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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서포루와 동포루 사진 최초로 공개
수원박물관 곽재용 기증 사진전의 특별한 사진들
2020-07-06 10:08:37최종 업데이트 : 2020-07-06 10:08:05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박물관 곽재용 기증 사진전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서포루 사진

수원박물관 곽재용 기증 사진전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서포루 사진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은 1796년 축성된 이후 구조적으로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1824년에 장안문과 팔달문 옹성 홍예위에 2칸 누각을 세워 외형이 조금 변했다. 1846년에 폭우가 쏟아져 화홍문, 남수문, 매향교 등이 무너졌고 다른 시설물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가 보수됐다. 

1900년대에는 일제에 의해 파괴됐고, 1922년 홍수로 화홍문, 남수문, 매향교가 무너졌다. 이후 나라 잃은 문화재는 방치된 채 무너져 내렸고 한국전쟁으로 크게 파괴됐다. 수원화성은 부분적으로 복원되다가 1970년대에 대부분의 성벽과 시설물을 복원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지만 복원된 수원화성의 일부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의 내용과 다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수원박물관 곽재용 기증 사진전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동포루 사진

수원박물관 곽재용 기증 사진전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동포루 사진

 
'화성성역의궤 포루(砲樓)'편을 보면, "대체로 5좌가 있는데 그 구조는 모두 똑같다. 3층으로 하여 그 가운데를 비운 점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다. 화포를 많이 감추어 두어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쏘게 하였다. 지대 위에다 벽돌을 쌓고 집을 지었는데 바깥 쪽 지대 위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대포 혈석 2개를 놓았다. 좌우 면에도 사이에 3개의 혈석을 놓았다. 벽돌로 쌓은 공간 안에는 평지에서 위로 5척 되는 곳에다 벽에 의지해서 3면에 포판을 두르고 총혈 15개를 내었다. 또 포판을 두른 곳에서 10척쯤 위에는 3간 누판을 깔고 누의 위 3면에는 총안 15개를 뚫어 놓았다. 외면의 총안 위에는 또 전안 넷을 뚫었다. 좌우 면에는 위쪽 가까이 벽돌을 뚫고 판문 셋을 설치하였는데, 밖에는 짐승 얼굴을 그리고, 각각 전안을 뚫었다. 문 사이 벽면에도 쌍으로 전안을 뚫어 놓았다"라고 설명하고 '포루 외도', '포루 내도', '포루 이도' 등 3장의 그림을 그렸다.

왼쪽 그림은 한글 정리의궤의 포루 외도, 가운데 그림은 포루 이도, 오른쪽 그림은 화성성역의궤의 포루 이도.

왼쪽 그림은 한글 정리의궤의 포루 외도, 가운데 그림은 포루 이도, 오른쪽 그림은 화성성역의궤의 포루 이도.

 
화성성역의궤 포루 설명과 포루 외도 그림 2곳이 일치하지 않는다. 대포 혈석의 수는 정면 2개, 측면 3개, 2층 총혈의 수 15개는 맞다. 그 위 3층에 있는 총안은 '포루' 설명에는 15개이고 '포루 외도' 도설에는 21개가 있는데 북서포루, 북동포루는 21개가 맞고 동포루, 남포루, 서포루는 15개가 맞는 것 같다. 총안 위에는 전안 넷을 뚫었다고 했는데 '포루 외도' 그림에는 3개만 그렸다. 북서포루, 북동포루는 전안 4개를 확인할 수 있지만 동포루, 남포루, 서포루는 3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화성 남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50년대 이전 사진이다. 원래 모습대로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화성 남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50년대 이전 사진이다. 원래 모습대로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는 다른 포루보다 크면서 규모가 같고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는 약간 작으면서 규모가 비슷한데 5개의 포루를 한 번에 설명하고 그림으로 그렸기 때문에 오류처럼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포루 이도' 그림은 포판을 두른 위치가 총혈, 총안의 위치와 맞지 않아 오류로 보인다.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와 1910년대 - 1930년대의 북동포루, 북서포루 사진, 1940년대 - 1950년대의 남포루 사진, 1950년대의 서포루 사진을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현재 복원된 5개의 포루 중 남포루를 제외한 4개의 포루는 잘못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복원하기 전에 치밀한 고증작업이 아쉽다. 복원에 참여하는 사람은 문화재에 대한 고도의 책임감이 있어야한다.

수원화성 북서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30년대 전후의 사진이다. 총혈, 총안, 전안이 다르게 복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 북서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30년대 전후의 사진이다. 총혈, 총안, 전안이 다르게 복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원박물관에서 곽재용 기증 사진전 '한국전쟁과 수원화성' 전시회가 6월 25일부터 열리고 있다. 기자는 오래전부터 수원화성이 복원되기 이전의 실제 모습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기자의 눈에 특별한 사진 2장이 보였다.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사진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최초로 서포루와 동포루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수원화성 동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50년대 사진이다.

수원화성 동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50년대 사진이다

창룡문에서 남쪽 성곽을 찍은 사진에 동포루 모습이 나오는데 반 이상이 무너져 안타깝지만 총안 몇 개와 포루의 유려한 겉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수원화성 서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50년대 사진이다. 외형이 완벽한 서포루를 통해 원래 모습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 서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50년대 사진이다. 외형이 완벽한 서포루를 통해 원래 모습을 알 수 있다.

화성장대에서 북쪽 대유평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에 서포루 모습이 나온다. 누각은 사라졌지만 포루의 형태는 완벽하게 남아있어 2층 총혈 6개, 3층 총안 6개, 맨 위 벽면에 뚫린 전안까지 확인할 수 있다.

북동포루와 북서포루의 지붕 모양은 안쪽은 맞배지붕, 밖은 우진각 지붕으로 복원했다. 화성성역의궤 그림에는 안과 밖이 모두 우진각 지붕으로 되어있지만 1970년대에 복원하면서 화성성역의궤 재용편을 참고해 현재처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수원화성 북동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20년대 전후의 사진이다. 원래 모습과 다르게 복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원화성 북동포루. 왼쪽 사진은 복원된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1920년대 전후의 사진이다. 원래 모습과 다르게 복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자는 북동포루와 북서포루 지붕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을 찾고 있다. 현재 몇 장의 사진이 있기는 하지만 거리가 멀고 해상도가 낮아 지붕의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다. 1930년대 이전 사진이면 지붕 모양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이 짠! 하고 나타나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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