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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나눔'은 '정 나눔' '사랑 나눔'이다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2-12 09:25:21최종 업데이트 : 2018-02-13 12:35:33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워낙 허점이 많은 삶을 살아온 내가 안사람에게 칭찬을 듣고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음식 투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찬이 별로 없어도, 음식이 맛이 있건 없건,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다.
물론 시골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질려서 먹기 싫은 음식이 있긴 하다. 그게 수제비와 찐감자다.

돼지비계도 좋아하지 않는데 수제비나 감자처럼 질려서가 아니다.
영양 상태들이 좋지 않아 얼굴에 버짐이 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인 1960년대 중반의 일이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동네 잔칫집에 갔을 때다. 나를 귀여워했던 옆집 아주머니가 비계가 붙은 큼지막한 돼지고기 편육을 접시 한가득 담아 몰래 먹으라고 준 것을 허겁지겁 먹다가 크게 체했다. 이후 돼지고기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환갑이 넘은 지금도 비계가 붙어 있으면 떼어내고 먹는다.

 

그러고 보니 못 먹는 것이 또 있다. 개고기다. 이 두 가지만 빼고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이 자랑스런 식성은 외국 여행 때 단연 빛을 발한다.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 시 고수나 향신료 섞인 음식으로 인해 고역을 겪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현지 사람이라고 오해받을 정도로 입에 잘 맞는다. 아무래도 전생에 그 나라에서 살았었나보다.

 

워낙 곤궁했던 어린시절, 반찬이라곤 김치나 짠지, 새우젓, 그나마 여름엔 좀 나아져서 고추장에 풋고추, 텃밭에서 따 온 오이나 상추가 밥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럴 때 조부모 생신이나 제사 때나 돼야 상에 오르는 보리쌀과 바꾼 생선이나 구운 김, 또는 계란찜은 정말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의 별미였다.

그 무렵 나의 도시락 반찬은 늘 무장아찌나, 오이지무침, 김치 등을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는 짜디 짠 새우젓만 달랑 반찬통에 넣어 가지고 간 적도 있었다. 빈가(貧家)의 반찬은 짠 법이라고 했지만 왜 반찬은 그리 짜기만 했던지.

 

그 땐 참 부모님 원망을 많이도 했다. 왜 우리 집만 이렇게 가난한 것인가? 있는 집 아이들은 멸치볶음이나 계란 프라이드, 고기 장조림 등 맛있는 반찬도 더러 싸가지고 오던데...철없는 시절이어서 그랬다. 양곡이 없어서 아예 도시락조차 가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그저 내 반찬의 보잘 것 없음만 한탄했다. 휴우, 당시 내 투정을 들으면서 부모님은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가난한 시절 반찬 장만은 큰 고민거리였다. 지금도 없이 사는 사람들에겐 마찬가지다.

그래서 홀로 사는 노인들은 변변치 않은 밑반찬 한두가지에 국도 없이 찬밥에 물을 부어서 후루룩 마시듯이 식사를 한다. 그러니까 그분들에게 식사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냥 살기 위해서 한 끼를 먹는 행위'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동물인 이상, 즐거움 중에서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식의 즐거움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겐 따듯한 밥과 된장국 한 그릇, 몇 가지의 반찬일지라도 진수성찬이 된다. 이웃들이 건네주는 반찬 몇 가지에서 이분들은 뜨거운 이웃의 정을 느낀다. "아, 내가 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구나"하는 소속감과 함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현재 수원시 각 동 주민센터(또는 행정복지센터)가 주체가 되고, 새마을 부녀회 등 자원봉사자가 '사랑의 반찬'을 정성껏 조리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중증장애인 등 소외 계층이 대상자다. 반찬나눔은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이웃간 정을 나눌 수 있는 따듯한 사랑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평동행정복지센터 새마을부녀회가 지난 6일 이상균 동장과 함께 관내 저소득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소외 계층 53가구에게 연근조림, 우거지무침, 메추리알마늘장조림, 무말랭이무침 등 반찬을 정성껏 만들어 전달했다.

평동행정복지센터 새마을부녀회가 지난 6일 이상균 동장과 함께 관내 저소득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소외 계층 53가구에게 연근조림, 우거지무침, 메추리알마늘장조림, 무말랭이무침 등 반찬을 정성껏 만들어 전달했다.

반찬나눔은 2004년 당시 신안동(현 행궁동)에 근무했었던 조기동 씨(현 수원시 생명산업과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나는 당시 수원시정 신문이었던 '늘푸른 수원' 주간을 맡아 일했는데 조기동씨는 내게 "관내의 소외된 빈곤층이나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최소한 반찬 걱정은 하시지 않도록 하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뜻밖으로 호응이 크고 뜨거워 시 전 지역으로 확대됐다"고 밝힌바 있다. 신안동의 반찬나누기운동은 그해 '수원시정 베스트 7'에도 선정됐으며 반찬나눔 사업은 시내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대부분 동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중심이 되는데 나름 손맛이 좋은 여성들이 온 정성을 다해 반찬을 만들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 수혜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 e수원뉴스에 소개된 음식들은 사골육수, 떡국 떡, 소고기(영화동 새마을부녀회), 돼지갈비찜, 시금치 나물무침, 고등어조림(매탄1동 새마을부녀회), 각종 전, 시금치나물, 콩나물, 나박김치(원천동 새마을부녀회), 연근조림, 우거지무침, 메추리알마늘장조림, 무말랭이무침(평동행정복지센터 새마을부녀회), 파래김무침, 무생채, 어묵볶음(정자3동 새마을부녀회), 닭볶음탕과 갖가지 반찬(구운동 청룡 봉사단-바르게살기위원회) 등이다. 반찬은 매월 계절별로 바뀌기 때문에 대상자들이 질리지 않고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동민간순찰대의 음식봉사다. 지동기동순찰대 사무실에서 한 달에 두 번씩 음식을 조리해 마을노인 30명과 조손가정의 어린이 5명에게 매달 둘째 넷째 화요일마다 반찬을 조리해 배달해준다. 대원들의 주머니를 털고 지역 독지가들이 도움을 주어 봉사하는데 해가 갈수록 반찬 가짓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거동을 못하는 홀몸노인들이 많아 대원들이 찾아가서 청소도 하고 이불도 빨아준다고 한다.

둘째 주 화요일엔 기동순찰대 이층 지동경로당 노인들과 지동경로당을 찾아온 마을 노인 70여 명의 점심까지 대접한다.

 

정조대왕이 수원을 찾아와 어려운 백성들에게 쌀과 죽을 나눠주고 노인들에게 경로잔치를 베푼 그 전통이 수원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반찬 나누기다.

 

 

김우영, 반찬, 평동, 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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