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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 현판 “조윤형 글씨 복원” 주장 생각해볼만(하)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8-01 14:07:59최종 업데이트 : 2018-08-02 15:07:45 작성자 : 편집주간   강성기

장안문 현판 글씨를 김종필 전총리가 쓴 것이 아니라는 부분은 대목장 신응수 선생의 증언도 일치한다. 2017년에 발행된 '수원야사'(디자인 신원 펴냄)에도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다.

"당시 대목장이 각을 하던 시절이어서 장안문 현판 글씨의 판각은 신응수 대목이 하게 된 것이다.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신응수 대목장은 장안문 현판 글씨는 김종필의 글씨가 아니었다고 단호하게 증언하고 있다."

 

진짜 글씨를 쓴 사람은 양근웅 선생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양 선생은 당시 경기도청에 근무하고 있었다. 현재 수원시에 근무하고 있는 양황경 팀장의 부친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 경기도청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경기서예가들의 단체인 경기서가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국제교류전, 서예강좌 등을 통해 서예발전에 기여하고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수원시 시민과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시기 중학교 다닐 때 전 일본(일본.조선.만주국) 학생 서예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다.

조선시대 조윤형의 장안문 현판 글씨. 1910년대 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조윤형의 장안문 현판 글씨. 1910년대 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복원 후 새로 만든 장안문 현판. 사진 한정규 화성연구회 회원

복원 후 새로 만든 장안문 현판. 사진/한정규 화성연구회 회원

당시 경기도 문화공보실 학예연구사였던 이신홍 선생 전언에 따르면 장안문 글씨는 조병규 도지사가 쓴 것을 양근웅 선생이 도청 문화공보실에서 개작했다고 한다. 양근웅 선생은 1994년 팔달산 화성장대 현판(2006년 화재 소실), 경기대 교탑 및 교명, 수원올림픽공원 기념비, 강화 갑곶나루터 이섭정 현판 등 수많은 휘호를 남겼다.

 

양근웅 선생은 생전에 수원문화원이 발행하는 '수원사랑' 1993년 1월호 이달영(당시 중부일보 편집부 차장) 편집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장안문 현판 글씨는 본인의 작품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1990년 경기도민회(회장 민관식)가 발행한 회지 '경기인' 3호 등에서도 약력에 분명하게 '수원성 장안문 휘호' 또는 '장안문 현판'이라고 적었다.
 

양 선생은 '수원사랑' 인터뷰를 통해 세로 170cm, 가로 403cm 대작을 맡았을 때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떻게 장안문의 이미지에 맞는 글씨를 써야 하느냐 고민 끝에 정조대왕의 효심과 음양오행을 고려해 서체를 결정했다고 한다. 팔달문이 양이라면 장안문은 음에 해당되므로 그에 맞는 서체를 택했다는 것이다. 이때 쓴 붓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관했다고 밝혔다.

 

그의 서예 제자였던 김충영 전 팔달구청장은 "장안문 현판 글씨를 쓸 때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한지 열장을 겹쳐 배접한 후 사용했고 사용된 먹물이 세숫대야로 한 가득이었다는 얘기를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나 역시 선생이 은퇴한 후 부인이 운영하는 화서동 식당에서 몇 번 만났는데 그때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을 적이 있다. 이런 저런 기록과 증언을 종합해 보면 장안문 글씨는 행정상으로는 조병규지사가, 실제로는 양근웅 선생이 쓴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당시 해당 인물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를 증언해줄 주변 인물들이 있기는 하나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런 논란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수원의 정문이나 다름없는 장안문의 문패인 현판 글씨가 누구 것인가 하는 문제로 언제까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이제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그런데 전기한 것처럼 이게 좀처럼 결론이 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원작자인 조윤형의 글씨로 다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장안문 복원 당시에는 그의 현판 글씨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써야 했지만 이제 유리건판 사진이 발견돼 충분히 가능하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인정받은 조윤형은 그림과 글씨에 능했는데 특히 초서·예서를 잘 써서 누구나 그의 글을 얻으려 했다고 한다. 작품으로는 '유점사 풍악당대사비(楡岾寺 楓嶽堂大師碑)' '이보혁 무신기공비(李普赫 戊申紀功碑)' '용흥잠저 고정기(龍興潛邸 古井)' 등이 있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낙남헌, 봉수당, 방화수류정(현재는 김기승), 장안문, 팔달문 등 글씨가 그의 것이다. 이중 팔달문 현판은 원래대로이고 낙남헌, 봉수당 현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어 복원 됐다.
 

장안문 현판도 조윤형의 글씨로 다시 복원하자는 의견이 있는 만큼 수원시가 신중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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