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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 추억
최정용/시인·에코마린뉴스 대표기자
2016-02-01 11:34:12최종 업데이트 : 2016-02-01 11:34:1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소년은 명절이 싫었다. 

이른 새벽 눈 비비며 일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 찬 공기에 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뿐이랴. 그런데 정말 싫었다. 강원도 강릉의 겨울은 너무 춥다. 미친 눈은 1m 가까이 올 때 도 있고. 내가 태어난 속초도 그랬지. 다른 지역에서 봄을 기다리던 시절, UFC처럼 니킥(knee kick)이 왔다. 느닷없는 눈발이었다.

다시 그 기억.

할아버지들이 앞장섰다, 그 겨울 길. 설날 전후로 대부분 순례였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겨울 눈 길을 걸으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이 순이다. 장자(長子)가 앞서고 그 뒤를 아우들이 따랐고 그 자식들은 귀마개를 하고 따랐다. 손자들은 덤이다. 총총걸음이었다. 세상은 아직 밝지 않았고 걸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른 손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새 해는 그렇게 밝았다.  
돌이키면 부친(父親)은 지금 내 나이쯤이리라.

걸어서 조상에 닿는다고 생각했을까. 그 걸음은 숭고했다. 이제는 조상(祖上)과의 연대가 연해진 까닭일까. 지금은 걷지 않고 그들에게 이르는 길은 멀다. 뉘라서 그 길을 마다할까. 그대도 나도 가야하는 길. 쉽지 않은 길, 허나 가야할 길. 접자,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이름.

어쩌면 서산대사도 그랬으리라.
그 길을 김구 선생도 김대중 전(前) 대통령도 따랐다니.
슬쩍 올린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踏雪野中去)
발걸음 하나도 어지러이 마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는(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遂作後人程)' 

설의 추억_1
설의 추억_1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알려진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가르침은 받아들이는 사람만 새기는 덕목이리라.
그 이야기를 알지도 못하던 나이에, 까까머리 소년은 10리(里)길을 걸었다. 왕복 20리(里)다. 강원도 강릉 섬돌-아는 사람만 아는-의 추억이다. 갓과 건을 쓰고 새벽길을 걷던 그 분들은 지금 구천을 지나 유림(儒林)의 무덤에 쉬시겠다.

그리고 닿은 곳에서 위패를 향한 간절함이 이어졌다. 조상의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 '유인(孺人)'이었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제사의 품목이 유교의 전통이었으니, 그래도 좋았다. 피붙이들이 모였으니까. 종교가 인류를 행복하게 한 적이 없으니, 그러리라. 멋모르고 과식(過食)했던 큰댁의 떡국은 아직도 배 안을 유영한다.

갓을 쓰고 걸었던 그 어르신들의 뒤를 따라다닌 그 시절. 발뒤꿈치만 보이던 기억. 추워서 참 싫었던 어둠. 귀 볼을 베고 가던 바람. 어른이 되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철없는 결기. 설날은 어둠에서 시작해 해를 안고 왔다.
그 새벽이 가뭇하다. 아련하다. 부친의 연세에 내 나이가 서 있다. 후대에게 무엇을 전해줄까, 막막하다. 전통(傳統)을 잊었다.    

소설가 이외수의 표현을 빌리면 수 만개의 바늘이 살갗을 찌르던 그 추운 겨울날 어린 손자의 손을 끌고 족보를 펴들고 몸으로 삶을 가르치던, 최춘영(春泳), 우영(禹泳), 최명방(明邦, 권오춘(五春). 그 어르신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이을 수 있을까, 힘들겠다.

설을 맞으며, 
소년은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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