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수원화성, 온돌시설 갖춰 추위 피해…동남각루‧서북각루 등
정조의 백성사랑 느낄 수 있는 비밀 구조물 곳곳에 설치… 눈‧비‧바람 대피 공간 조성
2020-02-16 18:52:45최종 업데이트 : 2020-02-17 15:08:31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16일 눈보라가 치고 꽃샘추위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수원화성을 돌아보았다

16일 눈보라가 치고 꽃샘추위로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수원화성을 돌아보았다

수원화성은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현재의 장소로 옮긴 후 축성한 성이다. 정조대왕은 부친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천봉하고 난 후 쌓은 성이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구현이라는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요, 후에 이곳을 도읍으로 삼기위한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한 곳이었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축성하였으며, 가장 강력한 군대인 장용외영을 이곳에 주둔시켜 자신의 꿈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요새로 삼았다.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이 20만 덩이의 석재, 53만장의 기와, 69만장의 벽돌, 2만 6000주의 목재, 1845명의 장인이 거중기 등 각종 기구를 시용하여 1794년부터 2년 8개월 만에 완공한 자연친화적인 성이다. 수원화성은 성을 축성하면서 각 공사구간별로 책임을 맡은 모든 장인들의 이름을 기록한 공사실명판을 제작하여 성벽에 부착함으로써, 자신이 축성한 곳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였으며, 후대에 누가 그곳을 책임지고 축성하였는지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사진 위는 서북각루 자료. 아래는 동남각루, 두 곳 모두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다

사진 위는 서북각루. 아래 왼쪽은 동남각루로 두 곳 모두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다


수원화성 시설물을 돌아보면 정조의 애민정신이 느껴진다 

수원화성을 한 바퀴 돌다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시설물 중 연도와 굴뚝이 서 있는 곳이 있거나, 곳곳에 눈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19일이 우수인데 16일 아침부터 기온이 떨어지면서 눈이 날리기 시작한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눈보라가 치는 날 수원화성을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남수문 위에 자리한 동남각루는 지휘소 겸 인근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팔달문과 남공심돈·남암문(두 곳은 현재 유실되었다) 남수문 등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눈보라가 몰아쳐 눈을 뜨지 못할 정도지만 남수문에서 동남각루를 항해 걸음을 옮겼다. 눈보라가 치는 중에도 확인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위는 봉돈 안에 마련한 방(자료사진). 아래는 봉돈 전경과 한옆에 보이는 환기를 위한 까치살창

사진 위는 봉돈 안에 마련한 방(자료사진). 아래 왼쪽 사진은 봉돈 전경과 한옆에 보이는 환기를 위한 까치살창(아래 오른쪽)


동남각루는 화성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각루는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함께하였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계단을 올라 동남각루를 돌아보니 연도와 굴뚝이 보인다. 연도와 굴뚝이 있다는 것은 이곳에 온돌방이 있다는 뜻이다. 동남각루를 돌아 뒤편으로 가니 아궁이가 있다. 수원천에서 치고 올라오는 바람으로 인해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이 추울 것을 염려해 온돌방을 놓은 것이다. 이런 온돌방은 서북각루에도 굴뚝과 온돌방이 보인다. 수원화성의 구조물들을 돌아보면 이렇게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구조물들이 눈에 띈다.

사진 위는 동복포루. 아래 작은사진은 포루의 아래 숨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공간

사진은 동복포루. 작은사진은 포루의 아래 숨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공간


눈보라가 치는 날 돌아본 수원화성,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동남각루를 지나 봉돈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눈보라가 더 심하게 몰아친다. 며칠 후면 우수인데 '꽃샘추위'인 듯하다. 항상 입춘이 지나고 나면 한두 차례 꽃샘추위가 닥친다. 동삼치를 지나 공사 중인 동이포루를 지난다.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뛰어나오게 만든 시설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그리고 봉돈을 앞에 두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출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출입이 자유로웠을 때 봉돈 안에도 병사들이 기거할 수 있는 방이 있었다. 창문은 까치살창을 내어 환기를 도왔다.

치·포루 등을 거쳐 창룡문을 돌아본 후 동북노대를 지난다.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곳으로 동북노대는 동장대와 동북공심도 가까이에,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소재한 서장대 뒤편에 자리한다. 동북노대를 거쳐 관람이 중지된 동북공심돈에 도착했다.

동장대인 연무대를 돌아본 후 동암문을 지나 높은 곳에서 군사들이 적을 관찰할 수 있는 동북포루에 도착했다. 눈보라가 심하게 치기 때문인가? 화성을 돌아보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동북포루 역시 높은 곳이 자리하고 있다.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인 동북포루는 정자와 같은 형태로 이층으로 올리고 아래편에는 군사들이 눈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또한 이 공간은 숨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비밀공간이기도 하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 돌아본 방화수류정과 용연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 돌아본 방화수류정과 용연

보물 제1709호인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방화수류정과 북수문인 화홍문 역시 군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평소 같으면 꼼꼼히 돌아보아도 40분 정도면 충분한 시간인데, 눈보라를 맞으며 걷다보니 한 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바람도 점점 세차게 불고 눈보라가 거세진다. 더 이상 돌아본다는 것이 어려울 듯하다. 화홍문에서 수원천을 따라 내려오면서 생각해 본다. 정조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화성의 시설물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정조대왕의  마음을 읽게 만든다.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날 돌아본 수원화성의 시설물들. 그저 겉으로 보고 걷기보다는 그 시설물에 얽힌 정조대왕의 마음을 읽어보자. 정조대왕이 백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기 때문에 그 시설물들이 한결 돋보이는 듯했다.

수원화성 시설문, 온돌방, 눈‧비‧바람, 눈보라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