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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열심히 사는 순수한 모습
2012-12-21 16:17:08최종 업데이트 : 2012-12-21 16:17:08 작성자 : 시민기자   최순옥

차 안에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학교 준비물을 넣어둔채 그냥 들어왔다. 다음날 아이 학교 가기 전에 열쇠를 들고 나가 그걸 챙겨 들어오려다 만난 이웃집 아줌마. 나도 아줌마지만  쉰 새벽에 남편분 출근하는데 배웅하고 들어오는 길이란다. 새벽 6시도 안 된 시간, 남편분께 새벽밥 지어 차려낸 흔적이 얼굴에 역력하다. 

어쩌다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온갖 광고물들을 본다. 그 중 한나절도 안 되어 전화번호 적힌 종이가 다 잘려 나가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주부 부업' 광고지다. 하루 종일 살림하랴 아이들 돌보랴 바쁘고 힘들텐데 언제 부업까지 하는 걸까. 

은행에 가서 잠깐 대기하고 있으면 어디론가 통화해서 통장이 서너 개쯤 되는 계좌번호를 10초도 안 되어 줄줄 외는 아줌마들. 그 많은 계좌를 다 외우려면 은행에 얼마나 들락거려야 할까. 
쌀은 어디 브랜드가 맛있고, 냉장고는 요즘 어떤 것이 쓸 만한지, 요즘 인기 있는 학습지는 무엇이고, 아이들 옷은 어디로 가면 싼지. 어떤 질문을 던져도 금세 대답하는 걸어다니는 살림 백과사전까지.

이 사람들이 누굴까. 정답은 나를 포함한 아줌마들이다.
대한민국 결혼한 여성들은 아줌마라는 소리 듣는거 별로 안좋아 하지만 일단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순간부터 여성들은 180도 변신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지켜오던 여성다움 또는 공주병과 결별하고, 삶의 여전사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다.

세월이라는 막을수 없는 강을 역류하려고 살을 빼고 성형하며 나이에도 맞서 보는 돈 있는 집 여사님들과 달리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은 아줌마인걸 인정하며 산다.
오늘도 아빠 출근길 아이들 등굣길 도와준후 정신 없이 내 옷 챙겨 입고 출근 하거나, 주말에 유일하게 짬 나는 시간 쪼개어 빨래며 청소며 시댁 친정 대소사며 온갖 일 다 챙기며 열심히 사는 우리 동네 아줌마들.
다들 열심히 사는 모습 그 자체가 좋다.

지난주말에는 연말연시를 맞아 농촌돕기를 하자며 평택의 비닐하우스 방울 토마토 농장에 내려갔다. 우리동네 주부의 친척집이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 하여 기꺼이 나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아프리카까지 봉사활동 하러 간다는데,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우리의 어려운 이웃이 있다하니 마다할리 없는 일이었다.

아줌마들의 열심히 사는 순수한 모습_1
아줌마들의 열심히 사는 순수한 모습_1

농장에 모인 우리 아줌마들에게서 더 이상의 젊은날의 여성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추위 때문에 겹겹이 옷을 껴입고, 농장 난방을 위해 한 켠에 피워놓은 연탄 화덕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얼굴들에는, 건강한 흙빛 삶의 결의들이 넘쳐났다.
일을 하기 위한 준비 시간도 길지 않았다. 저마다 일제히 토마토 나무앞에 다가서서 아줌마들의 힘찬 노동이 시작된 것이다.

규칙적으로 연속되는 방울토마토를 따는 소리, 그 수만큼 바구니로 떨어지며 쌓이는 빨간 토마토들, 빈 바구니를 빨리 갖고 오라고 채근하는 소리들이 참 정겹게 들렸다.
덩달아 토마토가 소복이 담긴 바구니를 나르느라 초보 일꾼인 나는 땀을 비오듯 흘리는데, 어느 새 노래 잘하는 송희 엄마 입에서는 구수한 트롯트 가락이 흘러 나왔다.

이어서 약방의 감초처럼 아줌마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며칠전 누가 음식 쓰레기통에 비닐 봉지를 그냥 버렸다며 괘씸하다는 말이 들리더니, 금세 시시콜콜한 이웃들의 대소사가 입방아에 오르면서 동네 사람들이 일상사가 아줌마들에 의해 생중계를 탔다. 
아름다운 선행의 주인공들에게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이 따랐지만, 실수하거나 잘못한 사람들에게는 아줌마들의 꾸중이 들렸다. 

아줌마들 특유의 웃음소리 속에 동네사람 여럿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들으며 "에코, 나도 잘못하면 큰일 나겠구나"싶어 속으로 웃었다. 
노래와 수다, 그리고 순수하고 정감 넘치는 농담속의 웃음이 터지면서 방울토마토 따기 농촌돕기 봉사활동이 끝이 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십번도 더 하는 농촌 아낙에게 "뭘 그런걸 가지고요. 담에 또 불러주세요"라며 호방하게 웃는 아줌마들.

역시 아줌마들은 집안일은 집안 일 답게, 남의 잘못에는 가차없는 꾸중, 그리고 봉사면 봉사, 정직이면 정직 순수함 그 자체다.
우리 사회를 온전하게 지탱해온 안방 주인들의 열심히 사는 모습에 박수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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