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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효자 최루백 효자비각과 효암(孝巖)을 찾아
수원박물관 역사전시관 최루백의 아내 염경애 묘지명도 있어
2020-03-08 23:01:41최종 업데이트 : 2020-03-09 13:51:09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수원최씨사적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165-1 현 위치 일대가 최루백의 사패지였다고 한다.

수원최씨사적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165-1 현 위치 일대가 최루백의 사패지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냥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15세의 아들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산으로 가서 호랑이를 찾아내 도끼로 쳐서 죽이고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와 살을 가져와 장례 지냈다. 아들은 무덤 곁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 동안 살았다. 그 후 아들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였다.』

고려의 문신이자 효자인 최루백(崔婁伯)의 이야기다. 호랑이의 배를 갈라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효성 지극한 동화 같은 이야기는 수원뿐만 아니라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효행은 '고려사(高麗史)'열전, 조선 시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등에도 실려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7일 오전 11시, 기자는 남편과 함께 경기도 화성시 봉담면 분천리 수원 최씨 사적지에 있는 정려비와 홍법사(弘法寺) 옆 호랑이를 잡은 뒷산의 큰 바위 '효암(孝巖)'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자인 최루백(?~1205)의 효자비각(앞)과 아버지 최상저의 유허비(뒤)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자인 최루백(?~1205)의 효자비각(앞)과 아버지 최상저의 유허비(뒤)를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수원 최씨 사적지'다. 현재 그의 묘와 '정려비'가 있는 일대는 나라에서 최루백에게 내렸던 사패지(賜牌地)로 효자비각과 아버지 최상저의 유허비(遺墟碑) 비각을 볼 수 있다.

안내표지에 따르면 최루백은 고려 의종 (재위 1146~1170) 때에 한림학사를 지낸 인물로 조선 숙종 때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효자정려'를 세웠다고 한다. 정려비 앞면에 붉은 글씨로 '고려효자한림학사최루백지여(高麗孝子閑林學士崔樓伯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원래는 화성시 봉담읍 수기리 '효자문골'에 위치했으나,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花山)으로 옮긴 후 비각을 융릉 서남쪽 홍법산 기슭으로 옮겼다고 한다.
 
홍법사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홍법사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용주사의 말사인 홍법사(洪法寺) 사찰 내를 거쳐 호랑이를 잡은 큰 바위를 찾아가는 산길에 올랐다. 수원대학교 본관 뒤편으로 난 산책길로 가다 보면 쉽게 찾아갈 수도 있다.

효암(孝巖)은 예상보다 크고 웅장한 모습이다. 원래는 하나의 큰 바위였는데 호랑이를 내리칠 때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고 전해진다. "네가 나의 아버지를 잡아먹었으니 나도 마땅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라는 말과 함께 도끼를 내리쳐 죽인 바로 그 현장이다. 앞뒤로 효암 전체를 돌아볼 수 있고 위에 올라설 수도 있다.
 
효암-홍법산 기슭에 있는 이 바위는 최루백의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효암-홍법산 기슭에 있는 이 바위는 최루백의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고려시대 천년전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깊은 바위는 효암으로 불린다.

고려시대 천년전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깊은 바위는 효암으로 불린다.


'효암(孝巖)' 앞 안내판에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은 효성이 지극했던 임금으로 아버지 사도세자 능을 이곳 화산으로 옮기고 자주 이곳에 행차했다. 이 행차 길에 최 공의 후손들을 불러 훌륭한 조상이라 극찬하며 바위를 효암이라 부르게 했다'라고 소개했다. 정조는 그 후손들에게 부역을 면해 주었다고 한다.

수원박물관 역사관에는 최루백의 아내 묘지명(墓誌銘. 복제품.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이 전시 중이다. 묘지명은 관과 함께 매장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부인인 염경애(廉瓊愛 1100~1146)와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고 아내가 죽자 묘지명을 직접 지었다. 가난한 생활을 말없이 견디며 자신을 성심으로 내조한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존중의 뜻이 담겨 있다.

이 묘지명 뒤에 최루백의 효행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으니 이 또한 빠트리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고려 시대 수원사람 최루백은 부모에 대한 효심이 깊었고, 아내 염경애를 존경하고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동시에 접할 기회가 된다.
 
수원대학교 본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올라오면 효암에 이른다.

수원대학교 본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올라오면 효암에 이른다.

효암에서 시작되는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마스크없이 하루를 온전히 보냈다.

효암에서 시작되는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마스크없이 하루를 온전히 보냈다.


화성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된 최루백 효자비각과 효암을 둘러보고 남편과 산책길을 걸었다. 기자는 "당신은 효자인가?"라고 물었고, 남편은 "당신은 효녀인가?"라고 되물었다.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던 부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려 효자 최루백의 효행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눴다.

최루백 효자비각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 165-1에 있다.  대중교통은 보통리입구 정류장 7-1,  31-2,  50.  효암에서 가까운 홍법사는 화성시 봉담읍 쇠틀길 89-15,  수원대학교는 화성시 봉담읍 와우안길 17에 있다.

고려효자최루백, 효암(孝巖), 효자비각과 유허비, 수원최씨사적지, 홍법사, 염경애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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