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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돌보지 않는다면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6-05-01 11:22:26최종 업데이트 : 2016-05-01 11:22:2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사카라는 카이로 남쪽 약 25km 떨어진 나일 강 좌측 연안에 위치한 기원전 2686~2181년의 이집트 고왕국(3~6왕조) 시대 피라미드 소재지이다. 이곳에는 제1, 2왕조 파라오와 왕비의 마스터바(사각형 묘소) 등이 현존하며 계단식 피라미드를 비롯한 10여 개의 피라미드가 유명하다. 제5, 6왕조 피라미드와 왕비, 재상 등의 비문과 조각물 등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현재도 발굴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계단식 피라미드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은 제3왕조 조세르 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텝이 설계한 높이 62m 6층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이다. 뒤쪽으로 돌아가 작은 창을 들여다보면 밀폐된 방의 조세르 왕이 보인다. 임호텝은 피라미드를 처음 설계한 인물로서 건축뿐 아니라 의술에도 뛰어나 후세에 학문과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미국 영화 '미이라'에서는 임호텝을 왜곡, 악당으로 묘사하였다. 그밖에 제5왕조 마지막 파라오 우나스, 제6왕조를 개척한 파라오 테티의 피라미드 및 임호텝 마스타바 등이 있다. 

파라오 테티의 딸과 결혼한 재상 메레루카 마스타바에 들어가 보면 입구 벽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그림과 메레루카가 그려져 있고, 내부 벽면에 그려진 농사장면, 사냥모습 등으로 당시 귀족과 일반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사카라 인근의 멤피스는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 통일왕국의 도읍으로 제3왕조 조세르 때에 이집트 수도였다. 이후 람세스 2세 때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하였으나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가 침공,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면서부터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는 종려나무 숲이 우거진 폐허로 되어 있다. 

멤피스 박물관 1층 바닥에 홀로 누워있는 람세스 2세. 1820년에 출토된 이 거상은 원래 13m의 높이였으나 다리 밑 부분이 훼손된 채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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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 거상

기원전 1279년 세티 1세가 사망하자 25세의 나이로 왕좌에 오른 람세스 2세. 왕비는 고대 이집트 3대 미인 중 한 사람인 네페르타리이다. 박물관 마당에는 람세스 2세 얼굴을 한 스핑크스, 석관, 미라 작업대 등 석물들이 진열되어 있고, 한쪽에서 주민들이 토산품을 팔고 있다.  

무려 67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람세스 2세는 자신의 기념물을 이집트 구석구석에 세웠다. 아부심벨,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 등에 거대한 석상이 남아있고 아직도 크고 작은 상들이 이집트 전역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1213년, 92세에 무덤의 신 아누비스가 거두어 왕가의 계곡에 묻었다. 부왕이 오랫동안 재위하다 보니 많은 아들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며, 왕위는 열세 번째 아들인 메네프타에게 돌아갔다. 이후 파라오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람세스 11세까지 나왔다. 영화 '십계'의 출애급은 이 시대로 추정되고,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는 람세스 2세의 일대기를 잘 그려냈다.

1881년 처음 발견하였을 때 마른 피부, 치아, 모발이 거의 완전했던 람세스 2세 미라는 카이로로 운반 도중 뜻밖의 모욕을 당한다. 술 취한 이집트 검사관이 건어 수입품이라 하여 미라에 관세를 부과했던 것이다. 최근 람세스 2세의 머리카락이 이집트로 다시 돌아왔다. 이 머리카락은 미라 부패 방지를 위해 지난 1977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도난당했던 것인데, 범인은 람세스 2세 머리카락 연구를 담당했던 프랑스 학자의 아들이었다. 이 미라가 파리로 옮겨졌을 당시 이집트 여권이 발급됐고 파리 공항에서는 왕에 걸맞은 의식까지 거행되었다. 

화석 DNA 분석결과 현대인과 99.5% 이상 게놈이 일치하는 네안데르탈인은 20~3만 년 전 생존했던 호미니드이고,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 발견되어 2004년에 보고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2만~1만 년 전의 호미니드이다. 기원 전 8000년에 형성되었다는 고대 이집트. 이집트인들은 현생인류와 또 다른 호미니드와 동시대에 살면서 고대문명을 탄생시켰다. 

창조신이 확립한 우주질서를 지상에 실현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던 신의 아들 파라오.  하지만 백성을 먹이는 목자로서, 풍요를 가져다주고 풍부한 양식을 제공해 주지 못하면 신들이 돌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통치할 힘을 잃게 되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사제들은 그것이 죽은 후에도 영원히 사는 방법이라고 설득하고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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