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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선운사, 그리고 미당 서정주
윤수천/동화작가
2017-11-05 13:39:10최종 업데이트 : 2017-11-22 13:07:43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우리나라의 가을산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전북의 내장산과 강원도의 설악산은 가을산의 대표격으로 오래 전부터 자리매김 되어 왔다. 어디 꼭 내장산과 설악산뿐인가. 나는 선운사를 품고 있는 전북의 고창도 그만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전북 고창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다. 그의 시들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하여 나의 기억의 창고에는 그 어떤 고장보다도 아름다운 문향(文鄕), 아름다운 고을로 저장돼 있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선운사 동구(洞口)


미당은 1915년에 탄생하여 85년에 걸친 생애 동안, 1936년 등단 이후 무려 64년에 걸친 장구한 시작(詩作) 활동을 통해 9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자화상'을 비롯해 '푸르른 날', '동천', ' 국화 옆에서', '신부' 등 우리 귀에 익은 시만도 셀 수 없이 많다.

위의 '선운사 동구'도 그 중 하나.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던 길에 만났던 막걸리집 주모를 시 속에 앉힌 이 시는 미당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다 시각을 통한 시 감상보다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야만 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청각의 맛'까지도 알게 해준다.


미당이 우리 시단에 남긴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연금술사적 언어 사용과 한국적 서정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관능적인 생명의식, 동양적인 내면과 감성적 세계, 불교의 윤회사상에 이은 인연설, 인간과 자연의 융합 등은 그의 문학세계의 폭이 얼마나 넓었나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런 미당에게도 그늘이 있었다. 바로 친일작가란 딱지였다. 그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나에게 친일문인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43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최재서가 경영하던 '인문사'에서 일본어잡지 '국민문학' 편집 일을 하는 동안 당시 총독부산하에 소속된 조선국민총력연맹지부의 요구대로 작품을 쓴 일이 있다. 쓰라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고, 모든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오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젊은 그 시절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새삼 아픔으로 다가온다. 친일문제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깨끗하게 청산되어야 마땅하다. 당시 나의 정신의 실상을 세상을 뜨기 전에 꼭 글을 남기겠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를 잘못 만난 불행한 한 시인을 보게 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일본의 강압) 속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글을 써야만 했던 저 시인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그렇게 빨리 해방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 앞에서 우리는 변명 이전에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광교산 단풍 (사진/강제원, 수원시포토뱅크)

광교산 단풍 (사진/강제원, 수원시포토뱅크)

올 가을에도 선운사 단풍은 예외 없이 붉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또 예외 없이 선운사를 찾을 것이고 산길에서, 들길에서 미당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미당이 남긴 저 맑고 깊은 문학의 강에 발을 적시고 올 것이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자화상'을 떠올릴지도 모르며,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로 시작되는 '국화 옆에서'를 읊조릴지도 모르며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로 시작되는 '신부'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출지도 모르리라.

미당은 갔지만 미당은 우리들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참으로 고마운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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