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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았어요” 화성행궁 완전 복원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4-19 10:32:28최종 업데이트 : 2018-04-19 14:30:52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벗들과 술잔을 나눈 밤, 일행과 헤어져 수원화성행궁 근처를 지날 때면 반드시 신풍루 앞에 서서 한참동안 추억에 잠기곤 한다. 이건 거의 취중 버릇이 됐다. 행궁 광장 바닥에 설치된 '무예도보통지' 무사들의 동작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광장을 천천히 한 바퀴 걷기도 한다.

허, 벌써 30여 년이 다돼 간다. 1989년 당시 수원문화원장이었던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을 중심으로 지역 원로, 문화예술계, 학계, 지역사회단체 대표, 언론계 등 각계에서 모인 42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를 꾸린 일이.

당시 지역일간지 문화부 기자였던 나도 홍보부장이란 직책을 맡아 힘을 보탰다.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수원화성행궁 복원에 열정을 바쳤던 김동휘 선생, 이종학 선생, 심재덕 시장, 이승언 선생 등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은 1989년 초부터 시작됐다. 향토사학자 고 이승언(본명 이한기, 당시 시흥군지 상임편찬위원)씨가 서울대 규장각을 뒤진 끝에 발견한 원색 '화성행궁도'로부터 본격 시작됐다. 이 그림은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심원장과 '수원사랑' 편집위원 등은 그동안 수원화성행궁이 복원돼야 한다는 큰 뜻은 품고 있었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사업인지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예산도 문제였지만 그 자리에 들어서있는 경기도립 수원의료원과 수원경찰서, 경기도여성회관, 신풍초등학교를 모두 이전해야 했다.

 

그러나 수원화성행궁은 수원화성의 모태였다. 게다가 일제에 의해 철거됐기 때문에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도 복원은 반드시 필요했다. 여기에 더해 관광도시 수원을 만들기 위해서 행궁복원은 필요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심원장은 이승언씨에게 수원화성행궁 관련 자료를 수집해달라고 요청했고 그가 큰일을 해낸 것이다.

 

채색본 '화성행궁도'가 발견된 직후부터 수원문화원을 중심으로 화성행궁 복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1989년 6월17일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 발기인회가 수원문화원 2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위원장 김동휘, 부위원장 홍의선·안익승·심재덕, 추진본부장 이홍구, 기획부장 임병호, 총무부장 송철호, 사료편찬부장 이승언, 섭외부장 김상용, 홍보부장 김우영 등이었다. 이와 함께 이종학 김동욱 김학두 리제재 송태옥 이상봉 이완선 이호정 조웅호 최홍규 이사(10명), 이근환 정규호 감사(2명) 등 각계를 대표하는 위원 81명을 선정했다.

 

발기인 모임에서는 ▲화성행궁터를 문화재 유적지로 지정 ▲수원의료원, 수원경찰서, 경기도여성회관 등을 경기도 소유지로 이전 ▲화성행궁 관련 자료수집 편찬 ▲화성행궁터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한 후 복원사업을 단계적으로 착공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관계기관에 전달하고 시민 서명운동을 전개키로 했다.

 

이어 사업을 본격 추진할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회 창립총회는 그해 10월6일 수원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임원을 선출하고 '화성행궁복원추진에 관한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추진위원들은 건의문을 통해 ▲수원화성행궁지 일대(수원의료원, 수원경찰서, 경기도여성회관)를 사적으로 지정 ▲현재 행궁지에 소재한 공공기관을 점차적으로 이전 ▲행궁과 조화된 수원천 등 자연경관이 옛 모습대로 보존될 수 있도록 행정적 시책수립을 요청했다.

 

그리고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됐고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되어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됐다.

물론 수원경찰서와 경기도여성회관, 경기도립 수원병원을 이전시킨 후일담이나, 신풍초등학교 졸업생·인근 주민들과 얽힌 사연 등 중간 과정을 모두 이야기하려면 책 몇 권 분량이 될 정도이므로 나중에 틈이 날 때마다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로 한다.

우화관 발굴 공사 중

우화관 발굴 공사 중

드디어 화성행궁 2단계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2단계 사업은 2003년부터 추진됐다. 2단계 복원 대상은 우화관(于華館), 별주, 장춘각 등으로 2020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우화관은 옛 신풍초등학교 부지에 있었으며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던 객사였다. 별주는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 준비를 위해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분봉상시(分奉常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분봉상시는 현륭원에 올릴 제물을 마련하고 이와 관련된 문서를 정리 보관하는 곳이다. 장춘각은 낙남헌 서쪽에 있던 전각(殿閣)인데 아직까지 용도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제 2020년, 그러니까 2년 반 정도 후면 화성행궁의 완전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정조대왕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고 심재덕 시장과 고 김동휘 선생 등 이 일에 헌신하신 분들이 하늘에서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그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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