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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4대 하천의 추억 있으세요?"
개구장이들에겐 수영장이자 썰매장, 아낙네들 빨래터로 이용…고기 잡아 철렵국 끓여 먹기도
2019-08-30 09:37:30최종 업데이트 : 2019-09-01 09:12:11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관

수원천과 화홍문. 사진 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2017.7.31)

수원천과 화홍문.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2017.7.31)

수원에서 태어나 줄곧 수원에서 자란 수원 토박이다. 수원에서 60년 이상을 살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수원의 그때 그 모습이 어른거린다. 당시 추억이 그대로 떠오른다. 한 편의 영상 스토리로 만들 수 있다.  e수원뉴스 기자로서 그 당시 추억을 한 편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기록은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소중한 사회적 기록이 된다.

 

수원에는 4대 하천이 있다. 동쪽부터 서쪽으로 하천 이름을 차례대로 대면 원천천, 수원천, 서호천, 황구지천이다. 이 하천은 흐르다가 어떻게 합쳐질까? 원천천, 수원천, 서호천은 황구지천으로 합쳐진다. 황구지천은 2차 지류, 진위천은 1차 지류가 되어 안성천이 된다. 안성천은 아산만방조제를 지나 서해로 흐른다.

 

유년시절 처음으로 만난 하천은 수원시내를 관통하는 수원천. 유년시절 세류초등학교 후문으로 나가면 수원천을 만난다. 여름철엔 거기에서 수영을 하며 피서를 했다. 당시엔 뽕뽕다리가 있었다. 다리 바닥이 철판인데 동그란 구멍이 뽕뽕 뚫려 있었다. 물놀이는 벌거숭이가 되어 즐겼다. 행인이 나타나면 허리 아랫부분을 물속에 담가 행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장마 때에는 물이 다리를 넘쳐 통행을 못하고 떠내려가는 돼지를 보기도 하였다.

 

겨울철엔 수원천 빙판 위에서 썰매타기를 즐겼다. 아이들은 썰매의 날이 두 개 달렸지만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은 외발 날이 달린 썰매를 탔다. 썰매와 꼬챙이는 어른들이 만들어주거나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얼음지치기를 하다가 지치면 하천 둑에 불을 피워 추위를 달랬다. 그러다가 양말을 태우는 일도 있었다. 당시 양말은 나일론 이어서 불에 금방 녹아 내렸다. 썰매를 타고 수원비행장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다.

 

수원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광교저수지 둑 아래 광교풀장이 있었다. 저수지 물을 이용해 풀장을 만든 것이다. 지금은 강감찬 장군 동상이 있는 광교공원이다. 여름철 이 풀장은 수원시민들의 피서지였다. 우리들도 풀장을 찾곤 했는데 물싸움 하는 척 하면서 여자 아이들에게 물을 끼얹거나 잠수하여 여자 아이들 다리를 만지는 짓궂은 장난을 하기도 하였다. 
 

중학생 시절 하교하면서 본 화홍문 아래 수원천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다. 여기서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했다. 납작한 돌 위에 빨래를 놓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장면은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린이들은 그 옆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빨래를 하고 수영을 했다는 것은 물이 그만치 깨끗했다는 뜻이다. 수원천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원천천 상류에 있는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신대저수지 가까이 외가가 있었다. 당시 행정구역은 용인군인데 지금은 수원시다. 여름방학 때 외가 원두막에서 여름을 보냈다. 참외를 따서 먹기도 하고 어른들은 감자와 옥수수를 쪄서 간식으로 주었다. 신대저수지에선 작은 형과 수영을 하기도 했다. 원천저수지는 유원지인데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수상(水上) 식당도 있었고 수영하다 익사한 동네 후배도 있었다.

 

다음은 서호천 추억. 서호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서호(西湖)를 만난다. 여기에서 수영을 하였다. 방류구 물이 떨어지는 곳은 천혜의 피서지였다. 서호천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다. 잡은 물고기는 동네 아주머니가 철렵국을 끓여 주였다. 당시 우리들의 보양식이었다. 물위에 떠 있는 별모양의 검은 마름열매를 따다가 쪄서 먹었다. 배고픔을 달래는 수단이었다. 물놀이를 하다가 바로 옆 경부선 철도 화물열차가 지나가면 화차 수를 세는 것은 우리들의 재미였다.

 

다음은 황구지천의 추억. 황구지천의 상류엔 왕송저수지가 있다. 초등학생 시절 여름철 친구들과 그곳까지 간 적이 있었다. 농업용수 공급으로 저수지물이 거의 다 빠진 상태였는데 남아 있는 흙탕물 속은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그물로 물을 뜨면 한 번에 물고기 여러 마리가 펄떡 뛰었다. 귀가하면서 집을 찾아오지 못할까봐 잔뜩 겁을 먹었던 추억이 있다.

 

유년시절 수원 4대 하천의 추억이 떠오른다. 물이 오염되지 않아 하천은 우리들의 여름철 놀이터였다. 물고기도 잡았다. 아낙네들의 빨래터였다. 수양버들 늘어진 수원천은 멋진 풍경이었다. 겨울철엔 썰매장이 되어 겨울 추위를 이겨내도록 하였다. 하천 인근 논과 밭에선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았다. 강아지풀에 잡은 메뚜기를 꿰어 자랑스럽게 들고 다녔다. 유년시절 개울은 우리들의 천국이었다. 아, 그 시절이 그립다.

이영관, 수원 4대 하천, 수원천, 서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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