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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노래’를 뒤척이며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6-01-25 11:08:03최종 업데이트 : 2016-01-25 11:08:0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요즘 가지고 있는 책을 한 권 한 권 정리하다보니 시집들이 몇 권 눈에 띈다. '사랑이 가기 전에'(조병화 1957), '소녀의 노래'(장만영 편 1958), '사슴의 노래'(노천명 1958.6.15), '소녀의 기도'(이설주 편 1961) 등으로 뒷장에는 어김없이 누님의 여고시절 펜글씨 서명이 있다. 여학생들은 사랑, 소녀 등 단어에 가슴 설레느라 한번쯤 문학소녀로서의 꿈을 갖는가 보다. 
하지만 누님은 글 솜씨보다는 그림을 잘 그렸다. 나중에는 서예도 하였지만 모든 것을 접어두고 평범한 분야를 전공하더니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갔다. 나는 시작(詩作)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각나는 것이라야 통영출신 청마 유치환의 '깃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한 문장이다. 단지 문학인들의 이름은 호와 더불어 무척이나 많이 기억하였다. 대학입시에 대비하여. 

이들 시집들은 여느 소설책처럼 크고 두꺼운 분량이 아니고 어른 손바닥만 한 책들이다. 어쩌면 누님의 손때가 묻어있어 무턱대고 간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휩쓸려 나가지 않은 생존이 신기해서 작가 정신을 찾아본다. 
조병화의 '사랑이 가기 전에'는 책 후기에 '외로운 사람들의 목소리엔 항시 신비스러운 우리들의 말들이 묻어 나온다'. '이 지독히 외로운 연대를 나와 같이 지나가는 불행한 사람들이 잠시 물을 마시러 머물다 돌아가는 여숙(旅宿)이 되었으면 하는 정이었다'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들은...내 인생의 있어 하나의 절정의 노래이다' 라고 하여 일제강점기와 분단현실을 살아가는 그 시대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안과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동시에 작가의 고독을 승화시키고 있다.    

아직도 누님의 단풍잎이 책갈피에 끼어있는 노천명의 '사슴의 노래'는 작가의 운명을 풀어놓은 것 같아 처절하다. 김광섭이 쓴 서문에 '작년 6월엔 천명이 슬프게 갔고 금년 6월은 천명의 1주기가 되었다' 하고 '사슴의 노래'는 그의 1주기를 맞이하는 날 홀로 나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정확한 작가의 생몰 일자를 찾아보니 네이버 인물정보, 네이버캐스트, 인터넷두산백과, 인터넷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 모두 1957년 12월10일에 별세한 것으로 표기되어 서문의 작고시기와는 상이하다. 신문 검색결과 경향신문 1957년 6월 17일자 기사에 그의 별세는 1957년 6월 16일 새벽 1시 30분으로, 즉각 해당 사이트에 메일을 보냈다. 위키백과는 1957년 6월 16일로 정확하다. 탄생년도는 1911년, 1912년, 날짜는 9월 1일, 9월 2일로 구구하다. 위키백과는 1911년 9월 1일로 각주 문헌을 구비하였다.  

'사슴의 노래'를 뒤척이며 _1
'사슴의 노래'를 뒤척이며 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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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노래'를 뒤척이며 _2
'사슴의 노래'를 뒤척이며 _2

노천명은 진명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에 재학하면서 '밤의 찬미', '단상', '포구의 밤' 등을 발표하고 졸업 후 기자생활을 한다. 그리고 시집 산호림(1938), 창변(1945), 별을 쳐다보며(1953)를 출간한다. 첫 시집에 수록된 '사슴'에서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은 물속 그림자를 들여다보면서 예전에 누렸을 아름다운 생활을 생각해 낸다. 작가는 그때마다 떠오르는 그리움을 어찌할 수 없어 먼 산을 바라본다. 긴 목은 그럴수록 더욱 가냘프고 슬프다. 작가의 운명적인 모순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기야 황해도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다 말년에 양녀를 데려다 생활하였다 한다. '사슴의 노래' 원고를 정리한 조카 최용정은 '이 책을 내면서'에서 아주머니는 운명을 두려워하였고 짧았던 인생은 후반에 더욱 처참하고 불행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고적(孤寂)은 오히려 본연의 자기에 서게 하였고 마음의 평정, 생의 참된 복을 가지게 하였다고 회상한다. 

'내가 걸어가는게 아니오 밀려가오' '말도 안 나오고 눈 감아버리고 싶은 날이 있소'. '할머니 내게 레몬을 좀 주시지, 없음 향취있는 아무거고 곧 질식하게 생겼오!' '사슴의 노래' 말미에 있는 '나에게 레몬을'이다. 그는 진즉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최용정이 찾아낸 원고 뭉치에는 마침 서명(書名)과 목차가 꾸며져 있어 유고시집 '사슴의 노래'를 출간하는데 편집의 수고는 덜었다고 한다. 
시집에 실린 '나에게 레몬을'은 작고 하루 전 세계일보 문예란에 실렸다고 한다. 고인의 애절한 유언인 셈이다. 모윤숙은 서문에 '날 때부터 외로운 여자, 살면서 인생을 자기 언덕에서 눈물에 혼을 적시면서 혼자서 적막하게 인생을 걸어간, 그리고 그만 그를 놓쳐 버렸다'고 술회한다. 그는 자신을 사슴에 비겨 사슴처럼 살아왔다고 한다.     

학창시절 조종현, 윤오영, 손동인 그리고 김계곤, 김우종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에게서 배움을 받았지만 시문학보다는 이마동, 유영필 등 미술교사의 행보에 더 관심이 쏠렸다. 시는 조계종 스님들의 법어와도 같은 맥락인가 생각하기도 하고 어쩌면 신들린 무당의 외침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진즉 관심을 갖고 빠졌어도... 6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이제야 누님을 통해 뒤척인다. 이참에 누님한테 전화라도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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