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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행복했던 순간들..오롯한 기억
2012-12-18 11:20:15최종 업데이트 : 2012-12-18 11:20:15 작성자 : 시민기자   임정화

아침 일찍 일어난 아들 녀석이 어디론가 열심히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많이 많이 사랑해요." 
매일 어리고 철 없고 미숙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던 이녀석.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며칠전 내게서 외할머니 생신이 오늘이라는걸 듣고 기억해 놨다가 이른 아침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드린 것이다.
대견하고 고마웠다.

이젠 할머니 생일까지 기억해 뒀다가 전화를 하는 것 까지 알 정도로 자랐구나. 더 어렸을때는 일부러 시부모님은 물론이고 외할머니 외할아지께 생신 축하드린다는 전화를 하라며 내가 전화를 걸어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던게 이제는 아이도 철이 들어 어르신들께 직접 스스로 전화를 걸어 축하를 해 드릴만큼 큰 것이다.

당신의 생신을 맞아 남자 형제들은 고향에서 부모님 모시며 함께 농사짓고 사시는 오빠와 함께 지난 주말에 시골에 모여 다같이 식사를 했다. 나는 부득이하게 참석을 못하고 용돈만 조금 보내드렸다. 그리고 생신 당일인 오늘 전화를 넣은 것이다. 

엄마와 행복했던 순간들..오롯한 기억_1
엄마와 행복했던 순간들..오롯한 기억_1

연세 드신 친정 엄마의 생신을 축하 드리고 나니 그동안 내가 자랄적에 당신이 챙겨 주신 잊지 못할 생일들이 기억 난다.
엄마는 한 번도 우리들의 생일을 잊으시거나 그냥 지나치신적이 없었다. 그건 당신이 품에 안고 우리를 키울때는 물론이고 학교를 다니기 위해 당신 품을 떠나 있던 시기, 그리고 직장에 다니던 시기와 결혼 후까지 아들 딸의 생일을 잊지 않으시고 챙겨 주셨다.

내 어릴적에는 생일날이면 쌀밥에 미역국 한 상 가득 차려서 방으로 들어오신다. 남매들 옹기종기 모여앉아 생일날만 먹어보는 별미. 눈 쌈짝할 사이 그릇이 비워진다. 엄만 보리밥을 드시고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배부르냐?" 
"네"
생일인 나는 해죽 웃으며 쌀밥과 미역국을 퍼 먹는데 열중할 뿐이었다. 

긴 여름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때면 아버진 넓은 마당에 멍석을 펴고 한쪽 옆에 모닥불을 피우셨다. 캄캄한 마당에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면 아버진 쑥과 풀을 베어다가 그 위에 얹으신다. 모기떼가 왱왱거리다가 연기를 따라 도망간다.
"얘들아, 얼른 받아라." 엄마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노오란 옥수수를 쟁반 가득 담아 우리 앞에 넣으면 서로 큰 것을 먹으려고 전쟁이 벌어진다.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엄마가 조용히 내게 말씀하신다.
"네가 좋아하는 하모니카 좀 불어보거라." 
난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을 세면서 하모니카를 분다.
'해님이 방긋 웃는 이른 아침에 / 나팔꽃 아가씨 나팔 불어요 / 잠꾸러기 그만 자고 일어나라고 ~'

엄마의 생신이라고 해서 특별할것은 없지만 연세 드신 당신의 그날이라니 문득 7, 8년전쯤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 계실 때 일이 떠올라 눈시울이 적셔진다. 
그때도 엄마의 생신 직후였는데 갑작스런 심장 질환으로 위독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곳곳에 흩어져 사는 우리 육남매는 한자리에 모였다.

엄마가 몰라보게 부은 얼굴로 각종 기계에 둘러싸여 중환자실에 누워계실 때 당시, 정해진 시간 동안 침상 곁을 지키는 일 외에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깨어났을 때 가족들이 옆에 있는 것이 위로가 될까 해서, 혹은 의사나 간호사의 말을 알아듣기 힘드실까 염려되어 우리는 순서를 정해 교대로 어머니 곁을 지켰다.

병실에는 우리만의 병상일지를 마련했고 당번은 병세의 진전이나 친지들의 방문, 주의사항 등을 기록하여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편지를 써 넣기도 했다.
병세에 차도가 있자 우선 멀리서 사는 형제들은 나머지 형제들에게 수고를 부탁하고 한명씩 두명씩 병원을 떠났다.  나도 3일째 되던날 올라오게 되었는데 퇴원까지 지켜보지 못한채 올라오려니 행여 병세가 다시 위중해질까 마음은 더욱 불안했다.
그렇게 지낸지 한참만에 천만 다행으로 엄마는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서서히 회복한 결과, 지금은 원래의 건강을 거의 되찾았다.

요즘 엄마는 시골에서 건강하게 아버지와 함께 잘 지내고 계신다. 옆에 오빠가 있는것도 다른 시골 부모님들에 비해 복 받으신 일이다.
논두렁 풀잎 사이에 반짝반짝 개똥벌레가 흥을 돋우며 깊어가는 여름밤에 당신이 차려주시던 내 생일, 그리고 엄동설한 이 시기에 맞이하신 당신의 생신. 그저 평화스럽고 행복했던 그 순간들이 오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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