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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술을 금하라!
최형국/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 역사학박사
2016-07-29 08:46:32최종 업데이트 : 2016-07-29 08:46:3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술...
요녀석으로 인해 참 말 많고 탈도 많지만, 시린 가슴팍에 한잔 끼얹으면 그나마 세상살이 시름이 잠시는 사라지고, 정겨운 옛친구를 만나 잔을 부딪치면 넉넉한 마음이 배가 커지게 해주는 고마운 녀석이기도 하다.
그런 고마운 술을 절대 만들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금주령(禁酒令)이 국왕의 입을 통해 추상처럼 펼쳐져 조선시대 내내 함께 했으니 요즘 아침마다 코끝 빨개지는 주당들이 듣는다면 간담이 서늘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그런 때였다. 가뭄과 흉년이 들면 굶어 죽는 백성들이 전국적으로 수만에서 수십만까지 발생하니 주린 배를 채우지도 못할 귀한 곡식을 술을 빚는데 사용한다는 말은 천인공노할 일이기까지 했다. 보통은 그런 가뭄이나 흉년이 지나면 자연스레 금주령은 해제되었고, 백성들은 각각 집집마다 술을 빚어 집안 제사에 사용하거나 대규모로 술을 빚는 술도가 근처 주막에는 대낮부터 취한 사람들이 넘쳐나기도 했다. 

세자는 술을 금하라!_1
<대쾌도(大快圖)> : 조선후기 영정조대 화가 김후신(金厚臣)이 그린 작품이다. 대낮부터 어디서 퍼마신 술인지 몰라도 남볼까 부끄럽기까지 하다. 친구로 보이는 두 사람은 취객을 끌고 가느라 술이 다 깰 지경이다. 갓을 쓴 행색을 보니 어느 양반님네 자제인 듯한데, 낮술에 취하면 누구도 몰라 본다고 주변의 산천 초목들도 '헉'하는 표정을 짓는다. 금주령이 한창일 때 이렇게 만취하면 바로 곤장형이다.

그러나 영조대에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선왕인 경종의 독살설에 휘말려 즉위초반부터 정치적으로 삐걱거리더니 재위 4년인 1728년에는 이인좌의 무리가 전국으로 난을 일으킨 무신난(戊申亂)까지 더해 성군을 꿈꿨던 영조에게 치명적인 내상을 입혔다. 거기에 생모인 숙빈 최씨의 경우는 신분이 천한 침방 나인출신이었던지라, 영조는 스스로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로 가득찬 상태였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영조는 그 어떤 국왕보다 '모범'적인 왕의 삶을 살아가자 했다. 혹시나 신하들이 수군거리기라도 하면 마치 자신이 입방아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치 초등학생들이 방학때마다 짜놓은 일일생활계획표처럼 하루 일정표를 만들어 단 일각의 오차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철저해도 너무 철저했던 국왕의 삶이 영조의 하루였다. 

심지어 영조는 모든 제사에서 예주(醴酒)를 쓸 것이며, 모든 술은 금지하고 위반자는 엄벌한다는 최악의 금주령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예주(醴酒)는 일종의 감주로 알코올 성분이 거의 없는 맹숭맹숭한 맹물과 같은 무늬만 술이었다. 특히 금주령을 어긴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무시무시한 칼날을 함께 들이 밀었으니 전국의 술고래들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사도세자가 술을 마셨다. 그리고 낙선당에서 술 냄새 풍기며 공부하던 모습이 영조에게 딱 걸렸다. 엄청난 질타와 함께 뒤주 속에 갇혀 죽는 사건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그날 영조32년 5월 1일, 낙선당에서 공부하고 있던 사도세자는 그 공간에 불을 질렀다. 왕세자가 공부하던 곳이 활활 불에 타올라 주변 시위하던 신하들이 조선시대 소방수였던 급수군(汲水軍)을 불러 불을 끄자고 했지만, 영조는 단 한마디만 했다. "置之!(번역:냅눠라!)"

사료를 보면, 사도세자의 주량은 초기에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후 사도세자의 폭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사도제자는 술과 함께 벌어진 수 많은 사건과 오해 속에서 급기야 뒤주 속에서 삶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우스갯 소리지만, 술 먹은 개구리가 만취하면 가장먼저 하는 말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야! 뱀 나와!"라는 우화가 있다. 상황을 봐가며 적당히 즐겨야 술술 넘어가는 술이지,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인지,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마시면 그것은 술이 아니라 독인게다. 술독에 빠지면 그 다음은 해마다 향내음 가득한 술잔만 받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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