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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윤수천/동화작가
2017-09-04 13:15:14최종 업데이트 : 2017-09-04 13:49:46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서재 이야기 좀 해야겠다. 나는 작가로 등단하고도 좀처럼 나만의 서재를 갖지 못했다. 박봉의 공무원 봉급으로 양친과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따로 내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꿈에 불과했다. 그런 경우 대개 서재는 이동식이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아무 데나 밥상을 놓고 앉으면 그 곳이 곧 서재요, 집필실이었다. 안방도 좋고, 건넌방도 좋고, 마루도 좋고, 심지어 주방도 좋았다.

나는 밥상을 책상 삼아 원고를 쓸 때면 6.25 직후의 초등학교 생활이 떠올라 혼자 쓴웃음을 짓곤 했다. 폭격으로 교실을 홀라당 날려버린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앉은뱅이책상을 하나씩 짊어지고 학교를 다녀야 했던 것이다. 그 앉은뱅이책상을 운동장 가에 있는 느티나무 밑에 놓으면 그 곳이 곧 교실이 됐고, 냇가 자갈밭에 놓으면 그 곳도 영락없는 교실이 되었다. 그러다가 비가 오기라도 하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앉은뱅이책상을 우산 삼아 귀가를 해야 했으니 요즘 학생들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내가 나만의 글 쓰는 방을 가진 것은 첫 동화책  '예뻐지는 병원'을 낸 1981년도였다. 출판사는 견지사란 곳이었는데, 출판에 따른 저작료를 받은 김에 골방을 서재로 꾸미고 책상과 의자를 들여 놓고 보니 옹색한 대로 서재가 되었다. 이때의 기쁨을 무엇으로 다 말하랴. 밥상을 놓고 글을 쓸 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우선 스스로 생각해도 작가로서의 품위가 있어 보였을 뿐더러 작품도 전보다 잘 써지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작가란 사람들이 좋은 서재를 가지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겸하여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서재치곤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골방이란 것부터가 서재 운운하기 부끄러웠다. 여기에다 창문도 안 달린 좁은 방이다 보니 조금만 앉아 글을 쓰면 숨이 가빠왔다. 산소 부족이었다.

나는 다시 밥상을 들고 이 방, 저 방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사람도 사정을 알고는 뭐라 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돈을 모아 너른 집을 사는 길밖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살림꾼인 자기에게 있다는 듯 더욱 절약하고 근검했다.

내가 나만의 서재를 다시 가진 것은 조금 너른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세 아이들이 결혼해서 따로 집을 장만하여 나간 뒤였다. 원래 방이 네 개였던 것을 두 개를 터서 셋으로 개조했다. 그러고는 두 개를 턴 방을 서재로 꾸미고 보니 아쉬운 대로 서재로 쓸 만 했다. 이 방이 지금 쓰고 있는 나의 서재 겸 집필실이다. 가로 480cm, 세로 230cm, 높이 220cm.

수원시청 자료실

서재는 곧 나의 삶의 작전 지휘소요, 창작의 산실이며 꿈의 요새다/사진은 수원시청 자료실


내 서재에는 주로 아동문학 도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총천연색이다. 명색이 아동문학가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서재 왼쪽 첫 번째 칸과 두 번째 칸 서가엔 전국의 아동문학가들이 보내 준 동화집, 동시집, 동극집, 평론집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빼곡히 진열돼 있다.
그 옆으로 맨 윗칸엔 동화문고에서 출판한 세계문학전집, 한국일보사에서 편찬한 세계명화집, 두 번째 칸은 문학에 관한 이론서, 세 번째 칸과 네 번째 칸은 내가 쓴 동화책과 동시집, 수필집, 시집, 위인전 등이 나란히 꽂혀 있다. 그 아래 칸은 시집·소설·수필 등 각종 문학관계 서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들은 서점에서 한 권씩 구입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책은 친구의 부탁으로 사 준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밤거리에서 사 들고 온 것도 있다.

오래 전 늦가을 저녁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빵집 앞에 펼쳐 놓은 책을 둘러보다가 "어?" 하고 말았다. 평소 존경하던 중견시인의 시집이 눈에 띄지 않은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못 볼 것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얼른 지갑을 열어 책을 사서 옆구리에 끼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와서도 오래도록 그 시집을 펼쳐 보지 못했다. 왠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기분만 들었다.

나는 강의나 작품 심사 같은 외부 출타 외엔 거의 서재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원고를 쓰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잠도 서재에서 자고 있다. '나'만의 절대 공간이다. 나만의 공간! 그 행복감! 어릴 적에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도,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여럿이 어울려 가고 오는 것 보다는 혼자인 게 좋았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쓸까?" 하는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물론 글 한 줄 못 쓰고 하루해를 보내는 날이 허다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또 "오늘은..."하는 것이다. 이 아침생각을 하는 것도 서재에서요, 하루해를 보내고 내일을 설계하는 일도 서재에서다. 그러니 나의 서재는 곧 나의 삶의 작전 지휘소요, 창작의 산실이며, 꿈의 요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윤수천, 동화, 서재,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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