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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동방예의지국
2012-11-29 15:47:28최종 업데이트 : 2012-11-29 15:47:28 작성자 : 시민기자   이선화
전철을 탔는데 만원이었다. 간신히 몸을 밀어 넣고 서 있었는데 한 남자가 "잠시만요"라며 나를 살짝 밀듯이 하면서 옆으로 지나갔다. 가방을 메고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고등학생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나는 원래 에스컬레이터를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타는데 사람들은 유난히 왼쪽에 탄다. 그 이유는 한때 에스컬레이터도 왼쪽에 서서 가고, 남는 오른쪽은 바쁜 사람이 걸어서 갈수 있도록 하자는 배려적 차원의 캠페인이 있었기 때문인듯 하다.
그게 무척 잘못된 일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걸 깨닫고 지금은 그런거 다 없어졌는데 아직도 사람들에게는 그런게 조금 남아 있는것 같다.
어쨌거나 지하철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에 서서 안전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밀치며 "잠깐만요"라며 내 옆을 지나갔다.

 
우리는 여전히 동방예의지국_1
우리는 여전히 동방예의지국_1

사람들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안되면서 슬그머니 화가났다. 
왜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분명히 불편을 끼치면서도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할줄 모르고 순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잠깐만요"라고 하고 마는걸까. 혹시 내가 여자라고 해서 무시한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만 그런게 아니었다. 지하철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항상 듣는 말이 "잠깐만요"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주는 행동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라든가 "미안합니다, 제가 이쪽으로 좀 가도 되겠습니까(가겠습니다)"라고는 하지 않고 대부분 "잠깐만요" "잠시만요"라고만 말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혹은 가정에서도 항상 아이들이 듣는데서 그렇게 말을 하니 아이들도 똑같이 보고 듣고 배운다. 그러니 어른들을 밀치고 옆으로 지나갈때조차도 어린 아이들이 어른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지나가도 될까요?"라는 정중한 양해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 해 전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우리말글의 표현에 대해 얼마나 잘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지 조사한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잠깐만요!"가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는 공손하고 예의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왜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라는 표현을 듣기 어렵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쓰는 "잠깐만요!"라는 표현은 매우 자기중심적이다. 즉 내가 나의 권리를 행사하고 싶으니 당신이 잠시만 당신의 권리를 유보해 달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상대편에 대한 배려가 깊으면 내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때에는 당연히 내가 미안하고 내가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잠깐만요!"라고 하면서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또 요즘 지하철에서는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열심히 화장하는 젊은 여성들을 많이 보게 된다. 심지어 기초화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눈썹 그리는 것까지 20∼30분을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에 몰입하는 여성들도 있다.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전화통화하거나, 자기 집 거실에서 이야기하듯 떠들어 대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킨다고 오히려 시끄럽게 아이들과 다투는 경우도 많다. 애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남의 집 일인 양 못본체 하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괜히 앞에 서있는 사람한테 "아줌마! 얘 좀 혼내 주세요."라고 애교 섞인 주문까지 하는 젊은 엄마도 있다.

언젠가 한 신문에서 지하철에서 진한 애정표현이나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 젊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의외로 그런 행동이 보기는 좋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심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니니까 상관없다는 대답이 많았다.

잘 아는 대학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고 한다. 피곤해서 조는 것과는 달리 엎드려서 자는 것은 강의하는 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지적을 했더니, 자신은 다른 사람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자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인 것 같다고 하더란다. 그 학생의 학점은 상상이 간다. 

우리는 공동체 사회라고도 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라고도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를 먼저 생각하는게 매너 아닐까. 우리는 그래도 여전히 자타공인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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