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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발길이 광교산 종루봉에?
망해정서 나옹선사와 춘탄 이지영의 문장도 만날 수 있어
2018-11-16 17:28:45최종 업데이트 : 2018-11-16 19:18:0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가끔 광교산에 간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쩌다 가는 산행이라 산행코스는 똑같다. 경기대학교 입구 반딧불이 화장실 옆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문암골 갈림길, 백년수 정상, 형제봉, 종루봉, 토끼재, 시루봉, 노루목, 억새밭을 거쳐 절터약수터, 사방댐 방향으로 하산한다. 산행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산을 품에 안고 가다보면 약 4시간 정도 걸린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으며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는 숨이 턱에 찬다. 한걸음 한걸음은 숲속을 헤매고 있는 듯 하지만 능선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고 산이 보인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숲속을 헤맬 때도 있고 산하를 굽어볼 때도 있는 것 같다.
광교산의 가을을 담은 사방댐

광교산의 가을을 담은 사방댐

문암골 갈림길에서 백년수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좌우에는 작은 비석이 있다.
'이곳은 6.25 전쟁 당시 군사 작전 중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국군장병의 유해와 유품이 발견된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런 문구와 태극기가 꽂혀있고 조화가 이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지나는 길에 잠시 묵념을 하고 산행하기를.

형제봉을 지나 종루봉 가기 전에 있는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에 잠시 들른다. 경기도기념물 제38호로 지정했다는 문화재 안내간판이 있다.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1월)때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던 김준룡(1586-1642)장군의 전승지에 비 모양으로 암반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중략> 암반에는 세로로 '충양공김준룡전승지(忠襄公金俊龍戰勝地)'라 큰 글씨로 새겼고 그 좌우에 조금 작은 글씨로 '병자청란공제호남병(丙子淸乨公提湖南兵)'과 '근왕지차살청삼대장(覲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 써 놓았다'
병자호란 때 호남의 병사를 이끌고 왕을 뵈러 가던 길에 이곳에서 청나라 3명의 대장을 죽였다는 뜻이다.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김준룡장군 전승지 및 비

이 유적지는 광교산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아무나 볼 수 있는 문화재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2시간 이상 등산을 해야만 볼 수 있다. 문화재 안내간판이 있는 곳에서 산행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대부분 안내간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간다. 뭐가 그리 바쁜지... 산행을 하면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고단할까.

종루봉에는 망해정(望海亭)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정자가 있고 정자 안에는 시(詩) 현판 두 개가 더 걸려있다. 잠시 쉬면서 시를 읽어보는 여유를 가진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의 시로 알려진  문장을 읽고 있자니 마음 속에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지나가는 듯 하다.

'산중호우임간조 세외청음석상천(山中好友林間鳥 世外淸音石上泉) 산중에 좋은 친구는 숲속의 새요 세상에서 가장 맑은 소리는 돌 위에 흐르는 물소리다'
내용도 멋지고 예서체가 멋스럽다. 이 시는 번암 채제공의 문인인 춘탄(春灘) 이지영(李之榮)의 '춘탄정원운(春灘亭原韻)'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종루봉 망해정에 있는 시현판

종루봉 망해정에 있는 시현판

종루봉 망해정에 있는 시현판

종루봉 망해정에 있는 시현판

망해정 옆에는 '종루봉과 망해정(望海亭)'이란 안내문이 있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과 관련된 내용이다. '전국 곳곳을 돌던 중 광교산 문암골에 머물며 종루봉(이곳을 찾았을 때 종과 종루를 보고 '종대봉'이라 한 것에서 유래) 부근 이곳에서 서해를 바라보며 종은 있지만 울릴 사람이 없으니 종과 자신의 신세가 같다며 한탄하며...<중략> 이곳을 망해정이라 하였다'고 쓰여 있는데 근거는 있는 것일까.

수원군읍지 고적(古蹟) 편에 '종루(鐘樓)'를 설명하고 있다.
'광교산에 있다. 예부터 전하는 말에는 산중에 89암자가 있고 이 봉우리에 다락을 이룩하여 종을 달았다고 해서 종루봉이라고 일컬어졌다고 한다. 오늘에는 태봉이라 일컫는다. 풍수지리 비록에 고운 최치원이 태봉에 올랐다고 한 것을 보면 태봉이 본명이 아닌가 한다'

'문암(門巖)'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광교산에 있다. 풍수지리 비록에 '우리나라에 문암이 3곳 있다'고 하였다. 최고운이 3곳을 두루 편력하였으나 가장 이 바위를 사랑하여 암자를 지어 기거하였으며 우물 밑에 구리주머니를 묻었다고 한다'

종루와 문암을 설명한 문구 어디에도 망해정이란 얘기가 없다. 망해정이란 얘기가 전설인지 기록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이기는 하다. 

광교산, 김준룡장군, 망해정,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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