궤'에 따라 잣나무를 사용했다. 바탕은 하얀색, 글자는 검은색으로 칠했다. 왕의 시문 현판은 높은 위계의 칠보문(七寶紋)을 작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테두리에 칠보문을 그렸다. 현판은 원래 서장대 2층에 걸려 있었지만, 시민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1층에 걸었다.
  화성기적비명은 화성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한문으로 된 기록으로 관람객이 다가서기 어렵다. 뒷면 마지막에 '정조의 승하로 화성기적비 건립의 뜻을 이루지 못하다 1991.12에 수원시장이 건립하다'라는 표현만 읽을 수 있다. 전문은 별도 안내판이나 QR 코드 등을 이용해 국문 번역문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화성기적비명은 화성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한문으로 된 기록으로 관람객이 다가서기 어렵다. 전문은 별도 안내판이나 QR 코드 등을 이용해 국문 번역문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면이 있다. 서장대 현판은 시민들이 편하게 보기만 할 뿐 마음에는 담을 수 없다.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행한 친척이 "형님, 이거 읽고, 해석 좀 해 주세요"라고 하는데 부끄러웠다.

장안문 장안공원에 있는 화성기적비명도 마찬가지다. 이 비에 화성 성역이 끝난 후 1797년(정조 21)에는 왕명에 따라 현륭원을 화성으로 옮기면서부터 화성 성역이 완료되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중신 김종수가 화성기적비를 작성하였지만, 왕의 재가가 난 후에도 담당 관리들이 계속 바뀌는 터에 비석으로 세워지지는 못하고 의궤에만 남아있었다. 현재 있는 비는 1991년 12월에 수원시장 명의로 건립한 것이다. 여기에는 성곽 공사 기간 당시 동원된 인부 수 그리고 정조대왕의 정치 철학 등이 담겨 있다.
 화성복원정화기념비는 좌우 측면에는 화성축성 장비인 거중기 등을 새겼다. 뒷면에는 성의 모습을 복원한 내용이 한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글을 관람객이 읽기 어렵다. 사람 키보다 높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글의 내용을 읽을 수 있도록 별도 안내판이 있으면 좋겠다.

화성복원정화기념비는 좌우 측면에는 화성축성 장비인 거중기 등을 새겼다. 뒷면에는 성의 모습을 복원한 내용이 한글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 키보다 높고,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아 글을 읽기 어렵다. 


한문으로 남은 기록을 국문으로 번역해서 많은 사람이 읽게 하는 문화유산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처럼 '그림의 떡'처럼 바라보는 문화유산 관람은 조상의 뜻도 아닐 것 이다. 같은 크기가 어려우면, 규모를 작게 해서라도 국문 번역 내용을 걸으면 된다.

강원도 홍천에 거주하는 이순영씨는 "요즘은 QR 코드를 그려 넣어 관람자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다"고 제안 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니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한글 번역 안내를 병행해 관람객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화재 관리 정책에 공감하고 있으며, 관련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한글 안내 정보 제공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문화유산은 과거의 것이지만, 현재로 불러와야 한다. 그리고 미래로 남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세대가 문화재를 이해하고 즐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서장대 정조대왕 시문과 기적비 주변에 국문 번역 안내판을 설치하자. 정조대왕의 현판 글의 내용을 이해하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당시 군사들에게 보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기적비 내용도 관람자들이 현장에서 읽는다면 자긍심을 느끼고 우리 조상에 대한 고마움을 가질 수 있다. 문화재를 눈으로만 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경험이 없다면 박제된 유물에 지나지 않을 것 이다. 

조상의 문화유산은 많은 시간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 성곽에 돌 하나, 나무 하나까지 조상의 정성과 사랑이 남긴 것이다. 이를 보존하고 후대까지 지키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다. 고증을 거쳐 제대로 복원하는 것만큼, 그것을 후손들이 제대로 즐기도록 하는 것도 관리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윤재열, 화성, 수원성, 서장대, 화성기적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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