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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체험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다
12일 수원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들의 색다른 위크숍...현실감 있는 역사에 공감
2019-10-13 21:35:36최종 업데이트 : 2019-10-14 15:09:59 작성자 : 시민기자   김청극
기자는 수원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 가을 워크숍에서 수원의 대표적인 문화재인 수원화성을 체험할 수 있었다. 12일 오전 9시30분에 연무대(鍊武臺) 안내소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연무대는 동장대라고 하는데 군사지휘소로 수원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가 있다. 두 곳 모두 사방이 탁트여 수원시내를 조망하기에 좋았다. 가을바람이 조금 심하게 불어 다소 차가운 날씨였다. 법원직원을 포함해 총 26명이 모였다. 가정법원장과 담당 판사도 함께 했다. 주변에는 모처럼 주말을 맞아 곳곳에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원을 점검한 후 간식을 나눠 주었다. 물과 간단한 과자류였다.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났다. 고영수 해설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과거 연예인과 이름이 같다고했다. 이제 본격적인 수원화성 문화체험이 시작됐다. 먼저 수원화성의 대략적인 것을 해설사는 설명했다. "수원화성성곽은 정조대왕의 꿈이 담긴 성곽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한다"고 소개했다. 성곽을 따라 걸으니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바람이 불어 순시(巡視)라고 쓰여 있는 깃발이 나부꼈다. 동암문을 지나 동북포루(東北鋪樓)에 다다랐다. 이곳은 사적 제3호로 지정됐고 일명 '갓건대'라고도 한다고 했다. 해설사는 성곽의 길이와 높이, 특징, 기능과 역할을 상세히 설명했다. 매우 과학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적의 침략에 대비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눈썹돌 일명 미석이라는 것도 설명했다. 좌청문 우백호도 설명했다. 북암문에 도착했다. 성벽은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
방화수류정 앞에서의 고영수 해설사의  설명

방화수류정 앞에서 고영수 해설사가 설명을 하고 있다.

동북각루를 거쳐 방화수류정에 도착했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2011년 3월3일 보물 제 1709호로 지정됐다. '꽃을 쫒고 버드나무 길을 따라 노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이다. 동북쪽의 정자로 동북각루라고 한다. 3대 정자중의 하나로 지붕이 다각형으로 정자형 지붕이었다. 꼭대기는 절병통이라고 했다. 멀리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며 해설사는 자세히 설명을 했다. 수원8경의 하나로 기둥은 원통형이었다. 그런데 사각형으로 변했다고 했다. 10자 무늬를 모두가 자세히 들여다 보며 깊은 역사공부에 빠져 들었다. 해설사는 "십자 무늬는 저녁이 되면 서쪽의 노을에 십자가가 빛난다"고 하며 "다산 정약용이 설계했다"고 했다. 이어서 해설사는 "여기에는 조선인을 향한 깨우침과 경각심을 일으키려는 정약용의 깊은 뜻이 숨어있다"고 했다. 건물의 아름다움을 말하며 어머니의 한복, 버선코, 부채의 선 등 3대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을 선에 비유했다.
북수문을 바라보며 건축미와 예술성에 감탄하다

수원팔경의 하나인 북수문을 뒤로 하고 장안문으로 향했다.

수원 팔경의 하나인 북수문으로 내려왔다. 수원화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의 북쪽과 남쪽에 세워진 2개의 수문이다. 특히 화홍문과 인근의 방화수류정과 용연은 뛰어난 건축미로 수원화성에서 손꼽히는 절경이다. 그런데 화홍문의 간판은 없어져 온데 간데 없었다.

북동포루를 거쳐 북동치, 북동적대를 지나 장안문(長安門)에 다다랐다. 이곳은 수원 사람들은 보통 북문이라고 부른다. 이곳이 수원화성의 정문이었다.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다고 했다. 179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에 공사를 마쳤다. 과거 전쟁으로 상당 부분이 불타 없어졌고 남아있는 것은 복원된 건축물이다.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기 위한 8일간의 정조대왕 능행차를 처음 맞이한 곳이다. 일행은 마루에 앉아 쉬면서 천장을 보니 망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설사는 이유를 꼼꼼하게 설명했다. 11시 정각 신풍루(新豊樓)에 도착을 해야 되기 때문에 15분을 남기고 해설사와 헤어졌다. 총총걸음으로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골목길마다 잘 가꾸어진 문화와 역사가 배어 있었다. 화성행궁 앞 신풍루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화성행궁 신풍루에서의 '무예24기'(활쏘기 외 20분 진행)

화성행궁 신풍루에서의 '무예24기'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1795년에는 정조대왕이 참석한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끓여 먹이는 행사를 한 곳이다. 무예24기 시범상설공연이 시작됐다. 무예24기는 정조대왕이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에게 편찬을 지시한 '무예후년교범'에 실린 무예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처음 4명의 무사가 활쏘기를 시작하여 전통칼법 예도, 무기없는 맨손무예 등 약20분에 걸쳐 시범을 보였다. 매 순서가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신풍루 옆문으로 입장한 후 이명숙 해설사를 만났다. 화성행궁을 전문으로 하는 문화해설사였다. 먼저 화성행궁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행궁인데 일제 강점기때 가장 먼저 파괴되는 아픔이 있었음을 소개했다. 묘-원-릉을 이야기하며 수원 땅이 가장 좋은 명당이라는 말도 했다. 오른편으로 600년 된 느티나무가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반 이상은 죽은 것 같았다. 8부자(富者)거리를 이야기하며 "정자동 일대, 만석공원 일대는 길이 반듯하여 대유평(大有坪)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말했다. 모두가 고궁의 정취와 색다른 운치에 희한해하는 면도 보였다.
봉수당 앞에서 문화해설사의 역사적 배경 설명

봉수당 앞에서 문화해설사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봉수당(奉壽堂)에 다다랐다. 이곳은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진찬연)을 열었던 곳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그대로 보여지는 곳이다. 진찬례에서 혜경궁 홍씨는 거처인 장락당에서 봉수당으로 이동해 정조의 잔을 받게 된다. 진찬연의 그림을 보며 그 규모에 모두가 놀라움을 나타냈다. 지난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렸을 때 2회에 걸친 진찬연 재현이 있었다.

해설사는 이곳의 역사적, 과학적, 예술적 가치를 발견해야함을 강조하며 역사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느덧 5분 전 12시가 됐다. 해설사는 이야기를 마치고 일행은 화성행궁의 여러 곳을 세밀하게 살폈다. 삼삼오오 걸으며 교과서를 통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모두가 현실감 있는 역사라는데 공감했다.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 관람을 위한 로비에서

수원시립아이파크 미술관 관람을 위해 로비에서 모인 일행들.

수원에서 오래 살고 있다는 한 위원들도 이곳은 처음이라는 말에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출구를 향해 나와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10분 거리였다. 화성행궁 왕의 골목길을 걸었다. 푸짐한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수원시립 아이파크미술관을 1시간 가량 견학했다. 이렇게 우리들은 '이야기를 따라 걷는 문화여행'을 통해 새로운 역사 인식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색다른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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