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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만나다
문화유산, 아는 만큼 행복이 온다
2020-07-30 15:25:12최종 업데이트 : 2020-07-31 17:30:19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전북 고창의 고인돌 박물관 내에 세계문화유산 관련 자료에 있는 화성에 관한 설명.

전북 고창의 고인돌 박물관 내에 세계문화유산 관련 자료에 있는 화성에 관한 설명.


지인과 고창 여행을 했다. 동학혁명유적지를 보고, 선운사도 찾았다. 고인돌이 유명하다고 해서 고인돌 박물관도 갔다. 이 지역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박물관에는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 고창 고인돌(고창, 화순, 강화 세 지역에 있는 고인돌이 지정됨)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수원 화성 안내도 있다. 소개 내용을 옮겨보면

 "18세기의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 시설 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 6㎞에 달하는 성벽 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이 글은 세계유산위원회 집행이사회의 화성에 대한 평가 일부다. 지인이 느닺없이 수원 성곽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받았는지 모르겠는 말을 한다. 불과 200년이 조금 넘은 화성은 되고, 600년이 넘은 경복궁은 왜 안 됐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복궁 이야기를 한다. 경복궁은 조선의 수도로 6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의 유산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 사신 곳이고, 업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 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 역할을 했다. 조선의 500년 역사를 간직한 경복궁이 수원 화성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이 말에 논쟁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우리 문화재를 비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복궁도 수원화성도 선조가 남긴 문화재다.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수원 화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해 생긴 결과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화재의 가치를 잘못 예단하게 된다. 실제로 수원에 살아도 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에 불과하다.

서울에 있는 조선 5대 궁궐 중에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이다. 창덕궁도 직접 가보고 공부를 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특히 창덕궁의 정원은 4계절 직접 보고 느껴야 그 아름다움을 안다. 아는 것만 갖고는 모자란다. 직접 느끼고 사랑해야 문화재의 가치를 알 수 있다. 

 화성도 그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공부해야 한다. 화성은 정조대왕이 처음부터 계획하고, 신축한 성곽이다.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기며 현륭원이라 했다. 그리고 그 마을의 백성을 팔달산 아래로 이주하도록 해 현재 수원이 됐다. 화성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성이면서, 사람들을 읍내에 살게 했다. 읍성이면서 동시에 방어용 산성의 성격이 있다.
서장대 근처에 있는 화성 세계문화유산 기념비

서장대 근처에 있는 화성 세계문화유산 기념비

 화성은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설'을 지침서로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에 거중기와 녹로를 이용해 공사를 효율적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그 이전에 흔치 않았던 옹성과 치성 등 다양한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그래서 동서양의 과학을 통합해 발전을 이룬 건축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화성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예술성이다. 주변 지형과 어울려 성곽이 만들어졌다. 성벽이 흐르는 강물처럼 멋지게 이어진 것도 그런 이유다. 돌로 성벽을 이루고, 벽돌로 여장 등을 만들어서 더욱 운치가 있다. 군사 지휘소 서장대 등 목조 건물을 두어 예술성을 보탰다. 서장대는 정조대왕이 장용영 군사를 호령하던 위엄이 그대로 느껴진다. 서장대에서 멀리 보면 동장대가 보인다. 동장대로 가기 위해 나서면 가파른 길을 만난다.

이 길에 들어서면 다시 걸음을 멈춘다. 길이 가팔라서가 아니라, 눈 앞에 펼쳐진 성곽 모습 때문이다. 서문(화서문)이 옹성과 함께 있고, 조금 멀리 공심돈도 보인다. 정조가 신하들에게 공심돈을 바라보며 "우리 동국 역사상 최초의 건물이다. 마음껏 구경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부심과 애정이 가득한 건축물이다.

 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성과 예술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화성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원형 그대로 보존 여부다. 문화유산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형이 되고 원형의 모습을 상실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전쟁을 치르면 문화재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원형을 잃어버렸다면 문화재의 가치는 떨어진다.

실제로 화성은 한국전쟁 중에 파괴됐다. 유네스코에서도 세계문화유산의 등록 심사를 할 때 특별히 관심을 가진 부분은 정확한 복원 여부였다. 화성은 1970년대에 복원되었으면서도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축성 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네스코 조사관은 이 자료를 근거로 원형 복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포루. 포루는 상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다. 성벽에 돌과 벽돌 그리고 그 위에 목조 건물의 결합이 자연스럽고 예술성이 돋보인다.

북포루. 포루는 상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다. 성벽에 돌과 벽돌 그리고 그 위에 목조 건물의 결합이 자연스럽고 예술성이 돋보인다.

 여기도 한때는 적과 싸우던 성벽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끼가 있고, 넝쿨이 서로 엉키어 편안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무표정한 성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것은 박제된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곁에 오기 위해서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 성에 대한 역사성과 예술성에 관한 공부를 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많다. 보이면 직접 느끼고 사랑하는 길이 열린다. 늘 주변에 있어서 무심히 흘려보냈다면 마음을 다져보자. 성곽을 걸으면서 느끼고 사랑을 한다면 생활도 풍요로워진다.

윤재열, 화성,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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