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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雜草)의 계절
최정용/시인
2017-05-21 15:30:52최종 업데이트 : 2017-05-21 15:30:5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5월이다.
모든 생명이 가장 빛나는 계절이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도 세상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살아지고픈 계절이기도 하다. 그럴 수 있을까. 이들의 삶은 그 가능성으로 '가능'하게 만들 것 같은 용기를 준다. 잡초연구가 권포근 여사와 시인 고진하 목사 부부.

권포근 여사는 자연을 사랑하고 잡초요리에 관심이 많아 틈만 나면 식물도감을 끼고 산으로 들로 먹을 수 있는 잡초를 찾아 나선 선각자다. 시인인 남편과 함께 시골생활을 하며 잡초를 뜯어 먹고 사는 것을 그녀는 '행복'이라 부른다. 잡초를 인류의 미래 식량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그는 잡초요리책 '잡초 레시피'를 출간한 후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다. 

시인 고진하 목사는 낡은 한옥 불편당(不便堂)을 손수 고치며 텃밭을 가꾸고, 직접 부엌에 들어가 요리와 설거지를 하는 등 몸으로 사는 삶을 수행의 소중한 방편으로 여기는 영성이 충만한 영혼이다. 잡초처럼 '흔한 것이 귀하다!'라는 철학을 시와 강의를 통해 전하고 있다. 매일 시골 들길을 걸으며 나비 한 마리, 풀꽃 한 송이에 깃든 우주의 신비로움에 탄성을 지른다. 대한민국 중견 시인으로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다. 시집으로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우주배꼽', '명랑의 둘레' 등이 있다. '영랑시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어느날 도회지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원주의 시골로 스며든 이들 부부에게서 한 시대를 먼저 살다 간 니어링(Nearing) 부부의 소박한 삶이 겹쳐지는 건 왜일까. 뉴욕의 삶을 떠나 버몬트 숲으로 들어간 스코트(Scott)와 헬렌(Helen). 텔레비전과 전화기, 세탁기 없이 모든 작업을 '몸'으로 실행하며 사랑하며 살았던 '우리 곁에 머물었던 성자(聖者) 부부.'

소유하거나 남기기보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살다간 스코트 니어링의 일갈(一喝)은 후세들에게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들어보자.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스코트 니어링의 말처럼 '소유를 떠나 인생의 진정한 가치 실현'을 권포근·고진하 부부는 '잡초(雜草)'를 통해 이루고 있는 듯하다.
하긴 세상 어디 신(神)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있으랴. 무지한 인간만 몰라 편을 가르거나 등급을 매겼을 뿐이다. 우리 곁에 있었던 선골과 진골, 육두품 또는 저 멀리 인도의 카스트까지. 그리고 '장미' 운운하며 지지율에 목을 맸던 이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도.

권·고 부부는 구분 넘어 세상 낮은 모든 것들로 취급되던 생명, 잡초에 가치를 부여해 '신초(神草)'를 탄생시켰다. 그 결정체가 최근 출간된 '잡초 치유 밥상(마음의 숲 刊)'이다. 이들 부부는 무언(無言)의 언어를 간직하고 있는 침묵의 생명, 잡초에 손을 내밀어 우주의 신비를 지상으로 가져왔다. 하여, 그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건 우리에게 축복, 아닐까.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삶을 사는잡초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삶을 사는잡초

너무 흔해서 그냥 지나쳤던 잡초 속에 담긴 비밀을 발견한 혜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다.
방사능과 중금속, 화학물질에 오염된 몸을 해독해주고 미세먼지, 스마트폰 전자파, 공해, 스트레스, 화 등에 노출되어 또 다른 건강을 위협받고 사는 현대인들의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연금술을 잡초는 부릴 수 있다고.
찬란한 5월, 권·고 부부처럼 들로 산으로 다녀야겠다. 혹, 무지하고 미천한 나 같은 범부(凡夫)에게도 잡초라는 좋은 스승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아지는 세상, 그래서 아름다운 5월이기를 바란다. 잡초들이 신초가 되듯, 많고 흔해 개·돼지 취급받던 국민들에게 5월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부디 다르기를 빈다.

잡초 비빔밥/고진하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고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 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 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 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위에 나부끼나니.​

잡초, 고진하, 권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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