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언제 또 올거예요?장애인들을 기억하며
희망봉사단 성과보고회와 토론회를 마치면서
2012-11-29 20:25:01최종 업데이트 : 2012-11-29 20:25:0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성희

올해 처음 시작한 교통안전공단 소속 희망봉사단원 일. 11월 29일 전국 희망봉사단원 150명과 함께한 성과보고회및 토론회가 있었다. 
시작 초반부터 아픔도 많았고 명찰을 달았어도 장애인들의 특성상 신분을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생겨 그분들에게 나름 불편함도 주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친정어머니가 무단 횡단사고로 돌아가신 교통사고 당사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남다르고 심각하게 다가온다.

언제 또 올거예요?장애인들을 기억하며_1
희망봉사단 성과보고회및 토론회

1997년 영통택지개발지구가 완성이 되어 영통주민들이 그 해 12월 한가구 두가구 속속들이 입주를 하고 우리가족도 1998년 입주를 하였다. 
서울에서 세입자로 살다가 IMF 가 터져 우리가족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어 전세금을 제때 돌려 받지 못하자 내집을 장만하고도 남들보다 6개월이나 늦은 입주를 했던 해였다. 
그리고 1999년 어린이교통공원이 10월 1일 개장을 하였는데 그때 내가 선택한 어린이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열정과 헌신을 아끼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선포했었다. 친정어머니 작고하신지 1년 후였다.

그 이후 많은 봉사자들이 다녀갔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 또한 사람속에서 나름 상처도 받고 했다. 상처는 상대가 있어야 하기에 마냥 내가 받기만 하였다기 보단 그 만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시없는 장미가 없고 골짜기가 깊을 수록 물을 맑다고 했다. 그만큼의 고통없이 얻는 것은 없듯이 이젠 수원시청 교통행정과에서 내집 처럼 잘 해주시고 우리 봉사자들에게도 나름 처우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무엇보다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좋은 견학장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으로 함꼐 하길 소망하고 도움을 주고 있는데 그 선상에 희망봉사단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안전교육이 아닌 직접 교통사고 당사자를 찾아 가서 힐링하는 작업이다. 
말이 힐링이지 오히려 자신이 치유를 받고 오는 격이 되어 버렸으니 어떤 물질이나 정신 그리고 시간을 그분들에게 보탬으로 드린다 해도 아깝지가 않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마음을 함께 하였지만 그분들에게 경제적 보탬이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때는 자신도 안타깝고 한계를 느꼈지만 그래도 세상은 해결 안될 일은 없다라는 믿음으로 점철하였더니 조금씩 실마리는 보이는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교통사고 지원자 중 몇분 중 한사람인 이전형씨는 나에게 그분의 존재감은 컸다.  
그는 이미 식물인간이거나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불굴의 의지로 기적처럼 회생하여 올해는 장애인 운전면허 2종 보통을 취득하였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운전면허를 어찌 딸 수 있단 말인가 정말 표현이 안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를 불러 간 그곳이 용인 운전면허 시험장이었던 것이다.
 
그에게서 보이지 않는 열정과 용기가 나를 또 한번 일으켜 세웠고 이전형씨 뿐만이 아니라 어떤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그분들보다 건강한 내가 그냥 평범하게 지낸다는 자체가 그분들에게는 위선이요 교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들고 했다. 
그래서 가끔은 심장박동소리보다 더한 심호흡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어설픈 심정일지라도 나도 그분들과 같이 호흡하고자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동반자가 되어 보기도 했었다. 
그런 좋은 인연들 정말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이었지만 그분들이 그저 섣부른 행동으로만 이어가는 사람들이 아닌 진정코 내가 그분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을 기억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둔동 김영수 할아버지는 혼자 지낸지가 몇 해년인데도 그래도 감사해 하는 말씀이 "자전거 타고 운동가고는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한다.
이른이 넘은 연세에 그런 표현을 한다는 것이 참 목이 메었다. 왜냐하면 그 분 또한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한 몸인데도 감사해 한다는 것이다.
운동을 게을리하고 싫어하는 나에게는 신호탄처럼 폭음과도 같은 말씀. 그만큼 운동이 그분의 생명줄이었음을. 

그렇게 올 한해는 가슴 아픈 사연들로 보내기도 했지만 마냥 아프고 비참하지는 않았다는 것. 장안구 권선구 각 동들마다 지나갈 때면 나는 갈 곳이 있다는 것.
몇번 뵌 분들은 이젠 내 목소리만 들어도 "어서 오세요" 한다. 모든 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는 것을 불편하고 꺼리는 분도 물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다녀간 곳은 다시 재방문을 하였을 때..."언제 또 오셔요.." 라는 그 멘트를 날리는 분들이 대부분이시기에 그래도 희망적이고 그래서 교통안전공단에서 희망봉사단원이라는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3기생으로로 나는 수원시 장안구 권선구를 책임졌었다. 내년에도 또 그분들과 조우를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올해 만났던 몇분들의 인연들은 그분들과 함께 오래도록 갈 것이다. 미역과 파래김을 들고 세류동에 사는 국진이 어머님을 뵈러 갔을 때 비가 오고 있었다. 
그 비를 맞으면서도 어머니께 직접 미역을 드리고 싶었는데 혹시 누군가 미역을 갖고 갈까봐 현관문에 매달고서도 한참을 서성였더니 어머니께서 병원다녀오셨다고 올라오고 계셨다.
나의 두손을 잡으시면서 "비오고 추운데 언제부터 계셨냐고" 하면서 눈시울이 글썽 하셨을때 게 내일이구나 했었다. 국진이는 누워있으니 문을 열어 줄 수 없고 나는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기 때문에 급기야 어머님을 만나서 다행이었고 누워있는 국진이 미역국 잘 끓여 주라고 말하고는 지역간담회가 있어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국진이를 보러 가는 날이 다가 온다.

언제 또 올거예요?장애인들을 기억하며_2
선물로 주신 가죽장갑

이렇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참 행복이든지 금곡동 김정자 할머니는 내가 엄마처럼 여기는 분이다. 첫번째 방문 날에는 내가 버스를 잘 못타고 간 것 같다고 직접 전화도 하였다고 한다. 
부재중이 찍혀 전화를 걸었더니 안받으셨는데 그 이유였다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 날에는 또 다르게 탈까봐 한번 더 수원역가는 버스노선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추운날씨에도 한참을 서성거리셨다. 아마 지금도 파지를 모아서 적은 돈이지만 생활에 보탬이 되기 위해 근처 인근 학교를 서성이고 계실지 모르겠다. 

한해 동안 희망봉사단원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다고 행사가 끝나고 선물을 주셨다. 열고 보니 가죽 장갑이었다. 가죽 장갑을 보니 이건 김정자 할머니에게 어울리겠다. 장갑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 다시 포장을 했다. 김정자 할머니께도 조만간 전달이 될 것이다. 내것 하나 끼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비워야지 채우지 마냥 담기만 하면 배는 분명 가라앉기 밖에 더 하겠는가 싶어 지금 설레인다. 장갑끼고 겨울을 조금은 따뜻하게 보내시길 소망해 본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내가 더 아프지 말아야지 내가 더 건강해야지 그리고 내가 더 구원의 손길을 줄 수 없을까. 항상 고심하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올해 나는 김장을 했다. 그리고 동치미도 했다. 그리고 시래기도 말렸다. 
최대한 내가 작은 정성이지만 그들에게 전달 될 수 있다는 것이 좋고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생각에 벌써 부터 마음은 그곳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나의 한달은 달력의 일년보다 더 소중하고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프린트버튼캡쳐버튼추천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