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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를 둘러싼 성(城)은 과연 협축(夾築)일까?
覘正祖之圖, 정조(正祖)의 의도를 엿보다
2020-05-23 00:13:42최종 업데이트 : 2020-05-25 11:31:27 작성자 : 시민기자   이강웅
팔달산 정상은 화성 전체는 물론 용인 석성산과 오산 독산까지도 조망되는 화성 최고의 군사요충지다.

팔달산 정상은 화성 전체는 물론 용인 석성산과 오산 독산까지도 조망되는 화성 최고의 군사요충지다

서장대(西將臺)가 있는 곳이 팔달산 정상이다. 의궤에 "100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고 팔달산 정상부의 전략적 입지를 매우 좋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팔달산정(山頂)에는 최고 지휘부인 서장대와 장대를 보좌하는 서노대(西弩臺), 그리고 후당(後堂)이 계획된다. 이를 위해 사방70보(步) 정도의 평평한 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팔달산정은 온통 암반으로 들쑥날쑥하고 심한 경사지였다.
팔달산정에 서장대, 서노대, 후당을 지을 평평하고 너른 터를 만들기 위해 서장대 앞에 5척의 석축을 만들고, 또 그 앞 낭떠러지에는 말뚝 박고, 모래주머니와 돌을 쌓고, 흙을 가져다 메우는 어려운 공사를 했다.

팔달산정에 서장대, 서노대, 후당을 지을 평평하고 너른 터를 만들기 위해 서장대 앞에 5척의 석축을 만들고, 또 그 앞 낭떠러지에는 말뚝 박고, 모래주머니와 돌을 쌓고, 흙을 가져다 메우는 어려운 공사를 했다.

유용한 터를 만들기 위해 서장대 앞쪽 가파른 경사면에 돌과 모래주머니를 쌓은 후 말뚝으로 지탱하고, 그 안에 흙을 붙여 평평한 터를 만들었다. 흙을 돋운 높이가 3장(丈)이고, 평평하게 만든 땅이 사방 70보로 대규모이면서 매우 어려운 공사였다. 3장은 약10m이고 70보는 82m다.

어려운 공사보다 시민기자가 눈여겨 본 것은 화성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서장대를 둘러싼 특이한 성이다. 성 안팎 모두 돌로 쌓은 협축이기 때문이다. 협축으로 밝혀지면 "화성은 모두 내탁으로 이뤄졌다"는 정설이 깨진다.

팔달산정의 성은 과연 협축(夾築)일까?

여장 3척과 통로 8척을 합한 11척 두께의 성을 돌로 안팎에 쌓았다. 4척 정도를 노출시키고 나머지 아래 부분은 흙으로 메웠다.

여장 3척과 통로 8척을 합한 11척 두께의 성을 돌로 안팎에 쌓았다. 4척 정도를 노출시키고 나머지 아래 부분은 흙으로 메웠다.

성을 쌓는 방식에는 2가지가 있다. 순천 낙안읍성과 같이 성의 안쪽과 바깥쪽 모두 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이런 방식을 "협축(夾築)"이라 칭한다. 수원 화성의 경우처럼 성 밖 한 면은 돌로 쌓고 성 안은 자연의 산(山)이나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붙이는 방식을 "내탁(內托)"이라 한다. 협축과 내탁은 성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이고 개념이다.

팔달산정에 올라 실측도 하고 안팎으로 돌로 쌓은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먼저 범위는 서암문부터 정상이 끝나는 곳까지 44보로 약52m다. 두께는 여장두께 90cm와 여장에 붙은 통로 2.4m를 합하면 최소 3.3m가 된다. 최소라고 한 것은 땅 밑의 두께는 아무래도 땅 위보다 더 두꺼울 것이기 때문이다.
협축형식으로 성 안쪽에도 돌로 성을 쌓은 팔달산 정상의 성으로 서장대와 서노대를 감싸고 있다. 서암문 북단에서 팔달산정이 끝나는 지점까지 44보로 약 52m 구간이다.

협축형식으로 성 안쪽에도 돌로 성을 쌓은 팔달산 정상의 성으로 서장대와 서노대를 감싸고 있다. 서암문 북단에서 팔달산정이 끝나는 지점까지 44보로 약 52m 구간이다.

높이는 성 밖에서 보이는 성 높이와 같은 높이다. 안쪽 노출된 부분의 높이는 1m에서 1.4m 사이로 불규칙하다. 노출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아래 부분은 모두 흙으로 메워진 상태다.

끝으로 설치된 구멍은 전체 구간의 절반 정도 구간인 약 35m정도에 구멍을 아래 위로 내었다. 노출된 부분이 구멍 바로 아래까지인 것으로 보면 사람이 구멍을 할용하기 위해 노출시킨 것이 확실하다.
여장 안으로 약 2.4m 폭의 통로가 있고, 협축형식의 돌로 쌓은 성이 1.2m만 노출되어 있고, 나머지 아래 부분은 흙으로 메워져있다.

여장 안으로 약 2.4m 폭의 통로가 있고, 협축형식의 돌로 쌓은 성이 1.2m만 노출되어 있고, 나머지 아래 부분은 흙으로 메워져있다.

협축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 위해 찾아본 여러 문헌에도 정의나 조건이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즉 협축이란 "성벽의 기저부(基底部)와 성 내벽의 상당 부분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로, 내탁은 "성벽의 외면은 지상에 노출되지만 내면은 기저부를 포함한 대부분이 지하에 묻혔거나 내벽을 암반이나 생토면(生土面)에 의지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서장대를 둘러싼 성의 상태와 비교해 보면 안팎으로 돌로 쌓은 점은 협축과 일치한다. 하지만 성 안쪽  전체 높이의 3분의 1정도만 노출되고 나머지는 묻혀있는 상태다. 이 노출 정도를 어떻게 보느냐가 협축이냐 내탁이냐를 판단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순천 낙안읍성의 성 안팎 모습으로 초가집이 있는 곳이 성 안이고,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성 밖이다. 성 안팎 모두 성의 기저부(基底部)까지 성면(城面)이 노출돼 있다. 전형적 협축의 모습이다.

순천 낙안읍성의 성 안팎 모습으로 초가집이 있는 곳이 성 안이고, 사람이 서 있는 곳이 성 밖이다. 성 안팎 모두 성의 기저부(基底部)까지 성면(城面)이 노출돼 있다. 전형적 협축의 모습이다.

팔달산정 성면의 노출정도가 협축의 조건인 "상당 부분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에서 "상당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까? 30%정도를 상당 부분이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론은 "팔달산정의 성은 협축이 아니다"가 맞지만 화성에서 매우 특이한 형태를 한 것이 아쉬워 시민기자는 "팔달산정의 성은 협축형식을 한 내탁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왜 이곳에 이런 형태의 특이한 구조를 하였을까?

팔달산 정상 서쪽의 지형을 보면 바위들로 울퉁불퉁하고 급경사지로 되어 있다. 이곳에 다른 곳과 똑같이 돌로 성을 쌓으며 흙을 메우는 공사를 했다면 성이 자빠지는 전도(轉倒)의 위험이 크다. 따라서 시공 안전과 구조 안전을 위해 성 높이와 같은 두께만큼 모두 돌로 안팎으로 성을 쌓은 것이다.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을 둘러싼 성은 사례를 찾기 힘든 형식의 성이다. 매우 귀중한 자료로 잘 보존할 의무가 있다. 다음 편에는 왜 이런 형식의 성을 쌓았는지? 왜 성에 큰 구멍을 내었는지?에 대한 비밀을 세계(?) 최초로 소개할 예정이다.

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을 둘러싼 성은 사례를 찾기 힘든 형식의 성이다. 매우 귀중한 자료로 잘 보존할 의무가 있다. 

서장대를 둘러싼 성이 특이한 형태를 한 이유를 시공안전과 구조안전으로 돌렸다. 이는 이유 중 하나는  맞지만 구차한 이유다. 사실은 깊은 전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 기사의 분량 관계로 바로 다음 편에 협축방식과 구명에 숨겨진 비밀을 소개할 예정이다. 오늘은 원래  협축이냐? 아니냐? 까지다.

한 가지 형식에 매이지 않고 지형에 따라 변화무쌍한 시도를 한 팔달산정의 성 쌓기에서 정조(正祖)의 실험정신을 엿보았다.
   

서장대, 협축, 성역의궤, 이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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