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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아름답다
윤수천/동화작가
2016-08-12 08:48:45최종 업데이트 : 2016-08-12 08:48:4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젊은 시절에 지방 문학단체의 책임을 한 2년 맡은 적이 있다. 문학단체도 하나의 단체이다 보니 자연 치러야 할 연중 사업이 있었는데, 사업 가운데서도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사람을 모아서 하는 행사였다. 시화전 같은 실내 행사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일시에 참가하는 백일장 같은 야외행사는 특히 그랬다. 그날의 날씨 상태는 물론 행사에 필요한 천막과 앰프, 책상, 의자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기에다 참가 학생이 예상보다 많으면 당일에 마쳐야 할 심사와 시상 등의 어려움도 뒤따랐다. 

나는 그때 절실히 깨달은 게 있다. 문학은 혼자서 하는 외로운 작업이지만 단체의 이름을 걸고 하는 행사는 구성원의 단합이 없이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것이다. 해서 언젠가 회원들 앞에서 책임자의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회장의 입장에선 훌륭한 작품을 쓰는 회원도 고맙지만 행사가 있을 때 내 일처럼 달려와서 의자 하나라도 들어주는 회원도 감사하다고. 

그건 사실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만큼 고마운 일은 없었다. 더욱이 그 일이란 게 바쁜 시간 속에서 짬을 내야하고 땀을 흘려야 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나는 지금도 고마운 한 회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시인 K다. K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1시간 전에 나타나 플랜카드를 걸고 책상을 옮기고 의자를 나르는 등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한 번은 하도 고맙기에 설렁탕집으로 데려가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슴에 묻어 두었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더니 K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거였다. "어릴 적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어요. 몸으로 하는 일처럼 기쁜 일은 없다고요. 아버지는 소방관이셨어요. 20년을 불 끄는 일로 보내셨지요. 아버지의 몸에는 화마가 할퀴고 간 보기 흉한 자국이 여러 군데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흉터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저는 그때부터 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지요."

알고 보니 K는 봉사단체에도 가입해 격주로 요양 센터로 봉사를 나가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목욕도 도와주고 청소도 해주고 그야말로 몸으로 남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름다운 '인간 보석'을 보았던 것이다.

 

몸은 아름답다_1
사진/김우영

내 친구 가운데도 K 회원과 같은 친구가 있다. L이라는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L은 이사 전문 업체에 다니면서 라면 공장에 나가는 부인과 양친을 모시고 1남 1녀를 키우는 성실한 사회인이다. 집안이 가난하다 보니 친구의 애경사에 부조금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서 고민 끝에 머리를 짜낸 게 몸으로 부조를 하는 일이었다. L은 경조사가 있을 때면 부조금을 내는 대신 주최하는 집에 가서 어려운 일을 맡아하곤 했다. 즉 손님 앞에 음식을 나르는 일, 손님이 먹고 나간 뒤처리를 하는 일, 집안 정리를 해주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 등등. 

세상에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돈이 아니더라도 돈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런 경우 몸은 가장 정직한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짐수레가 간다./오르막길에.//수레 끄는 아저씨의 등이/땀에 흠뻑 젖었다.//가까이 다가가서/수레를 밀었다.//아저씨가 돌아다보며/씨익 웃었다./나는 더 힘껏 수레를 밀었다.'
 김종상의 '짐수레'란 동시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짐수레를 보자 얼른 달려가서 수레를 밀어주는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예쁜가. 아무 가진 것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동시 속의 아이는 보여준다. 또한 작은 힘도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이 동시는 보여준다. 

1958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하근찬의 단편소설 '수난 2대'는 인간의 몸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동아 전쟁에 끌려가서 한쪽 팔을 잃어버리고 온 아버지가 6.25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들을 기차역에서 만나 집으로 데려오는 이야기다. 
동네 입구에 다다르자 개울에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그때 아버지는 서슴없이 아들을 등에 업는다. 아버지는 한쪽뿐인 팔로 아들의 한쪽뿐인 다리를 꽉 움켜잡는다. 그러고는 다리를 무사히 건넌다.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이자 우리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삶의 거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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