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수원이 잊지말아야 할 인물, 사운 이종학 선생(상)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3-08 09:30:21최종 업데이트 : 2018-03-08 10:22:42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지난 3.1절 수원화성행궁 광장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수원시와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준비한 '제99주년 3.1절 기념식 및 시민문화제'였다.

찬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씨임에도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여 3.1절의 의의를 되새기고 독립운동가들의 위대한 생애를 돌아봤다. 임면수, 김노적, 김향화, 김세환, 이선경, 이하영 선생 등 수원의 독립 운동가들은 암흑 속의 일제 강점기에 직접 몸으로 부딪힌 독립운동을 했다. 나라의 소중함을 새삼 생각해보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의 모든 내용 하나하나가 의미 깊었지만 특히 청소년과 시민 등 참가자들이 하나가 되어 태극기를 들고 흥겹게 춤추며 불렀던 '독도는 우리 땅'은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아마도 며칠 전인 2월 22일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이른바 '제13회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를 개최한 데 대한 분노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시마네현에서 열린 행사에 차관급인 야마시타 유헤이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했는데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이 행사에 6년 연속 차관급 정부 인사를 보내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 지방 정부가 주최한 독도 도발 행사에 일본 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참석하는 등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동 행사의 폐지를 촉구한다"고 강력 항의했다.

지난 2000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선생 화성특별자료전'에서 전시자료를 설명하는 생전의 사운 선생.

지난 2000년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선생 화성특별자료전'에서 전시자료를 설명하는 생전의 사운 선생.(사진/화성연구회 이용창)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임에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후안무치를 생각할 때마다 고 사운 이종학(1927~2002)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이종학 선생은 해방 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독도 야욕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인물이다. 선생의 무기는 역사 자료였다.

서지학자였던 선생은 막대한 사비를 들여 독도에 관한 고문서와 책자를 수집, 일본의 독도 주장이 허구임 증명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울릉도에 건립된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이기도 한 그는 평생 수집한 독도 관련 지도와 고문서, 서적, 사진 등 독도가 명백한 한국 땅임을 증명해주는 역사자료 512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독도박물관에 가면 독도는 우리 땅이란 여러 가지 명확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사운선생은 독도 뿐 아니라 대마도 역시 우리 땅이었다고 말했다. 선생이 생전에 일본 공립 공문서관에서 찾아낸 지도에 근거한 것이다. 이 지도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신하들에게 명령해 만든 것으로 독도와 대마도가 우리 영토로 포함돼 명기되어 있다.


얼마 전 3.1절을 앞두고 나는 한 신문 사설에 이렇게 썼다.

"선생은 생전에 '독도 수호의 사명은 남북이 따로 없으므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소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그리고 2001년 3월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전시 자료들은 독도박물관 특별기획전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도 공개됐다. 지난해 10월엔 이종학 선생이 기증한 자료들을 전시·보관하고 있는 수원 광교박물관이 울릉도독도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3.1절엔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항일정신과 함께 독도를 지키기 위해 평생 독도자료를 수집하고 기증한 이종학 선생도 기억해주길 바란다"라고.

사운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수원시사편찬위원회 실무자로 일하면서 집필도 했었는데 선생은 당시 편찬위원으로 참여했다. 대쪽 같은 선비의 기개를 갖춘 분이었다. 그러나 속정이 깊었다. 나는 1990년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얼마 후 선생께서 내가 일하는 문화부로 찾아 오셨다.

선생이 내민 서류봉투에는 일제 강점기 이 지역 독립운동 활동 관련 자료들이 들어 있었고 이를 다룬 기사는 1면 메인을 차지했다. 그 뒤로도 가끔 씩 신문사를 방문하거나 마음에 드는 문화부 기자들을 불러 저녁을 먹으며 특종감들을 하나씩 풀어 놓으셨다.

선생은 중국요리를 좋아하셨는데, 함께 자주 만났던 음식점은 수원여고 정문 앞쪽에 있던 선생의 단골집 고등반점이었다.


한번은 내가 통일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시곤 당신이 2001년 3월, 평양에서 개최했던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공동전시회 자료 복사본을 한 보따리 주신 적도 있다. 그때 선생은 "내가 북한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이 증거를 토대로 해서 북이라도 우리가 못 받았던 사과와 배상도 제대로 받으라고요"라고 말했다.

(월요일 하편으로 계속됩니다)

이종학, 김우영, 수원화성행궁, 3.1운동, 임면수, 김노적, 김향화, 김세환, 이선경, 이하영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