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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강
최정용/시인, 에코마린뉴스 대표기자
2016-06-13 09:49:15최종 업데이트 : 2016-06-13 09:49:1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것도 벌건 대낮에 말입니다. 이미 목소리는 '갈 지(之)'로 걷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친구 하나 보냈다." 30년 지기가 사고로 세상을 등졌답니다. 혼자 살던 친구라 제수씨가 반찬 등을 많이 챙겨줄 만큼 소위 '절친'이었던 겁니다. 
친구의 가족은 먼저 떠난 친구가 건너지 못할까, 요단강 보다 더한 눈물을 흘렸겠지요.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며 "내가 감당할 몫이니까 괜찮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습니다. 슬픔이 그대로 밀려와 가슴에 커다란 돌이 하나 쌓입니다.

밖으로 나와 눈이 부신 햇살에 기대 '죽음'을 생각합니다. '눈부신 청승'입니다. 그 친구와 나눈 '삶도 죽음도 찰나(刹那)'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찰나. 극히 짧은 시간을 일컫는 말입니다. 1찰나는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고 하지요. 절집(佛家)에서는 그 반대되는 개념으로 '겁(劫)'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죽음에 대한 최고봉은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序)'입니다.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大聖人)으로 불리는 파드마 삼바바가 쓴 경전입니다. 그는 8세기 인도 우디야나국의 왕자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출가합니다. 소위 '금수저'를 스스로 버린 셈이죠. 나란다 불교대학에서 전통 불교를 전수받고, 오늘날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두루 다니면서 여러 스승을 따라 수행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티송데첸 왕의 요청으로 티베트로 건너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그를 '제2의 붓다'라고 부릅니다. 

파드마 삼바바는 비밀 교법을 바위틈이나 동굴 등에 숨겨놓습니다. 파드마 삼바바의 경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티베트 사자의 서'는 14세기 카르마 링파에 의해 처음 발굴됐고 20세기 초 옥스퍼드대학 교수였던 에반스 웬츠에 의해 서구사회에 소개됩니다. '연꽃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파드마 삼바바의 '티베트 사자의 서'는 한마디로 이렇습니다. '죽음을 잘 이해해야 삶을 잘 살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양면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6월입니다.
우리네 6월은 유난히 많은 죽음이 겹치는 계절입니다. 가까이에는 1987년 6월이 있습니다. 이한열입니다. 1987년 6월 9일의 기억입니다. 다음날 열릴 예정인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22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부 전경이 시위대를 겨냥해 쏜 '최루탄 SY44'를 머리에 맞은 것입니다. 
최루탄을 맞고 피흘리는 이한열을 같은 학교 학생 이종창이 부축해가는 장면을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이 촬영, 보도해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는 지금 더불어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군요. 서럽다고 말할 수도 없는 폭압의 세월.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었던, 하여 찰나이기를 매일매일 기도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 6월 25일은 또 어떤가요. 일요일 새벽 시작된 전쟁. '해방을 명분으로 치러진 맹목적 살육.' 남북한 모두 520여만 명의 한국인이 죽었고 미군 13만 명을 포함해 참전 16개국의 군인 등 외국인 100여만 명이 '불귀(不歸)의 객(客)'이 된 참상(慘狀). 1천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남겨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민족의 비극. 흡사 바둑의 패싸움의 돌로 추락한 것 같은 이산가족의 비애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수복지구인 강원도 속초에 있는 '아바이 마을(청호동)'은 전쟁의 상흔이 화석처럼 굳어진 곳입니다. 누가 있어 갈라진 혈육의 아픔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6월의 강_1
사진/김우영

대신할 수도 대신하지도 못하는 우리들의 6월. 찬란해서 더욱 슬픈 계절입니다. 
적어도 6월만은 호들갑 대신 경건함으로 보내시기를 제안합니다. 조국을 위해, 신념을 위해, 또 뜻하지 않게 죽어간 영혼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이한열의 추모곡으로 알려진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눈으로 부르면서 잡문(雜文)을 접습니다.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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