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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황소에 받혀 기차가 넘어졌다고?”
언론인 김우영
2020-02-03 19:39:44최종 업데이트 : 2020-02-03 19:39:37 작성자 :   e수원뉴스
황소에 받혀 기차가 넘어졌다고?

[공감칼럼] "황소에 받혀 기차가 넘어졌다고?"

수인선 옛 철로 고색동 구간.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수인선 옛 철로 고색동 구간.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1995년 12월 30일 나는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있었다. 다음날인 31일 이 노선이 폐쇄되기 때문이었다. 열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폐선되기 전 마지막 추억을 남기려는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그중의 한명이었다.

수인선에 얽힌 추억은 많다. 내 어린 시절을 보내던 곳은 수인선 철로가 지나가는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다.

'오목내'라고 불리는 수원시 오목천동과 수영리의 북쪽 피난민 마을인 이른바 '수용소' 사이에는 수인선 협궤열차가 지나가는 터널이 있었다. 협궤열차의 철도 폭은 1m도 안되는 76.2cm였다. 우리나라 표준 궤간이 143.5cm이므로 절반도 안 되는 폭이었다. 열차도 당연히 작았다. '꼬마열차' 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었다.

그런 열차가 통과하는 터널이니 지금 보면 그저 동굴과도 같다. 길이는 한 50m나 될까? 가끔씩 이 터널에서 담력 경쟁이 벌어졌다. 그 컴컴한 굴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열차가 들어올 때가 있다. 몇몇 친구가 절대 절명의 순간을 맞았다. 한 녀석은 터널 중간에 있는 비상대피공간을 기억해 내고 거기에 몸을 피해 무사했다. 어떤 녀석은 느린 속도로 가던 열차가 코앞에서 멈춰서는 바람에 살아났다. 대신 차장에게 붙잡혀 수원역까지 끌려가 된통 혼쭐이 났다. '용감한 아들'을 둔 덕분에 불려간 부모들까지 싹싹 빌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각서를 쓴 뒤에야 풀려났다. 물론 녀석은 집에 와서 매타작을 당했다.

동네 형들을 따라 수인선 철로 위에다 못을 올려두기도 했다. 두어 번 열차가 지나가면 납작하게 펴져 작은 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철길 위에 돌을 올려두고 멀리서 숨어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당시 수인선은 노반(路盤)과 철로의 관리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협궤철도라 차체의 폭이 좁아 작은 장애물에도 탈선할 위험이 높았다. 철로 상태가 이런지라 열차가 달릴 때는 엄청 심하게 흔들렸다. 외가가 인천에 있어서 명절 때 수인선을 이용했는데 매번 차멀미를 하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인선이 지나갔던 세류동에 있는 수인선 협궤열차 모형.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수인선이 지나갔던 세류동에 있는 수인선 협궤열차 모형.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수인선 협궤열차를 생각하면 지금도 빙긋이 웃음을 짓게 하는 사람이 있다. 신문기자 시절 많은 일을 함께 겪으면서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었던 김명훈 선배다. 당시 김 선배는 문화체육부장이었고 나는 같은 부서 차장이었다. '사라지는 풍물'이란 기획물을 주 1회 연재해 나름 호평을 받고 있을 때인데 나는 마침 수인선을 취재할 예정이었다.

친한 후배기자들과 함께 술자리를 했는데 자연스럽게 수인선이 화제에 올랐다. 그때 선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그거 알아? 아 글쎄, 들판에서 풀을 뜯던 소가 흥분해서 열차 옆구리를 들이받았는데 열차가 넘어진 거야. 소는 멀쩡했는데 말야."

그 심한 '뻥'에 나는 그저 함께 빙글거리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배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야, 이거 구라 아니야. 신문에도 나왔어!"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 본 적이 없는 다른 지방 출신 기자들은 믿는 눈치였다. 물론 100% 장난이었는데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그 유쾌했던 김명훈 선배는 고인이 됐다. 그런데 소는 아니지만 버스에 받혀 넘어가고 탈선된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

"1983년 7월3일 오전 6시50분경 반월지구출장소(현 안산시청) 입구 한양빌딩 앞 고잔 건널목에서 인천 송도를 떠나 수원을 향하던 열차를 시내버스가 들이받아 객차 4량 중 1량이 전복, 2량이 탈선되어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신문 기사도 나왔다.

버스와 기차가 부딪혔는데 기차가 전복됐다니 믿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만큼 기차가 작았고 철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수인선은 1937년 7월 11일에 개통, 수원시~인천시를 오가는 철도노선이었다. 일제가 식량을 수탈하기 위해 만든 철도다. 소금과 곡물을 인천항으로 수송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해방 후에는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으로써 소상인, 직장인과 학생, 농·어민,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했다. 내 어머니도 김장철에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소래포구로 새우를 사러 이 기차를 타곤 했다.

서민들의 발이었던 만큼 요금도 매우 저렴했다. 1990년 기준 기본운임 160원, 수원~ 송도 간 운임이 370원이었다. 당시 서울 지하철 기본운임은 250원이었다. 그러니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인선 협궤열차가 폐선되면서 아쉬움이 컸다. 수원시와 화성시 일부 구간에 남아 있는 철로를 이용해 관광열차를 운행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현재 수인선 인천 구간엔 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오이도~송도 간 13km 구간이 개통 됐으며, 송도~인천 간 8km 구간도 지난 2016년 개통됐다. 나머지 수원구간인 수원~한대앞역 20km 구간에 대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오는 8월에 개통된다.

수원역을 출발해 고색~봉담~어천~야목~사리 등 신설되는 5개역을 거쳐 기존 안산선(오이도~당고개) 한대앞역이 연결된다. 수인선이 재개통되는 것이다.

비록 정취와 낭만은 없겠지만 가슴이 설렌다. 첫 개통 열차를 꼭 탈 예정이다. 포구가 있던 어느 역에 내려 지난 추억을 안주로 대포 한잔 하고 와야겠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황소, 수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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