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내 인생 가벼운 발걸음의 순간들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6-09-18 09:00:58최종 업데이트 : 2016-09-18 09:00:5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첫 번째. 육이오 동란 피난시절 하굣길

남포동에서 전차타고 영도다리 지나, 영도종점에서 내려 시장 지나오면 피난민 학교가 나온다. 피난민 학교라야 군용야전천막을 이용한 판잣집 모양의 엉성한 형태로 황토바닥에 긴 판자 책상, 의자 뿐. 천막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천막주위가 운동장이다.

나는 우리 반에서 두 번째로 먼 곳에서 통학하였다(첫 번째는 같은 방향의 얼굴 얽은 여자애). 전차통학 길에 가끔 영도다리가 하늘높이 들려, 다리가 제자리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전차가 출발했다. 하루에 두 번씩 들렸단다. 여기서 1학년 1학기 마칠 때까지 다녔다.

영도선 전차는 영도다리가 1934년에 준공되면서 이듬해 개통되어, 1968년까지 운행되었다고 한다. 종점은 남항동으로 영도전차종점기념비가 있다. 나는 남항동 종점에서 내려 남항시장을 지나 산 밑의 피난민 학교에 다녔으리라. 

전차는 차장(피난시절에도 제복, 모자를 착용하였는지는 기억에 없음)이 혼자 운행하면서 승객의 전차표를 받고 이를 반 뚝 끊어 운전대 앞에 걸린 직사각형 쇠 통에 넣는다. 재활용 방지다. 쬐끄만 나는 어른들 틈에 끼어 전차 타는 일도 큰일이다. 비 올 때는 알량한 비옷 때문에 더 힘들다. 더구나 승객이 많을 때는 어른들에 밀려 전차표를 쥔 채 입구의 차장을 지나치기가 일쑤다. 차표를 내기 위해 되돌아가기는 더욱 난감하다. 
이럴 때 주위 어른들은 차표는 그냥 집어넣으라고 일러둔다. 무임승차다. 이런 날은 주위도 기웃거리지 않고 빨리 집에 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종알종알 댄다. 남긴 전차표는 빈 성냥갑에 모아둔다.

두 번째. 군에서 제대하는 날

제대명령을 받고 제대일자에 맞춰 해안파견소대에서 중대본부, 연대본부를 거쳐 사단본부에 집결하던 날. 사단 내 여기저기 근무하던 훈련소 동기들을 만나 볼 수 있어 반갑던 날. 제대복을 입고 제 시간에 제대신고를 하고 제대증을 받으니 모두들 희희낙락. 집으로 돌아갈 꿈에 아무 생각 안 나던 날. 그런데 먼 시골집으로 귀향하는 동기생들은 차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너 차비 있냐?" 

몇몇 동기생들과 이야기하다가 제대할 때 귀향비가 지급된다는 사실을 긴가민가 알게 되었다. 혹시나 행정실에 들어가 주임상사에게 물었다. 
"귀향길이 먼 동기생이 있는데 혹시 귀향비 지급은 없습니까?" 
그리고 못을 박았다. "정문 헌병대에 물어보니 여기 가 보라고 합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각자 도장이 없어서 지급을 못했네." 
'환장하겠네'(마음속으로). 그날 우리 동기생들은 도장 값을 제외한 귀향비를 뿌듯하게 받았다. 발걸음도 가볍게 겸사겸사 기분 좋은 귀향길.  

세 번째. 비 오는 날 퇴근 길

버스가 수원역에 정차하자 동남아에서 온 듯 한 키 큰 외국인이 열린 버스 문에다 대고 서툰 우리말로 '백성병원' 하며 기웃댄다. 버스기사는 멍히 쳐다보며 고개 짓만 끄떡 하고. 마침 문 가까이 있던 내가 비어있는 앞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물어보니 수원에는 처음 왔다. 인도 뭄바이에서 왔다고 한다. "혹시 친구가 백성병원에 입원했느냐"고 물으니, 아니라며 뒤적뒤적 메모지를 내 보이며 씩 웃는다. 메모지에는 수원역, 백성병원 하차 그리고 인근의 기아빌딩 가는 약도가 그려 있다. 기아빌딩 4층 무슨 IT 회사에 인터뷰하러 간단다. 그리고 아무 말 없다. 인도인은 대부분 수다쟁이로 알고 있었는데 이 양반은 조용하다. 

말없이 여러 정거장을 지나 백성병원 가까이 왔다. 내릴 곳을 알려주려니 혼자 찾아갈 수 있을까 염려된다. 백성병원 앞에서 함께 내렸다. 나는 집까지 가려면 두 정거장은 더 가야 한다. 긴장한 인도인을 꽁무니에 달고 골목길 돌고 돌아-나도 처음 가는 길-기아빌딩 엘리베이터 앞까지 오자 키 큰 인도인은 이젠 됐다면서 연실 "땡큐, 땡큐"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다시 만나도 알아볼지 모르는 젊은 인도인이지만, 우산 쓰고 터벅터벅 집까지 걸어올 때에는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 '뭐, 내 몸이 가벼워 그렇게 느꼈을 리야'

 

내 인생 가벼운 발걸음의 순간들 _1
내 인생 가벼운 발걸음의 순간들 _1

'국민학교' 하굣길, 군에서 제대하는 날, 비오는 날 퇴근 길. 세월을 뛰어넘어 각기 다른 현실 속에서 나는 각각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프린트버튼캡쳐버튼추천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