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부부 동반으로 대만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의형제를 맺어 친하게 지내는 몇 분과 함께였다. 이분들과는 대만 여행 전에도 호주, 뉴질랜드, 중국, 일본 등지를 여행한 적이 있어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고창읍성 내 맹종죽 숲 대나무는 아열대 및 열대 지방에서 널리 퍼져 사는 벼과 대나무아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줄기는 곧게 자라며 마디가 있으며 속이 빈 상록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 이전부터 집안의 뜰 등에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짐작컨대 대나무처럼 푸른 기상이 집안에 가득하고, 자손들로 하여금 모쪼록 바르고 깨끗하게 살라는 뜻으로 심었던 게 아닐까 싶다. 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한 동안 타이페이의 101층 빌딩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건 대만 여행에서 만난 그 어떤 아름다운 풍광보다도 강렬한 인상의 추억이었고 귀한 선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사는 사회 속의 조직이나 단체들에도 대나무처럼 마디가 필요한 건 아닐까? 마디는 '예'가 아닌 '아니오'일 수도 있고, '찬성'보다는 '반대'일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건 자동차로 말하면 브레이크에 해당되는 장치이리라. 자동차가 제멋대로 속력에 취해 달리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위험도 이만저만한 위험이 아닐 것이다. 그 위험을 예방해 주는 게 바로 브레이크, 즉 '아니오!' 라는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따름이지 현실적으로는 "아니오!"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는 듣기 좋은 달콤한 소리인데 반해, "아니오!"는 듣기 거북한 쓴소리다. 그러니 말을 하는 입장에서는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하기가 어렵다. 해서 자고로 "예!"한 사람은 많았어도 "아니오!"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직장 생활할 때 알게 된 P는 올곧은 성격에 옳고 그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맨(no man)의 대표적인 인물로 직장 내에 알려져 있었다. 직장 생활이라는 게 대개 수직 관계로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보니 그가 윗사람에게 잘 보일 리 없었다. 그는 동료들보다 승진이 한참 늦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 새 부서가 생기자 그 부서로 차출되어 고생께나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 크게 마음 두지 않았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P는 대나무의 마디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윗사람의 지시가 부당하거나 비합리적이었을 때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직언을 대놓고 했고,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비록 미움은 받았지만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려던 일이 중간에서 재검토된 적이 여러 차례나 있었으니 회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훌륭한 구성원이었던 셈이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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