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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를 둘러싼 성은 협축(夾築)일까?
覘正祖之圖 : 정조의 의도를 엿보다
2020-05-29 21:07:32최종 업데이트 : 2020-05-30 17:44:50 작성자 : 시민기자   이강웅
서장대에서 본 수원 시가지 야경, 가까이 행궁이 보이고, 멀리 플라잉 수원 오른쪽으로 용인 석성산도 보인다

서장대에서 본 수원 시가지 야경, 가까이 행궁이 보이고, 멀리 플라잉 수원 오른쪽으로 용인 석성산도 보인다

팔달산 정상에 대해 의궤에 "100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고 전략적 입지를 매우 좋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로 팔달산정에는 최고 지휘부인 서장대(西將臺)와 이를 보좌하는 서노대(西弩臺)와 후당(後堂)을 세웠다.

입지나 시설물보다 시민기자의 눈에 띤 것은 서장대를 둘러싼 성(城)이다. 성 바깥쪽이나 안쪽이나 모두 돌로 쌓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혹시 화성에서 유일한 협축이 아닐까? 지난번 기사에서 따져본 결과 "협축형식으로 쌓은 내탁"으로 결론을 냈다.

이곳에 왜 이런 형식의 성을 쌓았을까?
서암문에서 팔달산정이 끝나는 지점까지 협축형식의 성을 쌓은 후 일부만 노출시키고 나머지는 흙으로 메웠다

서암문(西暗門)에서 팔달산정(山頂)이 끝나는 지점까지 협축형식의 성을 쌓은 후 일부만 노출시키고 나머지는 흙으로 메웠다

이유를 살피기 전, 성의 현황을 보면 길이는 44보(약52m), 높이는 3.5m, 성을 잘라본 단면(斷面)은 아래 폭이 4.2m, 위쪽 폭이 3.5m, 성 안쪽에는 지상으로 1m에서 1.4m사이로 노출되고 그 아래 부분은 흙으로 메워진 상태다.

서암문(西暗門)으로 나가 성 밖에서 보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의 경계를 따라 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서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간다면 성의 높이가 지금의 2배는 넘을 것이다. 절묘한 노선 선택이다.


공사 일정을 보면 서성(西城)의 착수는 공사 첫해인 갑인년 8월20일이고, 서장대 공사는 기공식(開基)이 8월11일, 기둥기초와 기둥세우기(定礎立柱)가 9월10일, 상량(上樑)이 15일, 완공(成)이 29일이다. 서장대 공사는 착수부터 기초까지 31일, 완공까지 50일이 소요됐다.

일정 중 특기할 것은 서노대(西弩臺)는 다음 해에 공사를 한 점, 그리고 7월12일(姑停)부터 8월1일(更始)까지 20일간 화성 공사 전체를 중단한 것이다. 중단을 하면서 내건 조건이 '서늘해 질 때까지'라고 한 것을 보면 중단 이유는 너무 더운 날씨 때문이다.  

서장대 공사는 화성 성역 첫해 8, 9월에 이뤄졌다. 반면에 서노대는 서장대 완료 후 대략 4개월 후 착수했다

서장대 공사는 화성 성역 첫해 8, 9월에 이뤄졌다. 반면에 서노대는 서장대 완료 후 대략 4개월 후 착수했다
 

이제는 이곳에 이런 형태의 성을 쌓은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낭떠러지 끝을 따라 성을 쌓고 성 안에 흙을 운반하고, 쏟아 붇고, 다지는 연속적 작업에 성벽이 쓰러질 우려가 많다. 시공과 구조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전편에 말씀 드렸다.

둘째, 공사기간인 8월과 9월은 장마철로 비가 올 경우 토사 운반은 불가능하고, 흙이 유실되고, 흙은 죽탕이 된다. 흙으로 메우는 것보다 돌로 쌓는 것이 오히려 인력, 경비, 공사기간의 낭비를 막는 방법임을 말해준다. 흙으로는 우천에 공사를 못해도 돌은 가능하다. 

셋째, 공사장소인 팔달산정(山頂) 주변은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어 흙을 구하기 힘들고, 위치는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운반도 힘들다. 내탁에 필요한 막대한 량의 흙을 조달하거나 운반하는데 소요되는 인력과 경비와 시간에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서장대 밑은 암반으로 이뤄졌다. 지금도 원래의 암반을 볼 수 있다. 장대석 밑에 누렇고 다듬지 않은 돌이 원래 암반이다.

서장대 밑은 암반으로 이뤄졌다. 지금도 원래의 암반을 볼 수 있다. 장대석 밑에 누렇고 다듬지 않은 돌이 원래 암반이다.

하지만 돌은 팔달산 정상 인근의 암반에서  벌석(伐石)하여 쓸 수 있으므로 재료의 획득이나 운반이 흙보다 유리하다. 이에 소요되는 인력, 장비, 공사기간을 절약할 수 있다.

넷째, 흙으로 내탁을 할 경우  성 안쪽에 흙을 붙이고 널리 펼쳐야함으로 가뜩이나 좁은 터를 잠식하게 된다. 돌로 협축형식으로 성을 쌓고 이를 내탁으로 써먹는다면 어렵게 만든 유용한 터를 100% 활용할 수 있다.

협축형식으로 돌로 성을 쌓은 후 이를 내탁으로 활용하였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어렵게 만든 평평한 터를 잠식하지 않았다. 흙으로 내탁을 하였다면 많은 터를 내탁에 빼앗겼을 것이다.

협축형식으로 돌로 성을 쌓은 후 이를 내탁으로 활용하였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어렵게 만든 평평한 터를 잠식하지 않았다. 흙으로 내탁을 하였다면 많은 터를 내탁에 빼앗겼을 것이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서장대를 둘러싼 성에 구멍을 설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성(體城)에 구멍을 내려면 흙 속에서는 불가능하고  돌로 안팎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체성에 구멍을 내야만 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글이 필요 없다. 우리 모두 서장대에 올라 시가지의 멋진 모습만 조망하지 말고 성에 올라 보자. 성에 올라 여장에 있는 원총안 구멍으로 성 밖을 내다보고 다시 근총안을 통해 성 밖을 보자. 성 밖 어느 지점이 보일까요?

맨 위 여장의 구멍으로 성 밖을 내다보면 성 아래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감시 사각지대가 생겨 여장의 기능이 상실됐다.

맨 위 여장의 구멍으로 성 밖을 내다보면 성 아래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감시 사각지대가 생겨 여장의 기능이 상실됐다.

시민기자가 직접 보니 성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먼 곳만 보인다. 즉 급경사라서 성 아래와 중간거리까지 감시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한마디로 "여장의 기능이 상실"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적을 먼저 보지 못하면 바로  패배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이러한 감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체성에 구멍을 내어 성 아래를 감시할 현안(懸眼)을 설치해야 했던 것이다. 

결론은 성 위에 있는 여장의 원총안과 근총안은 먼 거리에 대한 감시역할을 맡기고, 아래의 체성에 설치한 위아래 구멍은  감시 사각지대인 가까운 거리에 대한 감시역할을 담당시킨 것이다. 대대적으로 체성에 현안을 배치한 유일한 사례가 된다. 협축방식으로 돌로 안팎에 성을 쌓고, 구멍을 내고, 필요한 부분만 노출시키고, 나머지부분은 메운 것이다.  

 

이 구멍에서 눈에 띠는 아이디어는 아래 구멍이 위 구멍보다 크고 형상도 가로로 긴 점이다. 여기에는 정조(正祖)의 부하 사랑과 과학이 스며있다. 아래 구멍은 터를 잠식하지 않으려 땅에 붙어있는데 이를 사용하는 병사는 몸을 가로로 누이며 구멍을 드려다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불편을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주려고 가로로 길게 했다. 물론 가로로 길수록 볼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진다. 실로 묘안이다. 
성의 아래 구멍은 크기와 형상이 특이하다. 병사가 관찰하는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함도 있고, 감시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목적도 있다.

체성의 아래 구멍은 크기와 형상이 특이하다. 병사가 관찰하는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함도 있고, 감시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목적도 있다.

깊은 지략(智略)이 담겨있는 팔달산정의 성을 잘 보존해야 한다. 이 구간은 옛 모습이 많이 보존된 구간이고, 축성 기술로는 세계  성곽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땅 속에 묻혀있는 위 구멍 2개와 아래 구멍 1개를 노출시키고, 구멍 속도 청소를 부탁한다. 성 위에 올라 여장의 원총안과 근총안으로 성 밖 적군을 내다보고, 아래로 내려와 엎드려 체성에 뚫린 구멍으로 성 밖 바로 아래를 보는 체험의 화성을 만들어야 한다.

정조의 훌륭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훌륭한 것은 성을 쌓기 전 이런 문제점을 예측했다는 것이다. 만일 예측을 못했다면 산꼭대기에서 성을 모두 쌓고, 공사를 중단하고, 모두 철거하고 , 다시 쌓아야 했을 것이다.

지형으로 인해 감시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이 부분을 감시할 수 있도록 협축형식의 성벽을 쌓은 지략이 넘치는 세계 유일의 특별한 성이 팔달산정에 잇다. 잘 보존해야 한다.

지형으로 인해 감시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이 부분을 감시할 수 있도록 협축형식의 성벽을 쌓은 지략이 넘치는 세계 유일의 특별한 성이 팔달산정에 있다. 잘 보존해야 한다.

자재 조달, 시공성, 구조 안전, 인력과 경비 절감, 공사기간 절약뿐만 아니라 지형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감시 사각지대를 없애려 고안한 세계 유일의 "협축형식의 내탁 시스템"인 아주 특별한 팔달산정(八達山頂)의 성(城)에서 정조(正祖)의 전략과 건설경영, 그리고 설계의도를 엿보았다.
 

화성, 팔달산정, 서장대, 이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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