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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생각' 수원의 최순애·최영주 선생을 기억해주세요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1-10 17:03:27최종 업데이트 : 2018-01-10 18:02:02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벌써 4년이 넘은 이야기다. 2013년 10월31일, 반가운 손님들을 수원에서 만났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거목이었던 이원수선생의 두 따님 이영옥(1941년생, 오산시 거주) 씨와 이정옥(1945년생, 군포시 거주) 씨였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린 수원박물관 주최 '수원지역 근대문화예술인들의 삶과 활동'이란 학술심포지엄에 앞서 점심을 같이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원수는 시 '고향의 봄'을 지었고 여기에 홍난파가 노랫말을 붙여 수원시민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국민이면 다 아는 불후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고향의 봄' 노래비는 수원시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는 팔달산 중턱에 세워졌다. 작곡가인 홍난파의 고향이 옛 수원군(현재 화성시) 남양면 활초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수원사람들은 이원수 선생의 부인인 '수원사람 최순애' 선생을 잘 모른다. 최순애는 동시 '오빠 생각'을 지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 시는 1925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어린이' 지면에 실렸다. 그때 최순애는 불과 12살의 어린 소녀였다. 이 시에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였고 '고향의 봄'과 함께 '국민동요'가 됐다. 그후 마산에 살던 15살 소년 이원수의 작품도 여기에 실렸다. 이 인연으로 소년 이원수는 소녀 최순애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져 10여년 후 둘은 부부가 된다.

최순애-이원수 선생의 따님들, 영옥씨(오른쪽)와 정옥씨

최순애-이원수 선생의 따님들, 영옥씨(오른쪽)와 정옥씨

혼인까지 이어지는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날 만났던 이영옥·이정옥 자매의 증언에 의하면 편지를 교환하다가 드디어 수원역에서 첫 만남을 갖기로 했는데 이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원수는 독립과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독서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만나기로 한 날 왜경에 붙잡혀간 것이다. 또 최순애 측 부모들의 반대 또한 심했다. 혼인이 성사된 것은 오빠 최영주의 도움이 컸을 거라고 한다. 최영주의 이야기는 뒤에 소개한다.

 

그날 최순애-이원수의 러브스토리와 관련해 두 자매로부터 들은 얘기는 이렇다.

"저의 아버지(이원수)가 어머니께 엄청 오랫동안 구애를 하셨나봐요. 어머니 집안에서 반대가 있었는데 결국 외삼촌(최영주) 등이 도와서 혼인이 성사된 것 같아요."

"첫 만남은 수원역에서 갖기로 했대요.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손에 무엇을 들고 기다리겠다고 편지로 약속을 했는데 아버지가 '함안독서회 사건'으로 왜경에 체포 당하는 바람에 첫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답니다."

"혼인식은 수원 어머니 집에서 했어요. 그런데 혼인식을 마치고 경상남도 시골 아버지 집으로 가보니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더래요. 쌀항아리가 겨우 물동이만하고 살림살이도 거의 없어서 소꿉장난하는 기분이었답니다."

"어머니가 고생 참 많으셨어요.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경제 형편이 나아지질 않아서 어려움을 겪으셨어요."
그러면서 아내에게 돈을 잘 벌어다주지 못하는 아버지 이원수를 주변에서 '이 웬수'라고 놀렸다는 일화도 유쾌한 말투로 소개했다.

 

최순애는 수원면 북수리(현 수원시 북수동)에서 태어나 살았다. 앞에서 언급한 최영주(최신복)는 9살 위의 오빠로서 수필과 동요 동시 등을 발표한 문인이기도 했다. 최순애의 여동생 최영애도 일찍이 10살 나이로 어린이 잡지에 '꼬부랑할머니'가 실려 삼남매 모두 문재가 출중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영주는 문학보다는 당시 일류 편집자이자 출판인으로서 일제강점기에 출판을 통한 아동운동을 펼치는데 주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잡지 '박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수원에 살 때 화성소년회(華城少年會)를 조직하고, 잡지 '학생(學生)'을 발행하며 소년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소파 방정환이 조직한 어린이 문화운동 단체 '색동회'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방정환 사후엔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웠다. '오빠 생각'은 최영주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동시였다.

수원시청서 열리는 '오빠생각' 전시회.(사진/서지은, e수원뉴스 시민기자)

수원시청서 열리는 '오빠생각' 전시회(사진/서지은, e수원뉴스 시민기자)

지금 수원에서는 '오빠 생각' 주인공 최순애·최영주 남매의 삶을 조명하는 특별 순회전시가 열리고 있다. 8일 수원시청을 시작으로 3월 23일까지 장안·권선·팔달·영통구청, 수원역환승센터, AK플라자 수원점 등 10곳에서 이어진다. 이번 전시회는 수원의 사회적 기업 ㈜더 페이퍼가 기획한 것으로 14개의 패널 형태로 꾸민 두 남매의 사진, 육필원고, 책자·잡지 영인본(影印本), '오빠 생각' 관련 영상 등이 소개된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팔달산 기슭의 '고향의 봄' 노래비처럼 최순애의 '오빠생각' 동요비, 또는 문학비도 건립되면 좋겠다. 팔달산에 이원수와 홍난파가 글을 짓고 곡을 만든 노래비가 있는데 이 부근이나 최순애의 출생지인 북수동에 최순애 '오빠생각 문학비'를 세우면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봄' 이원수와 '오빠생각' 최순애의 러브스토리로 인해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거기에 최영주의 이야기를 곁들여도 좋을 것이다.

김우영, 오빠생각, 최순애, 최영주, 방정환, 색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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