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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부끄럽다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7-03-18 10:57:24최종 업데이트 : 2017-03-18 10:57:2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해 8월 초. 어미 길고양이가 새끼 세 마리와 함께 마당에 놀러 왔다. 어미가 마당 한켠에 놓아 둔 사료를 먹으려 하면 새끼들은 어미 주위를 둘러싸고, 어미젖을 빨면서도 호기심에 사료 그릇에 코를 들이대곤 했다. 

이 가족들이 마당을 들락거리자 공교롭게도 먼저 자리 잡은 길고양이 '뻔'이 나타나지 않는다. 2015년 2월 하얀 새끼 길고양이 '뻔'이 처음 마당에 나타나자, 마침 10년 가까이 함께 생활한 러시안 블루 '바스'가 '뻔'을 챙긴다. 심성이 온순한 '바스'는 '뻔'이 사료를 같이 먹어도 상관치 않고 어울려 지냈다. 과연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이묘설(二猫說)이 새삼스럽다. 그 바람에 새끼 길고양이는 마음 놓고 마당에 정착하여, 밤엔 어디론가 외출하고 낮 동안은 마당에서 쉬거나 '고양이 타워'에서 편히 낮잠 자곤 했다.

김재철, 고양이에게 부끄럽다

가끔 '뻔'의 목덜미 등등 털 속 피부에 상처가 보였다. 밤 외출 중 인근 어른 길고양이에게 물린 흔적이다. 알게 모르게 약을 발라 주지만 상처는 끊이지 않는다. 한번은 결막염에 걸렸다. 한쪽 눈이 뻘겋고 부어오른 모습이 안쓰럽다. 딴청을 하면서 슬며시 고양이 이동장에 밀어 넣으니 잔뜩 겁먹은 모습이다. 이동장을 들고 동물병원 원장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이 녀석은 길고양이라서 물거나 할퀼 수가 있으니..., 우선 내가 살살 달래서 꺼낼 테니 장갑을 준비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원장은 객기를 부리는지 보호용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직접 이동장 문을 열었다. 놀란 '뻔'은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원장 손바닥을 물어뜯었다. 결국 진찰실을 내 달리며 큰 소동을 벌인 후 한쪽 구석에 숨어들어 꿈쩍도 않는다. 살그머니 다가가 재빨리 이동장에 쓸어 넣었다. 그 바람에 내 손등도 할퀴었다. 원장은 피 쏟아지는 손바닥을 들어다 보고 몇 바늘은 꿰매야한다고 투덜대며, 길고양이 치료 받으러 온 손님은 난생 처음 본다며 빨리 데리고 나가라고 부라린다. 결국 약국에서 구입한 안약을 몇 번이고 눈 주위에 바르니 귀찮은 '뻔'은 이후 경계심을 갖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뻔'. 뻔뻔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지만, 놀라지 않게 다가가 턱밑을 긁어 주면 이내 몸을 뒤집는다. 대문 여는 소리, 현관문 나서는 소리가 나면 어디선가 알아채고 '야옹~' 반가워한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뻔'! 하고 답해 주면 '야옹~'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똑똑 밥그릇을 두드리면 담장너머에서 한걸음에 달려온다. '뻔' 다루기를 식구처럼 여겨, 맛있는 사료를 아침저녁으로 먹게 하고 이따금 나머지 통닭을 챙겨주고 또 마당까지 쫒아오는 덩치 큰 고양이를 매번 쫒아내니, 어느새 "발은 원숭이처럼 빠르고, 오르내림이 민첩해져, 쥐 포획이 확실해졌다" '저 녀석이 언제까지 밥만 축내나'라는 내 생각을 이내 알아차렸는지, 현관 계단에 쥐들을 잡아다 놓고, 마당에는 여러 용품들을 물어다 놓곤 하였다. 

'뻔' 후임으로 놀러오는 길고양이 가족. 지금은 어미만 들락거린다. 이 녀석은 '또뻔'이다. 동네 길을 나서면 어김없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야옹~' 아는 척 한다. 

고양이에게 부끄럽다 _2
또뻔가족

권호문(權好文,1532∼1587)의 축묘설(畜猫說)에 보면 "새끼고양이 한 마리 얻어와 보살펴 주면서 길렀다. 몇 달이 지나, 쥐 잡는 꾀가 생겨 반드시 '석서(碩鼠)'를 잡은 다음에야 흡족해 하였다. 이는 그 본성이니 주인을 위하여 해(害)를 제거함과 같다" "쥐를 잡는데 있어 어찌 꼭 야인의 칼(卻鼠刀)과 장탕(張湯)의 꼬치꼬치 캐물음이 필요할까마는, 그런 다음에 우리 집으로 하여금 편안케 함이라" 하고, 이어 "나라의 고기를 먹는 자가 진실로 '사서'(社鼠)와 같다면, 장차 그를 어떻게 재상에 임용하리오. 생각건대 사람 얼굴이면서 짐승 마음인 자 또한 있으니(人面而獸心者亦有之) 세상 사람으로 '쥐'같은 놈도 많구나. 슬프도다! 나라에서 주는 봉록을 받으면서 그 직분을 제대로 하지 아니 하는 자, 어찌 우리 집 고양이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라고 탄식한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쥐'들의 분탕소식을 보면 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큰 쥐, 작은 쥐들이 "벽에 구멍을 뚫고 드나들며, 곡식을 훔쳐 먹어 그 해가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물론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 집 '뻔'이라면 "아침나절에는 담장에 있는 쥐구멍을 엿보고, 저녁나절에는 장독 사이에서 노려보다가" 나라 파먹기에 혈안인 '석서', '사서'같은 관리들을 모조리 잡아 물어뜯어, 그들의 국정 농단을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쥐'같은 부류, '뻔' 앞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파렴치한 무리들이다.

김재철, 농학박사,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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