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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진 빚 언제 다 갚으리요
2012-12-07 18:31:49최종 업데이트 : 2012-12-07 18:31:49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희

남편은 김을 먹기는 하지만 마트에서 사는 김은 절대 먹지 않는다. 다만 집에서 구운 김을 먹는다. 이유는 집에서 김을 구울때는 시골에서 가져온 100% 순수 들기름을 듬뿍 발라 굽기 때문에 그 맛에 길들여져서 제품화 된 김은 먹지 않는 것이다.

집에서 김을 굽기 위해 우리는 정기적으로 시골에서 기름을 가져다 먹는다. 당연히 고향 부모님댁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김을 굽는데는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더 좋아한다. 
친정에서 가져온 기름이 동이 나 지난 주말에 시골에 내려갔다.
시골에는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놓으신 들깨가 있고 그것을 잘 볶아 낸 다음 통째로 기름 집에 들고 가서 눈 앞에서 직접 기름을 짜 낸다. 중국산이 눈꼽만큼도 낄 여지가 없고, 또한 기름 외에 어떤 이물질도 들어갈 수 없는 완벽한 천연 웰빙 기름인 것이다.

당신에게 진 빚 언제 다 갚으리요_1
당신에게 진 빚 언제 다 갚으리요_1

토요일 저녁에 내려가 일요일 아침 일찍 농사지은 들깨 한말과 고추 한자루 남짓을 들고 기름집에 들렀다. 기름집에서는 기름만 짜는게 아니라 고춧가루도 빻아냈는데 그곳은 친정 엄마가 자주 가시는 단골집이었다. 
처음엔 들깨를 조금 남겨 두었다가 볶은깨를 갈아서도 쓸 요량이었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어 모조리 기름을 짜기로 했다.

연로하신 친정엄마가 어렵사리 농사지어 주시는 기름이니 번번히 함부로 먹기가 죄스러워  손이 떨리지만 "이거야 내가 농사지은 것이니 갖다가 마음놓고 맛있게 먹거라" 하시는 엄마의 정성을 받잡고 정말이지 맛있게 먹는게 효도인것 같아 우리는 항상 이 맛있는 기름을 즐겨 먹는다.

농촌에서 자식들을 주기 위해 농사짓는 것들은 화학비료는 물론 농약 한번 안 뿌리고 키운 것이니 그야말로 마지막 한방울까지 기름을 짜서 먹어야 제격일 것 같았다.
사람이 붐비는 기름집에 들르니 얼마후 우리 순서였다. 아, 얼마만에 와본 기름집인가. 적어도 20년 이상의 세월 저편의 일이 아닌가 싶다.

명절을 하루나 이틀 앞둔 날 새벽 미리 물에 담가 씻은 뒤 잘 말려 그것을 볶은 후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인 어머니는 곤히 잠들어 있는 우리가 깰세라 살금살금 기름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아침 밥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자면 눈이 빠지는데 엄마는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기계음으로 씨끄럽던 기름집에서 나와 오후 2, 3시가 되어서 집으로 오셨다.

기름을 짜서 판 돈으로 이것저것 제수용품과 생필품도 사 오셨다.
그 생각을 하며 실로 20여년만에 기름 짜는 기계 앞에 앉아 있자니 삐그덕 삐그덕 덜컹덜컹 돌아가는 기계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구경을 하다보니 엄마는 그냥 맥놓고 앉아서 구경만 하는게 아니라 "더 꾹꾹 눌러서 짜 달라, 한방울도 남기지 말고 병에 담가 달라, 다른 먼데기(먼지나 이물질 등)가 섞이지 않게 해달라" 많은 주문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기름집 주인이라면 귀찮게 느낄 정도였는데 기름집 사장님은 의외로 덤덤하게 "네,네 알았습니다"하며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는듯 했다.

모르긴 해도 엄마는 이 기름집에 단골이면서 이런 잔소리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듯 했다. 이미 엄마의 레파토리를 아는 기름집 사장님도 당연히 그러려니 하면서 엄마의 주문에 특별한 이견을 달지 않고 "네, 네"하는듯 했다.

그뿐인가. 이번에는 고추가루를 빻자마자 엄마는 가루가 다 빠져나온 기계속을 기름집 한켠에 놓여져 있던 몽당 빗자루로 한번 더 쓸어내리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엄마는 기름집 살림살이까지 꿰고 계셨던 것이다. 
"내 물건 맡겼을 때는 끝까지 지켜앉아 확인 혀야 한다"고 늘상 말씀하셨던 어머니는 들깨 보따리나 고추보따리를 방앗간에 턱하니 맡겨놓고 볼 일 보러 가는 다른 아줌마들을 못 미더워했다. 

쌀자루로 하나 정도 되게 담아서 들고간 고추를 빻고 나니 기름과 함께 모든 일이 다 끝났다. 생각보다 양이 적은지 엄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을 본 기름집 사장님이  한마디 거드신다.
"그래도 많은 거유. 요세 고추가 살이 얇어서 가루가 많이 안나온다니까. 그래도 기름은 실허게 나왔는디"

기름 병에 마개를 채워 꼭꼭 닫아주는 사장님에게 다음에 또 오리라는 인사를 마치고 나왔다. 남편은 맨날 얻어먹는 기름과 고춧가루를 이렇게 만들어 내는 것을 처음 보고는 느끼는게 많았는지 "장모님이 엄청 고생하셨네"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장모한테 용돈이라도 많이 드리면 되잖아"
내 한마디에 남편은 말이라도 시원하게 "그러지뭐"라며 웃었다.

앞으로는 기름이나 고춧가루 떨어지면 그냥 엄마더러 부쳐 달라고 할게 아니라 친정에 내려가서 함께 기름집에 들를 참이다. 나도 보고 느끼는게 많은 하루였다. 당신의 땀과 손때가 어떻게 묻어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너무 고마운 부모님이시다. 이 빚 언제 다 갚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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