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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같은 세월
최정용/시인
2016-11-07 07:02:35최종 업데이트 : 2016-11-07 07:02:3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아내가 아프다.
지난여름부터다. 쉽게 말하면 유방암이다. 처음엔 말기인줄 알았다. 긴장했다. 말기 암이면 생존율이 20%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겁먹지 않을 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 심정이었다. 항암치료를 결정했다. 쉽지 않았다. 자연치유를 권하는 분들도 많았다. 나 역시 심정적으로는 거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마음. 그래서 8차까지 항암치료를 받기로 했다. 수술은 그 다음. 암세포가 커서 줄인 후 수술을 하자는 주치의의 판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글을 쓰는 지금 5차 항암을 마친 상태다. 한국여성 3명 가운데 1명이 유방암이고 의학이 많이 발전해 있으니 잘 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 고맙지만 당사자와 간병인의 두려움을 지우기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부모가 오래 살다 세상을 떠났어도 자식들에게 '호상(好喪)'은 없는 것처럼.

암(癌)은, 전이가 무섭다.
아내도 초창기 전이된 줄 알았다. 그러면 4기란다. 말기다. 3차 항암치료를 하고 주치의가 그랬다. "전이된 줄 알았던 부위에 있는 놈이 나쁜 놈은 아닌 것 같다"고. 3주에 한번 항암치료를 하니 6주 동안 지옥을 걸었다. 내가 그런데, 당사자는 오죽일까. 양쪽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았다. 그 시간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그 시간도 지났으니,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자위(自慰)한다면 모를까. 

그 길고도 짧은 시간동안 시(詩) 세 편을 낳았다.
'술은 내가 마시고/담배도 내가 피우는데/노는 어찌 다른 몸에서 피어/내 심장을 겨누느냐/차라리,/내게 오렴'(졸시 '암(癌)')

 

암(癌)같은 세월_1
암(癌)같은 세월_1

'항암이라는 거름을/온 몸에 뿌리고 온 날/죽음 같은 밤 보내더니/연금술을 부렸나/기적같이 일어나/밥 한 그릇 뚝딱/일상이 소중하도다, 몸으로 보이는/저 꽃은 분명 어느 날/어둠 털고 날아올라/지상으로 날아올라/일상의 정원에 꽃 피울/그런 일을 보일 거야/내 곁에서 반드시'(졸시 '암꽃 날다') 

'이 즈음에/포장마차 하나쯤/서계시면 좋겠다/대장군과 여장군이 사라진 시대/기댈만한 언덕하나 있다고/뭐 그리/반역이겠나/피붙이 살붙이에게/털어놓지 못한, 차마 그러지 못한/독한 슬픔하나 고요히 받아주는/소도(蘇塗)하나, 그런/포장만 있는/달리지 않는 침묵의 마차하나/있었으면/좋겠다/그곳에서 너를 만난다면 더욱'(졸시 '그런저런 아파트 앞에서')

뭐, 이런 요사(妖邪)를 4개월째 치르고 있다. 그 시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우주의 중심이 바뀌었다. 아내의 잔기침에도 호흡 한 소식에도 나는 내가 아니다. 한밤중이라고 예외가 없다. 선잠이거나 토막잠에서 후다닥 깨어 숨부터 살피고 통증을 헤아리는 나날의 연속이다. 어쩌면 호들갑이겠다. 그러나 내 원래 범부(凡夫)로 태어나 그릇이 이 정도니 어쩌겠는가. 당연하다. 

처음, 기자라는 직업에 발을 들일 때, 여러 거창한 생각이 있었다. '세상의 변혁에 일조라도 하지 않을까'하는. 그리고 반오십년 세월, 이제야 알았다. 이 직업이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변죽만 울리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반성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은 1년 전부터였으나 결론은 아내의 암과 함께 찾아왔다. 시민들이 피부에서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자. 그 일이 내 삶의 전환점이 되도록 하자. 다산 정약용이 자신은 유배를 가면서 자식들에게 도성을 떠나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듯하다. 깊은 고민에 쌓여 혼란스런 내게 아내의 암이 가져다 준 '선물(뼈저린 반성)'이다.

다시 암(癌). 
매 차례 항암치료 후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면서 드는 생각하나. 눈을 들어 세상을 보니 '곳곳이 암(處處發癌)'이더라. 사람의 몸은 물론, 사람이 만든 조직과 사회, 국가, 지구에도 그들은 잠복해 있다. 하물며 우주에야. 그들은 자신들이 전이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며 부지불식간이나 찰나(刹那)에 세력을 확장한다. 이들에 없애기 위해서는 인체에 좋은 세포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그동안의 항암치료는 가르친다. 희생 없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전이(轉移)되면 말기가 되는, 그래서 생존율이 희박해지기 전에 암은 뿌리부터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수없이 조언한다. 그러나 대부분 암세포가 제 몸에서 자라기전에는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것들이 번져도 '나만 아니면 돼'라거나 '내 일이 아닌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모르쇠 한다. 자신의 몸이 암의 말기행(末期行) 열차를 타고 달려야 그제서 화들짝 하늘을 원망한다. 암세포는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사람이거나 사회이거나 국가이거나 예외 없이.

최근 '~게이트'로 세상이 혼미하다.
암이 주요 장기(臟器)에 모두 전이됐는데 그동안 몰랐다니, 믿으라고? 갑작스레 말기암 판정을 받은 환자를 발견한 듯, 돌팔이들이 호들'갑'이다. 모두가 아는 정답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어설픈 처방이 분초단위로 쏟아진다. 환자를 농락하려는 의도가 농후한 처방을 듣고 있노라면 돌팔이들에겐 환자를 살리려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환자도 대충 식물인간으로 봉합하고 자신들의 의사면허를 유지하면 다른 환자가 또 입원하겠지, 하는 꼼수가 세상에 어설픈 나의 눈에도 보이니 허참, 큰일이다. 주요 장기에 번진 암을 막는다고 환자가 살아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어찌 알겠는가. 꼬리를 살리면 몸통이 살아날지. 

아픈 아내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이 무슨 경망스런 생각인가.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출몰했던 시월이 지나고 인디언 테와 푸에블로 족이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이라고 불렀다는 십일월이다. 하늘이 이 땅에서 무엇을 거두어 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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