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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전단지
한장쯤 선뜻 받아 드는 마음의 배려
2012-11-22 14:04:00최종 업데이트 : 2012-11-22 14:04:00 작성자 : 시민기자   유병화

아주 오래전, 내가 학교 다닐때는 고입시가 거의 대입시처럼 치열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명문고에 가겠다는 이유로 고입시를 재수하던 사람도 많을때였다.
그때 고입시를 치른 뒤 교문을 나서면 제일먼저 만나는 사람들이 바로 전단지를 나눠주던 할머니, 아줌마였다.
당시 이분들은 놀랍게도 시내 입시학원 선전 전단지를 나눠주고 계셨다. 혹시 시험에 떨어지면 자기네 학원에 등록해서 재수하라는 뜻이었다.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서 치른건데, 시험장 나서자마자 교문에서 이런 전단지 받아들고는 기분 좋을리 만무였지만 그때는 다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학 시절에도 토익시험이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고사장 교문은 수험생뿐만 아니라 할머니들로 붐볐다.  바로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들이다. 

토익시험이 있는 날이면 수험생들보다도 할머니들이 더 빨리 와 교문을 지키고 선다. 햇볕을 가리기 위한 챙 넓은 모자와 팔 토시 복장은 필수다. 수험생들이 나타나면 할머니들은 각자 토익학원 전단지를 손에 들고 학생들에게 나눠주느라 바쁘다.
이런 할머니들의 모습을 고사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출퇴근 시간에 마트 개업이나 미용, 성형외과, 맛사지, 학원, 식당 등의 전단지를 돌린다. 연로한 할머니들은 생계수단으로 이걸 하시는 것이다.

어제 퇴근길에도 지하철역 입구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계신 할머니를 보았다. 그 할머니께서는 모 학원 전단지를 돌리고 계셨다. 
저걸 이렇게 서서 돌리면 혹시 시간당 얼마나 받으실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 마음먹고 물어보았다. 
모자를 눌러쓰고 한손에는 전단지 (200~300장은 되어 보임)을 들고, 다른 한손은 낱장씩 역을 지나는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맘먹고 물어 보기로 하였다. 

할머니의 전단지 _1
내가 받은 전단지

전단지를 받은 후 한 장 더 달라 하자 고맙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뜻 두장을 더 주신다. 나는 때는 이때다 싶어 "혹시 할머니 힘드시지 않으세요?" 그랬더니 "나이 60대 중간인데 힘들긴... 그냥 할만 허지"라면서 말씀을 하셨다. 
할머니는 1주일에 한두번은 전단지를 돌리신다 했다. 운 좋으면 서너건도 되지만 일거리가 없을때는 보름 내내 하나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셨다.

힘든 것은 젊은 아가씨와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새댁, 혹은 멀끔하게 생긴 신사분들이  전단지를 주면 받지 않은채 아무 반응없이 얼굴을 찌푸리고 지나가는 모습이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멀찌감치에서 걸어 오다가 전단지 돌리는 것을 보고 우회하여 돌아가는 모습도 보게 되는데 이럴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반대로 친절한 분도 많다고 한다. 가령, 전단지를 주면 두손으로 공손하게 받으시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주느라 미처 손이 못가는 사이에 멈칫 서서 기다렸다가 전단지를 달라고 해서 받아 가는 분도 계시고, 한 10장을 달라는 분도 계신다면서 항상 밝은 미소를 보인다고 하신다. 

전단지 할머니들에게 가장 어려운 때가 바로 요즘같은 겨울과 한여름이라 한다.
한여름에는 무더위 때문에 할머니도 힘들고, 사람들의 불쾌지수도 높아 전단지를 잘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전단지를 모두 나눠주어야 하는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곤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요즘같은 겨울도 마찬가지다. 추우니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니 전단지를 받기 위해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일 자체가 귀찮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 전닩 들이밀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같이 힘들다 하고, 너도나도 아우성인 불경기인 요즘. 할머니들이 전단지를 돌리는 것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내 돈 들어가는것 아니고, 손해 보는 일도 아니니 생계수단으로 어렵사리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전단지를 외면하지 말고 선뜻 받아 드는 아량을 베풀어 보는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따스해 보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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