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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읍성과 수원화성
2019 수원화성박물관 학술대회 열려
2019-11-22 21:57:27최종 업데이트 : 2019-11-24 11:33:1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2019 수원화성박물관 학술대회 '조선의 읍성과 수원화성'

2019 수원화성박물관 학술대회 '조선의 읍성과 수원화성'

지난 21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조선의 읍성과 수원화성'이란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수원에서 열리는 수원화성 관련 학술대회는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룬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학술대회에 참여해 관심을 보였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1주제는 '조선시대 읍성과 수원화성 –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중심으로'를 이일갑 시공문화재연구원장, 2주제는 '18세기 조선의 축성기록, 뎡니의궤와 화성성역의궤의 건축 사료적 가치'를 정정남 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대표, 3주제는 '수원향교를 통해 본 향교 건축제도의 유래와 배치'를 백소훈 명재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4주제는 '조선후기 읍성도의 경관 재현 방식과 화성전도'를 김성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이 발표했다.

1주제 '조선시대 읍성과 수원화성 –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중심으로'에서 조선시대 읍성 축조과정과 양상, 수원화성의 고고학적 조사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1995년 수원 남창동 화성행궁지 발굴조사부터 2009년 수원화성 내 성신사 유적 발굴조사, 수원화성 남수문 복원사업부지 내 유적 시굴조사까지 13건에 대한 조사 내용을 소개했다.

조선시대 읍성과 수원화성의 고고학적 검토에서 수원화성의 평면 형태는 조선시대 여타 읍성 평면 형태와 비교할 때 확연한 차이점이 확인된다. 조선시대 읍성 평면 형태는 방형, 원형, 주형, 제형 등 4개의 형식으로 나누어지지만 수원화성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수원화성의 축조수법과 옹성, 치성, 해자 등 부대시설의 형태와 구조를 자세히 살펴봤다. 수원화성에는 해자 설치와 출입시설인 조교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잔존하는 고지도와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하면 해자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해자가 왜 없는지 궁금하다는 의견을 말했다.모리스 꾸랑의 저서에 '한글본 뎡니의궤 13책'이 소개되어 있다.

모리스 꾸랑의 저서에 '한글본 뎡니의궤 13책'이 소개되어 있다.

2주제 '18세기 조선의 축성기록, 뎡니의궤와 화성성역의궤의 건축 사료적 가치'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와 이외 여러 종류의 의궤 등 당대의 기록물을 소개했다. 한글본 뎡니의궤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화성성역의궤와 건축 사료적 가치를 조명했다.

수원화성을 원형으로 복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화성성역의궤'와 '뎡니의궤'이다. 과거를 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부단히 연구되고 활용되는 두 의궤야말로 비교 불가한 건축 사료적 가치를 지녔다고 결론을 내렸다.

3주제 '수원향교를 통해 본 향교 건축제도의 유래와 배치'에서 수원향교는 공간적으로는 수원화성 내부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읍치인 화성의 중요한 구성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읍성의 부속 예제시설로서의 수원향교 구성 건축의 명칭 및 유래를 설명했다. 향교로 진입하는 공간인 홍살문, 하마비, 외신문, 명륜당 영역인 명륜당, 동재, 서재, 대성전 영역인 내신문, 대성전, 동무, 서무를 중국의 제도와 비교설명 했다.

수원향교 건축은 유학교육의 유구한 전통을 수용하는 동시에 독특한 지형환경에 건축적으로 이를 적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독자적인 형식과 전형성을 형성한 조선향교의 전학후묘의 전통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조선후기에 이르러 자체적으로 정비한 예법에 맞게 강학영역을 재조정하면서 정립된 전당후재의 배치를 적용한 것이다.수원향교 구성 건축의 명칭 및 유래

수원향교 구성 건축의 명칭 및 유래

4주제 '조선후기 읍성도의 경관 재현 방식과 화성전도'에서 '함흥읍도', '진주성도', '평양성도' 등 조선후기 읍성도의 제작과 경관 재현 방식에 대해 소개했다. 풍수 지형이 강조된 읍성도와 실경이 강조된 읍성도를 비교하고 수원화성 주변을 그린 '화성전도'의 유형과 특징을 분석했다.

의궤와 읍지에 수록된 화성전도를 자세히 비교하면서 18세기 후반 왕업의 권위성이 부여된 이상적인 읍성 경관의 표현은 읍성 주변으로 드넓게 펼쳐진 농경지가 그려지며 완성된 이미지를 갖는다. 번성한 도시의 이미지는 통치 공간과 함께 백성들이 부유한 도시의 이미지로 그려졌다.화성전도 6폭 병풍과 12폭 병풍, 이 그림 속에는 당대를 읽을 수 있는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화성전도 6폭 병풍과 12폭 병풍, 이 그림 속에는 당대를 읽을 수 있는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학술대회 발표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발표자가 수원화성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실체적으로 수원화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수원화성 현장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발표자들마다 '뎡니의궤'를 주목하고 있지만 뎡니의궤를 읽어보지 않아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선행 연구를 베끼다 보니 오류의 확대 재생산이 계속되고 있어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결본의 내용을 유추하거나 편찬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근거가 부족함에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1797년을 고집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화성전도 6폭 병풍 중 화성행궁 부분

화성전도 6폭 병풍 중 화성행궁 부분

수원화성에 해자가 없는 이유를 '화성성역의궤'에서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한글본 뎡니의궤를 읽어봤다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한글본 뎡니의궤'에는 '상께서 내리신 주략을 받든 처음에 먼저 해자 파기를 강론하여 겸하여 흙 쓰기를 취하였더니 삼태기와 삽이 일제히 모여 모래와 석각이 두루 드러나 공사비용은 점점 많아지고 일은 더욱 더디게 진행되어 마지못해 땅 파는 역사를 그만두었다. 이제 남성 바깥과 북문 곁에 절로 생긴 깊은 개천이 있고 서산 뒤와 동성 아래에 또한 절로 긴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으니 비록 한 성을 두른 참호는 아니나 충분히 땅을 따로 굳게 지킬 수 있다' 이보다 더 명백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화성전도는 화성성역의궤, 뎡니의궤, 화성지 등에 있고 12폭 병풍과 6폭 병풍이 남아있는데 그림에 대한 디테일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그림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지지대고개부터 현륭원까지의 공간이 머리에 완전하게 들어와 있어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수원화성의 공간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화성행궁 낙남헌이 북향이란 사실을 모르고 화성원행 8폭 병풍 중 '낙남헌 방방도'를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김홍도가 그린 화성 8경 중 수원화성 서장대 부근을 그린 '서성우렵'을 '서울 서북교의 풍광과 주위 경관을 잘 표현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서성우렵'이라는 예서체의 제목이 기록되어 있는데, 경관으로 미루어 서성이 위치한 인왕산임을 알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하게 된다.

조선의 읍성과 수원화성, 수원화성박물관,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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