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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사(城神祠), 만세에 흔들리지 않는 터로 정하라”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2-22 09:25:42최종 업데이트 : 2018-02-22 15:36:48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성신사 전경(사진/이용창)

​성신사 전경

"만세토록 오랜 터를 여러 사람 마음을 합하여 만들었네. 성벽은 높디높고 성가퀴가 둘러쳤으니 우리 현륭원 호위하고 우리 서울 막아주도다. 해자 도랑 믿음직하여 신령의 마음 씻는 듯해라. 성주가 제사하니 많고 많은 영광이라. 천만억년 다하도록 우리 강토 막아주소서. 한나라의 풍패(豐沛) 같은 우리 고장을 바다처럼 편안하고 강물처럼 맑게 하소서. 나를 오래 살게 하고 나에게 복을 주며 나에게 태평성대 주옵소서."

윗글은 정조대왕이 직접 지은 성신사(城神祠) 봉안제축문으로서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돼 있다.

성신사는 수원 화성의 성신(城神)을 모신 곳이다. 수원화성 축성이 완료된 해인 1796년 9월1일 완공됐으니 화성이 완공되기 열흘 전의 일이다.

​성신사는 수원 화성에서 화성행궁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대왕은 화성 완공을 앞두고 "첫째의 할 일은 좋은 날을 점쳐서 먼저 성신묘(城神廟)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 후 때에 맞추어 향을 내리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만세에 흔들리지 않는 터로 정하면 신이나 사람이 함께 화락하고, 나에게 수(壽)를 주며, 나에게 복(福)을 주어, 화성이 명실상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신사는 정조대왕이 고유문(告由文)을 직접 지을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었지만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훼철됐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신사가 1899년 편찬된 '수원군·읍지(水原郡·邑誌)'에도 소개되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아무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가 민족정기와 왕기가 깃든 화성행궁을 파괴하면서 함께 없앴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처럼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성신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사람들은 (사)화성연구회 회원들이었다. 2000년경부터 화성연구회는 화성 안팎의 미복원 시설물을 찾는 작업을 하면서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화성성역의궤의 설명과 화성전도 등 옛 기록, 그리고 일제시기와 현재의 지적도, 고로들의 증언들 토대로 조선시대 수원의 행정관청인 이아(貳衙)와 남·북지, 사직단, 종각, 미로한정, 중포사, 감옥, 중영, 성돌을 뜬 부석소 등의 위치를 밝혀내기 위해 주말마다 만나 연구하고 현장을 답사했다.

 

회원들은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중건해야 할 건물이 성신사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당시 팔달산에 세워진 강감찬 장군 동산 일대가 성신사 자리임을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특히 2004년 지표조사 때 '왕(王)'자가 새겨진 기와 파편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07년 정초에 열린 성신사 고유제. 아직 성신사가 중건되기 전이라서 '화성성역의궤'의 성신사 그림을 걸어 놓았다.(사진/이용창)

2007년 정초에 열린 성신사 고유제. 아직 성신사가 중건되기 전이라서 '화성성역의궤'의 성신사 그림을 걸어 놓았다.(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는 성신사 위치를 찾아내고 복원운동을 펼치는 한편 2002년 1월 12일 강감찬 동상 옆 잔디밭에서 성신사 복원을 기원하는 첫 고유제를 시작으로 매년 고유제를 지내왔다.

참고로 2004년 고유제 때 내가 쓴 고유제문의 일부를 옮긴다.

 

'...<전략>...화성을 중심으로 하는 수원 땅 오래 번창하도록 도와주시고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세계 속에 더욱 잘 알려질 수 있도록 저희를 도우소서. 특별히 올해부터는 화성을 수호하시는 신령님을 모시는 성신사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머지않아 성신사에서 수원의 모든 고유제를 올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저희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회원들은 오늘 새해 첫모임을 맞아 작은 정성이나마 준비해 올리오니, 받아들이시고 선조들의 뜻과 우리의 뜻이 길이 이어져 하나가 되게 하소서!'

 

이런 꾸준한 노력의 결과 수원시는 성신사를 중건 복원하기로 결정했고 기업은행도 건립기금을 쾌척했다.

드디어 2007년 10월23일 화성연구회가 이전 고유제를 지내고 11월 5일 성신사 복원을 위한 강감찬 동상 이전 공사를 했다. 강감찬 동상은 36년간의 팔달산 시대를 마감하고 광교공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성신사는 2009년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인 10월8일 준공식을 가졌다.

2009년 열린 성신사 중건식(사진/김우영)

2009년 열린 성신사 중건식(사진/김우영)

당시 준공식을 지켜본 화성연구회 김준혁 회원(현 부이사장, 한신대 교수)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제일 먼저 중건됐어야 할 성신사지만 이제라도 중건되어 기쁘기 이를 데 없다" "아마 수원을 지켜주시는 정조대왕께서도 오늘의 준공식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실 것"이라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1970년대 화성복원공사 때 성신사를 제일 먼저 찾아내 중건했어야 옳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강감찬 동상은 이곳에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며 광교공원으로 옮기는 수고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구한 명장 강감찬 장군께 송구한 마음이다.

 

어찌됐거나 성신사 중건의 일등 공신인 화성연구회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과 세미나, 화성바로알기 강좌, 화성과 부속시설 모니터링, 화성과 수원관련 책자 발간사업, 국내외 성곽 비교답사 등 꾸준한 활동을 펼치는 순수 민간단체다.

화성연구회는 위의 고유 제문에 쓴 소망이 이루어지길 빌며 팔달산 성신사에서 매년 정월 초에 고유제를 지낸다.
올해는 2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에 지낼 예정이니 술과 떡을 음복하면서 우리나라와 수원, 가정의 평화와 행복, 발전...정조대왕이 꿈꿨던 '호호부실 인인화락( 戶戶富實 人人和樂)'을 기원하고 싶은 분은 팔달산으로 오시길.

성신사, 화성연구회, 강감찬 장군, 정조대왕,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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