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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의 편지와 능행차
최정용/시인, 에코마린뉴스 대표기자
2016-09-30 14:01:44최종 업데이트 : 2016-09-30 14:01:4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가을이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줄' 편지쓰기 좋은 계절이고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기'도 좋은 시절이다.
그래, 가을은 편지의 계절이다. 이제는 전자메일과 SNS의 홍수 속에 사라진 손 편지가 첫사랑처럼 사무치는, 그런.

의기(義妓)가 수원의 여성성을 상징한다면 수원 남성성의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정조대왕(正祖大王)이 있다. 여자를 멀리하고 술과 담배를 즐겼던 정조, 이산. 정적(政敵)인 심환지와 이시수를 중심으로 한 노론 벽파와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견제 속에 단 하루도 정사(政事)를 편하게 볼 수 없었던 개혁군주.

그 엄청난 스트레스를 왕은 어떻게 풀었을까. 답은 술과 담배라고 역사는 기록한다. 신하들과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사발 같은 잔에 술을 가득 따라 권했고 결국 정조와 정약용을 제외한  대신들은 인사불성이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위인들은 두주불사(斗酒不辭)인가보다. 또 담배를 식물 가운데 최고로 칠 정도로 골초였다니 술과 담배의 두 날개로 탕탕평평정책을 펼쳤던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각설하고.

다시 이 가을, '정조의 편지정치'를 생각한다.
2009년 2월이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뒤흔든 충격적이 사건이 발생한다. 정조의 사생활이 담긴 친필 편지 299통이 발견된 것. 공식기록인 '승정원일기'나 '실록'과는 또 다른 '임금님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존귀한 자료'가 대량방출된 것이니 어찌 역사학계가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속물 같지만 경제적 가치도 상당해 경매에 나온 편지의 낙찰가가 12억 원으로 편지 한 통 가격이 400만 원 이상을 호가했다.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편지의 수신인 가운데 한 사람이 심환지라는 사실이다. 심환지가 누군가. 정치적 라이벌이자 노론 벽파의 영수로 사사건건 정조의 발목을 잡던 인물 아닌가. 그런 그에게 무려 6년에 걸쳐 편지를 보내다니.  충격이다. 짝사랑하는 대상도 아닌 정적(政敵)에게 '6년 동안 보낸 편지.' 나 같은 범부(凡夫)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도의 정치력'이다. 

내용과 형식도 파격적이어서 학계의 여진(餘震)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편지의 형식과 내용을 잠깐 들추면 이렇다.
편지는 모두 봉투에 담겨 있었다. 또 봉투의 봉한 부분에는 도장을 찍었다. 비밀을 유지하려는 방책으로 보여 진다. 이와 함께 '왕이 보낸 편지'라는 증명도 되니 정조의 치밀함을 보여주는 사례겠다. 

또 진솔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담긴 내용은 어떠한가. 한자로 쓰다가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한글로 쓰기도 하고 지금은 일반화된 'ㅋㅋ'이나 'ㅎㅎ'처럼 글의 끝자락에  '가가(可呵)'를 넣기도 했다. 한자 의성어로 '껄껄'이나 '낄낄' 쯤으로 풀이된다. 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심환지를 꾸짖거나 은혜를 베풀기도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감독관 자리를 소론에게 주지 않는다면 또 무슨 욕을 먹으려나, 可呵.'
'소식이 갑자기 끊겼는데 경은 그동안 자고 있었는가? 술에 취해 있었는가? 아니면 어디로 갔었기에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는가? 혹시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아 그런 것인가? 나는 소식이 없어 아쉬웠다. 이렇게 사람을 보내 모과를 보내니 아름다운 옥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겠는가?​'
'경은 갈수록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
'경을 생각 없는 늙은이라 하겠다.'
'부인은 다 나으셨나? 삼(蔘)을 보내니 약으로 쓰라.'
자신보다 스물두 살이나 많은 심환지를 조롱하기도 하고 부인의 병을 걱정해 약을 내리기도한 정조의 '편지 정치'는 심환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궁금하다. 

공식적으로 30년 정쟁상대였던 심환지가 정조가 승하(昇遐)하자 누구보다도 슬퍼했다는 것을 보면 마음을 움직인 것도 같고 정조의 독살설에 심환지가 관여했다는 정약용의 언급을 보면 아닌 것도 같고. 도무지 모르겠다. 정치적 견해와 인간적 끌림은 달랐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편지 정치'로 불리한 정세를 돌파하려고 했던 정조가 천도(遷都)를 꿈꾸며 만들었던 '수원화성'이 올해로 축성 22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수원시가 10월 7~9일까지 '제53회 수원화성문화제'를 야심차게 마련한다. 역대 최대·최고 수준으로 꾸미겠다는 각오를 지난 9월 28일 기자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정조(正祖)의 편지와 능행차_1
정조(正祖)의 편지와 능행차_1

그 중심에 220년 만에 완벽하게 재현하는 '정조대왕 능행차'가 있다. 8일부터 9일까지,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화성 연무대까지, 천도의 꿈을 안고 정조가 온다. 1795년 을미년, 정조는 수원화성행궁으로 오면서 얼마나 설레었을까, 생각느니 내 마음에도 덩달아 달이 뜬다. 정조가 이상국가(理想國家)의 출발지점으로 생각했던 수원화성 가는 길은 올해 이렇게 재현된다. '서울 창덕궁~한강 배다리~안양·의왕~수원 지지대 고개~화성행궁'. 45㎞, 시민 체험단을 포함한 참여인원 3천100명.

저 푸른 하늘에 정조가 있어 지금 후대들이 펼치는 능행차 재현을 지켜본다면 어떤 내용의 '가을 편지'를 보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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