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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의 추억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6-06-26 15:43:49최종 업데이트 : 2016-06-26 15:43:4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우리 가족은 육이오동란 피난시절 대구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아버지 직장이 부산까지 내려간 덕분(?)에 대구로 부산으로 피난하였던 모양이다. 부산 거주지는 바닷가, 지금의 남포동 부둣가였다. 집은 일본식 이층 목조건물이었고 시멘트블록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꽤 넓었다. 후에 이곳이 부속창고가 딸린 사택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국민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피난시절, 별다른 장난감이 없던 나는 마당에서 펌프놀이 간혹 부속창고를 놀이터로 삼았다. 

어느 날 밤 부산 국제시장에 큰불이 나서(기사를 찾아보니 1953.1.30) 밤하늘이 온통 불빛이고 불똥은 사택까지 날아올 것 같은 기세에, 걱정이 앞선 나는 괜한 펌프 물바가지만 들고 이리저리 어른들 꽁무니만 쫒아 다녔다. 

마당 한쪽 담장에는 바깥으로 통하는 커다란 출입문이 있었다. 창고를 출입하는 문이다. 문이 열려 있을 때에 창고 안을 둘러보기도 했다. 넓은 창고 안에는 가끔 커다란 볏짚포대가 가득 차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이들 포대들은 전시(戰時)에 각지에 배포될 국민학교 교과서 뭉치로, 운크라(UNKRA, 국제연합한국재건단)의 지원에 의한 것이라고 교과서 뒤표지 안쪽에 설명이 있었다. 

창고 출입문 맞은 편 담장 한쪽에는 어린이 키 높이에 어른 머리통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으로 들여다 본 상대편 또한 넓은 창고로 이곳에도 많은 볏짚 포대가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어른들에게 들어보니 포대는 마른 오징어 뭉치로 수출을 한다고 한다. 건장한 아저씨들이 불빛 없는 컴컴한 창고에서 웃옷을 벗어 제치고 뻘뻘 땀을 흘리면서 오징어 뭉치를 정리하는 모습을 구멍너머로 구경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아저씨들은 마실 물을 가져오라고 한다. 나는 마당 펌프에서 끌어올린 시원한 물을 몇 번이고 가져다주곤 했다. 아저씨들은 물을 마신 대가로(?) 빈 물바가지에는 언제나 큼직한 마른 오징어를 함께 주었다. 그 후 오징어 생각만 나면 담장구멍을 들여다보고 미리미리 물을 가져다주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굵은 철사를 납작하게 눌러 만든 조그만 가위를 가져 오셨다. 이게 웬 일이야, 즉시 가위 시험에 나섰다. 나는 창고에 기어들어 각지로 내보낼 교과서 포대에 달린 탁송 꼬리표를 힘겹게 요리조리 모두 잘라버렸다. 교과서 포대가 대혼란을 일으켰다. 나는 창고에서 쫓겨났지만 직원 아저씨들은 탁송표 다시 정리하느라 며칠 동안 힘깨나 들었을 게다. 앙증맞은 '철사가위'(가위 날은 2cm 정도 끝은 뭉뚝, 날 바깥 면은 볼록 총길이 6∼7cm의 아주 작은 수제품)는 서울환도 후 잃어버렸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는 어머니 혼수품인 '싱거' 재봉틀에 각종 노루발과 '재단가위'를 사용, 재봉하는 손재주를 발휘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손톱깎기가 없어 손톱, 발톱은 '재단가위'로 깎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깎아주는 것조차 귀찮아했던 개구쟁이였다. 개구쟁이는 점차 가위놀림이 숙달되어 스스로 손톱을 깎고 누나의 단발머리도 잘라 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하지만 오른손 손톱은 긴 채로 지내기가 일쑤였다. 왜냐하면 내 조그만 오른손은 영화 '가위손'의 '에드워드' 가위손보다 능숙하였지만 왼손 가위질은 영 서툴었기 때문이었다. 

 

'가위'의 추억_1
각종 가위들
,
'가위'의 추억_2
'문구가위' 작품 : 세계유일의 청바지 장정 1984년판 성경(헌금주머니 부착)

안데르센은 어릴 적 가위와 펜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가위로는 종이 오리기, 펜으로는 그림그리기를 하였다. 꼼지락 꼼지락거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철사가위', 재단가위' 외에 공작용 '함석가위'를, 그리고 틈틈이 만화그림을 흉내 내면서 지냈다. 장성해서는 직장과 연관된 실험용 '교배(交配)가위', '전정(剪定)가위', '적심(摘心)가위', 집에서는 취미생활용 '엿장수가위', 은퇴 후에는 강아지 '미용가위', 고양이 '발톱가위' 등을 섭렵하였으며 지금은 헌책 수선하는 ''문구가위'를 가지고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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