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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과 관사(館舍)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7-01-22 11:51:54최종 업데이트 : 2017-01-22 11:51:5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해 말 모 일간지 신문기사 중에, 창간 70주년 기획 시리즈물 취재차 어느 초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수업을 참관하였다는 내용이 있었다. 담임선생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얘기해 볼까요?" 의외로 "야근" 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칠판에 단어를 적던 교사는 놀라 뒤돌아봤다. 

그렇다면 직장인은 일주일에 어느 정도 야근을 할까? 최근 직장인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92%가 야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횟수로는 5번이 약 30%, 3~4번이 약 20%였다. 이와 함께 응답자의 87%가 '야근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야근이 많을수록 업무성과는 저하되는 '야근의 역설'이 확인됐다. 상습적으로 야근하는 아무개 대리는 하루 평균 11시간 30분을 근무하여 나머지 직원들보다 2시간 정도 더 일했지만 생산성은 평균 10%정도 낮았다.

야근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정시퇴근. 기업에서는 복리후생의 일환으로, 또는 업무상 필요성에서 사택을 대여하기도 하고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러한 기업 내 사택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사택과 흡사한 관사는 관청에서 일반 관리들에게 빌려주어 살도록 지은 집이다. 같은 관사라 하더라도 정부 고위관리들이 살도록 마련한 집은 관저다. 내가 공직생활을 시작한 시절. 부서(部署)건물은 일제시대 일본식 건물이었고, 직장 울타리 안에는 일본식 관사가 예닐곱 채 있었다. 관사는 생활 거주지였지만 일제 일인들의 업무상 필요성도 한몫했다. 

야근과 관사(館舍)_1
옛 일본식 관사

그 시절.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이상하게 사무실 분위기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선임자들은 하나 둘 책상 앞에 앉아 부스럭 부스럭 부산하다. 무릇 업무는 근무시간에 열심히 끝내면 퇴근 후 할 일은 그리 마땅치 않다. 나는 과감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던 시절이었다. 하기야 야근을 한다 해도 한 끼 짜장면 값이 부담되는 급여수준이었다. 

어느 날 퇴근시간. 슬며시 책상 앞에 다가오던 옆 부서 선임자가 허접스럽게 물어왔다. '왜 일찍 퇴근하느냐' 나는 되물었다. '복무규정에 퇴근시간은 왜 있는 거냐'. 그러자 '상사가 퇴근을 안 하고 있는데 어디서 (말단이) 먼저 퇴근하느냐'고 힐난했다.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관사에서 생활하는 선임자 여러분들은 낮에도 가끔 집안을 들락거리고, 퇴근시간이 가까이 오면 슬며시 집에 가 요기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그것이 야근인가? 그렇다면 퇴근과 야근이 무엇이 다른가?' 이후로 누구도 정시퇴근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새로운 관리자가 발령받아 외진 관사(직급별 관사 위치가 달랐다)에 오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누워 지내야 할 정도로 병약하여 출근부 정리커녕 한 번도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황당한 것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직원들은 더없이 자유스럽고(?) 웬만한 결재는 그를 비껴갔다. 좋게 말하면 울타리 안 관사에서 24시간 병을 다스리면서, 겨우 업무 인지(認知)만 할 정도였다. 그가 사망한 후 후임 관리자는 그 관사를 폐기하였다.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던, 수십 년 전 우리 부서 관리자의 관사근무(?) 형태와 요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특정일에 서면보고와 전화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청와대 관저 집무행태가 새삼 비교된다. 그때 그 병약한 관리자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탓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눈 뜨면 출근, 잠자면 퇴근, 그래서 하루 종일 근무'라는 요즘도 회자하는 명언(?)을 심심찮게 이죽거리며 지내왔던 기억을 새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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