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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포화속에서 사라진 큰외삼촌을 추억함
최정용/시인,언론인
2015-06-01 08:49:40최종 업데이트 : 2015-06-01 08:49:4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65년 전이겠다, 1950년 1월 17일이었으니까.
박헌영 관저에서 열린 만찬장.
이 자리에서 김일성은 북한 주재 소련 대사인 스티코프에게 무언가를 계속 조른다. 잠깐 귀동냥을 해보자. 어라, 스탈린과의 면담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왜? 남침 문제를 다기 제기하고 논의하기 위해서다.

당시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이 중화민국을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한 것을 계기로 고무돼 있었다. 그에 힘입어 '남조선을 해방시킬 차례'라고 스티코프에게 강조한다. 덧붙여 '북한은 기강이 세워진 우수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까지 주장했다. 또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남한의 선제공격에 대한 반격만을 승인한 스탈린의 결정(1949년 3월)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1월 30일, 스탈린은 자신이 서명한 전보를 평양으로 타전한다. 이 전보에서 스탈린은 김일성의 불만은 이해하지만 '큰 일(전쟁)'에 대해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나친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일성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다.
이에대해 김일성은 스티코프와의 면담에서 4월 초에 자신과 박헌영이 스탈린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1946년 방문때처럼 비공식(비밀)으로 할 것을 제의했다. 

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탈린과 김일성의 회담에서 스탈린은 국제환경이 유리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북한이 큰 일을 치르겠다는데 동의한다. 단, 이 문제의 최종결정은 중국과 북한에 의해 공동으로 이뤄져야하며 만일 중국 공산당의 의견이 부정적이면 새로운 협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결정을 연기한다는 것에 합의한다.

스티코프와 김일성 및 박헌영과 만나는 자리에서 김일성은 마오쩌둥과의 면담계획을 밝혔다. 그 때가 5월 12일이다. 마오는 이두연 북한 주베이징 대사를 통해 '조선통일은 무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미국이 남한 같은 작은 나라 때문에 3차 대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미국의 개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은 마오와 면담하기 위해 5월 13일 베이징으로 출발하면서 1950년 6월께로 예정하고 있는 남침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라는 지시를 북한군 총참모장에게 시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5월 13일 베이징에서 마오와 만나 스탈린의 의견을 전달했다. 이와 별도로  스탈린은 5월 14일 마오에게 보낸 특별전문에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사람들의 제청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는 중국과 조선이 공동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고 중국동지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다시 검토할 때까지 연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마오는 모스크바로부터 전문을 받은 후인 5월 15일 김일성 및 박헌영과 구체적으로 의견을 교환한다. 김일성은 북한이 '군사력 증강/평화통일 대남제의/대한민국쪽의 평화통일 제의 거부 뒤 전투행위 개시' 등 3단계 계획을 밝혔고 마오가 찬성한다.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한반도 정세를 결정하는데 급물살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하나. '이들은 정말 자신들의 국민을 위해 일련의 일들을 진행시켰을까'이다.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권력욕과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전술이 더 먼저였을 것이다. 역사상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당대(當代) 백성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래저래 힘없는 백성들만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의 한 가운데로 내몰리는 형국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어 마오는 일본군의 개입 가능성을 물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일본군이 참전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미국이 2만~3만 명의 일본군을 파견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일본군의 참전이 상황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어떻게 해서라도 전쟁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그 의지를 불사르게 만드는 마오의 결정타는 이렇다. 미군이 참전한다면 중국은 병력을 파견해 북한을 돕겠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소련은 미국과 38선 분할에 관한 합의가 있기 때문에 전투행위에 참가하기가 힘들지만 중국은 이런 의무가 없으므로 북한을 도울 수 있다고까지 독려(?)한다. 참 잘하는(?) 짓들이다. 

김일성은 5월 29일 스티코프에게 4월 모스크바 회담시 합의된 무기와 기술이 이미 대부분 북한에 도착했다고 통보한다. 또 새로 창설된 사단들이 6월말까지 준비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군 참모장이 바실리예프 장군과 함께 마련한 남침공격 계획을 북한지도부가 승인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6.25 한국전쟁은 그렇게 준비됐고 벌어졌으며 현재까지 비극을 이어오고 있다. 전쟁이 지니는 최악(最惡)은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데 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결국 피해자로 귀결되는 한심한 놀이를 소위 정치 지도자라는 자들이 벌인 것이다.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들이 65년 전에 있었다. 

6월 포화속에서 사라진 큰외삼촌을 추억함_1
광교산 6.25 전사자 유해발굴지

그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아직도 분단은 진행형이고 분단1세대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들의 소원인 이산가족 상봉은 또 어떤 정치 논리로 이용될까.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미어지는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그 전쟁의 포화속에서 사라진 큰외삼촌은 살아계시기나 할까.
대를 이어오는 불행한 역사의 종지부는 과연 언제나 찍을 수 있을는지, 습하고 우울한 6월의 강을 잘 건너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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