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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다방…계란 노른자 띄운 모닝커피 추억
정보 교환하는 소통의 장소…젊은시절 추억 새록새록
2020-01-16 19:38:55최종 업데이트 : 2020-01-17 11:50:57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설 대목이 일주일 남짓 남았다. 대목장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팔달시장을 찾았다. 평상시와 별 다름없이 보여 한 상인에게 요즘 장사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대목때 쓰려고 돈을 아끼기 때문에 장사가 안될때 라고 한다. 명절 2~3일 전쯤 돼야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팔달문 근처의 한 식당에서 겨울철에 제맛이라는 굴 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함께간 친구가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가면 되겠냐면서 기사거리를 알려줄테니 따라오라고 한다.

가림막 의자 난로도 옛날식 그대로다

70~80년대에 다방에서 쉽게 볼수 있었던 가림막과  의자, 그리고  난로가 추억을 되살리기게 한다.

팔달문에서 행궁광장 방향으로 종로 거리를 약 200여m쯤 올라가더니 건물을 가르키며 간판을 보라고 한다. OO다방이라고 쓰여 있다. 요즘은 카페라는 간판을 많이 쓰는데 다방이라는 간판만 보아도 옛날 생각이 난다. 지하로 내려가 다방에 들어서니 젊은 시절에 드나들던 다방의  칸막이며 의자, 난로 까지 옛날 분위기 그대로다. 그런데 다방은 옛 다방이로되 사람들은 옛 사람들이 아니로다. 그시절 젊은이들이 백발 노인이 되어 듬성듬성 앉아 있다. 20대의 다방 마담이나 레지도 60대 할머니들로 바뀌었다. 불현듯 계란 노른자 띄워 마시던 모닝커피가 생각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차 주문을 받으러 왔다. 식사후라  커피(3000원)로 주문을 했다. e수원 뉴스에서 옛 추억거리를 찾아 글을쓰는 사람인데 다방 내부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주인 마담을 불러준다. 마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방을 운영한지가 얼마나 됐는지를 물었더니 전에 하시던분이 연세가 많아 인수한지 3년째라고 한다. 나이를 물어보니 60대 중반이라고 한다.

의자마다 칸막이를 했다.

서로 보이지 않게 의자마다 빙 둘러 칸막이를 했다

젊은이들도 더러 오느냐고 물었더니 노인들만 오는데 최고령이 93세고 대부분 80대 중후반이며 70대는 어린나이라고 한다. 차는 주로 뭘 주문하느냐고 물었더니 커피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젊은 사람들은 아침밥은 안먹어도 커피는 마시고 출근한다. 커피는 그만큼 한국인들의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커피에 밀려 사라졌지만 한국에도 커피와 같은 보리차(麥茶)가 있었다. 보리차는 겉보리를 검게 볶아서 주전자 물에 한줌을 넣고 끓이면 색갈이 커피와 똑 같다. 진하게 끓이면 쓴맛도 똑 같다. 관공서(官公署)에가도 보리차로 손님 접대를 했고 음식점에 가도 보리차를 내놓았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가면 의사들은 보리차를 많이 먹으라고 권장했다.

 

전기밥솥이 나오면서 누릉지와 숭늉이 자리를 감추고 그자리를 보리를 검게 볶은 보리차가 차지했다. 한국인들의 만능차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서양식 다방을 개점하면서 부터 비롯된다. 이후 해방과 6.25를 거쳐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오면서 암암리에 시중에서 암거래되기 시작했다.

 

커피 문화는 농촌에 까지 전파 되어 면마다 다방이 생기기 시작했고  시장이 낀 큰 면에는 다방이 4~5개 까지 있기도 했다. 지금의 노인 세대가 1960년대 30대 전후의 젊은시절만 해도 농촌에는 청년 중년 할것없이 할일이 없어 노는 사람들이 많았다. 할일들이 없으니 밥만 먹으면 다방으로 모였다. 다방은 마담과 레지 1~2명씩 두고 운영됐다. 당시 커피 한잔값이 250원이었는데 마담이 손을 떼는 한달간은 외상을 할수 있으니 성황을 이뤘다.

이처럼 커피는 농촌 구석구석까지 급속도로 확산됐다. 집에 친구들이나 손님이 오면 의례히 다방에 커피 배달을 시켰다. 모를 심거나  벼베기 같은 농사철에는  점심을 들에서 먹었는데  일꾼들에게도 물대신 다방 커피를 배달시켜 먹을 정도였다.  밥먹고 숭늉을 마시던 사람들이 서양의 검고 쓴맛 나는 커피를 마시자니 입맛이 써서 설탕을 잔뜩 부어 달게 해서 마셨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자 국내에 커피 메이커인 OO식품이 설립되면서 커피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숭늉에서 보리차를 거쳐 커피문화로 새롭게 자리를 잡게 된것이다. 도시나  농촌이나 그시절 다방은 만남의 장소이자 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의 장소였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가 열리면서 농촌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시로 빠져 나가자 농촌 인구가 점점 줄어 들었다.

농촌과 도시 불문하고  확장일로를 걸어왔던 다방이 사양길로 접어들더니 지금은 완전 초토화 되었다. 그나마 노인들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옛다방도 노인들의 운명과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방문을 나섰다.

계란 노른자 넣고 마시던 모닝코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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