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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뜨끈뜨끈 구들장 아랫목의 추억
2013-01-29 12:11:25최종 업데이트 : 2013-01-29 12:11:25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희
겨울도 이제는 막바지 추위만 남은듯 하다. 그렇게 매섭게 몰아치던 한파도 약간 꺾였고, 대한 추위도 지난 20일이었는데 그로부터 벌써 열흘 가까이 지났다.
다음주에 설이 지나면 슬슬 봄맞이 할 채비를 해야할까.
벌써 봄맞이 생각을 하니 이렇게 겨울을 보내는가 싶어 약간 허전하기는 하다. 추위가 가고 따스한 봄이 오면 좋기는 하겠지만, 슬그머니 서운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번 겨울에 구들장이 있는 한옥으로 체험 겸 추억의 여행이나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채 지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 탓이다.

장작불을 때면 나무 타는 내음이 은은한 향기 같았고 그 뜨끈뜨끈한 구들장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누워보면 우주 삼라만상이 다 화평했다. 설설 끓는 아랫목이 있는 구들방에서 푸근한 솜이불을 덮고 푹 자고 나면, 온몸이 날아갈 듯 개운해졌다. 코끝에 돌던 감기 기운도 뚝 떨어지고, 묵직하던 어깨며 허리도 거짓말처럼 가뿐해지게 한게 바로 구들장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구들장이 있는 한옥에 한번 가서 자 보고 싶었는데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실행에 옮길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밖이 빙하기처럼 춥고 꽁꽁 언 날씨라 해도 스위치만 넣으면 24시간 반바지만 입고 있어도 될만큼 완벽한 난방시설에 사는 요즘 아이들이 구들장을 이야기 하면 무슨 소리인지 알기나 할까.

시골에서 살던 그때, 한겨울 추위가 다가오면 우리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찐 고구마와 동치미를 먹곤 했다.
밖의 강물이 쩡쩡 얼고 차갑게 날이 선 북풍이 한지 한 장으로 발라져 추위를 막고 있는 방문을 덜커덩 흔들고 지나는 긴 겨울밤. 그렇게 매서운 밤이라도 구들장으로 덥힌 방 안 아랫목에서 몸을 녹이노라면 그렇게 따스하고 푸근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때 겨울에는 언제나 큰 가마솥에 물을 가득 채워서 놓고 군불을 지폈다. 이때 엄마는 늘 "병희야, 구들장이 뜨겁게 불을 때거라" 말씀 하시곤 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시골은 겨울 저녁만 되면 이집 저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집집마다 저녁에 죄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아침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장작을 많이 땠던 기억이 난다. 

한겨울에 뜨끈뜨끈 구들장 아랫목의 추억_1
한겨울에 뜨끈뜨끈 구들장 아랫목의 추억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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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뜨끈뜨끈 구들장 아랫목의 추억_2
한겨울에 뜨끈뜨끈 구들장 아랫목의 추억_2

장작불을 때는 과정은 또 어땠나.
'탁탁, 타다닥' 소리 내며 타는 장작불과 장작불에 의해 만들어진 숯불에 뜨거워진 바지 속의 살 닿는 감촉, 그건 정말 한겨울에 아궁이 앞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행복감이었다. 
그리고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동안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부지깽이로 아궁이 벽면에 낙서 하던 재미. 그 맛을 그때의 그 시절에 농촌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알랴.
부지깽이로 낙서하는 내용은 주로 어설픈 '벽화'였다. 고구마도 그려보고, 한낮 내내 놀았던 다랭이논의 썰매, 친구 이름, 설날 갖고 싶은 치마 설빔, 겨울방학 뒤의 개학 날짜 그런걸 끄적거렸다.

장작불이 '타닥타닥'거리며 타는 동안 엄마는 낮에 해 놓았던 반찬을 데우기 위해 부뚜막에 뚜껑이 닫혀진 반찬그릇을 올려 놓곤 하셨다.
거기에는 두부조림도 있었고 운 좋은 날은 꽁치나 고등어 무 조림도 올라갈 때가 있었다. 장작불을 지피는 내내 부뚜막 위의 반찬을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곤 했다.

솥이 뜨거워질 때쯤 엄마는 추운 날씨에 다 말리지 못한 양말이나 내의 같은 속옷을 가져다 얹어 말리곤 하셨다. 솥뚜껑이 일종의 즉석식 빨래 건조기 역할을 한 것이다.
장작불은 그냥 매가리 없이 불만 때는게 아니었다. 반드시 무쇠 솥을 걸어놓고 솥을 가열한건데 커다란 무쇠 솥 안에는 대부분 소에게 줄 여물이 끓고 있었다.
소 여물이란 소에게 줄 저녁식사다.ㅡ볏짚이 기본 식재료이고 그 안에는 집에서 먹다 남은 밥풀찌꺼기, 쌀겨와 불린 콩잎 같은게 고루 섞여 푹푹 끓여 낸 다음 양동이로 퍼다가 주었다. 하얀 김이 펄펄 나는 푸짐한 저녁 만찬을 받은 소는 실컷 포식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

구들장의 온돌식 난방은 그렇게 단순히 방만 덥히는게 아니라 거기에 딸린 오만가지 가사가 연쇄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같은 것이었다.
고루 그렇게 장작불을 지핀 후 방안에 들어가 솜이불이 덮여 있던 아랫목에 손을 넣으면  그야말로 설설 끓었다. 
구들장의 열기 덕분에 방바닥이 까맣게 타기도 했고, 방 안은 매캐한 소나무 장작을 태우는 냄새가 가득했지만 그마저도 향기로울 뿐이었다. 쑥 이파리를 넣어 바른 한지 창호문에는 뒷산 위로 뜬 달빛이 들어와 박혔다. 은은한 향기와 아랫목의 열기로 뼈 마디가 다 노곤해졌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내용인데 우리나라의 구들장을 대표하는 온돌의 독특성을 인정해 옥스포드 대영백과사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발음을 그대로 살려 'Ondol'이라고 고유명사로 표기했다고 한다. 
과학적인 규명을 중시하는 서양에서 조차 우리의 구들장과 온돌문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 겨울이 가기전에 꼭 한번 구들장이 있는 한옥에 가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몸 좀 녹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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