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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지평을 위하여
윤수천/동화작가
2015-08-03 06:57:58최종 업데이트 : 2015-08-03 06:57:5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다 끝내 정신이상이 된 송철호의 노모가 등장한다. 노모는 하루 종일 벽을 향해 누운 채 "가자!" 만을 외친다. 그 목소리가 놀랍게도 우렁차기까지 한다. "가자!", 옛날에 살던 고향집으로 가자는 것이다. "가자!, 가자!". 이 소설에서 '가자'는 단순한 고향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남과 북이 동강나기 이전의 그 본래 상태로 가자는 것, 곧 통일을 의미한다. 

8월은 광복의 달이다. 일본의 압제에서 신음하던 우리 조국이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을 맞이한 달이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얼마나 기뻤으면 저런 구절이 나왔을까. 광복절 노래 가사는 절창 중에서 절창이다. 정인보 선생은 민족의 마음을 헤아려 저런 절창의 가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가사에 윤용하 선생의 천재적 작곡 솜씨가 얹어져 또 하나의 애국가가 탄생했다. 나는 광복절 노래만큼 잘 지은 국경일 노래가 없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날로부터 어언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엔 일제의 잔재가 완전히 걷히지 않은 채 유령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만큼 일제의 36년이란 세월은 잔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 스스로 수용하지 못했거나 용서하지 못한 '상처'도 있음을 자인해야 할 것이다. 소위 '친일'이란 딱지다. 문학이나 예술 분야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 상처는 지금도 간간이 비집고 나와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문학을 하는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너무 편견적인 잣대를 가지고 '친일'을 잰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존경받아야 할 작가와 작품이 폄하되는 불행한 일이 도처에서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한국문학이란 산맥이 보기 흉하게 비틀리고 말았다.

가야의 우륵은 악기를 만들고 작곡을 하고 음악을 연주한 예술가의 한 사람에 불과했다. 당시 그는 가야의 정치나 전쟁에는 거의 무관심하다시피 했다. 절대의 충성을 요하는 시대에서 그런 자세는 자칫 위험한 처지에 놓이기 십상이었는데도 우륵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잔치 자리에 가서는 음악연주로 참석한 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였고, 장례식에 가서는 슬픈 영혼을 위로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가야가 멸망한 뒤에도 살아남아 가야의 악기와 소리를 오래도록 남겼다. 그는 비록 나라를 위해 싸우지는 않았지만, 가야란 이름을 후대에까지 남긴 영웅(?)이 되었다. 이런 게 예술인의 기본적 자세가 아닐까 싶다.

한국문학의 지평을 위하여_1
한국문학의 지평을 위하여_1
이 땅의 작가들 역시 일제 36년의 세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본의 아니게 일본에 '협력'하는 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경우, 이를 싸잡아 친일로만 몰수는 없지 않겠는가. 6.25도 같은 경우라 여겨진다. 낮과 밤의 전세가 뒤바뀌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선량한 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이쪽에도, 저쪽에도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를 어느 편으로만 못 박는 일은 잘못됐다 할 수 있다.

8월을 맞으며 문득 생각난 게 문학계의 저 친일 문제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나 작가들이 한 때의 정치적 행보로, 그것도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저지른 것을 가지고 나라를 판 매국노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본다. 물론 윤동주 같은 애국 시인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인이나 작가만을 추려낸다면 한국문학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의 한국문학을 위해서도 손실이 되면 됐지 이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계간 실천문학 등에서 발표한 친일문학 작가를 적어본다면, 시인으로 김동환, 김안서, 노천명, 서정주, 유치환, 주요한 최남선 등이 있고 작가로는 김동인, 김소운, 이광수, 이무영, 유치진, 정비석, 채만식, 최정희 등이 있고 평론가로는 곽종원, 백철, 이헌구, 조연현 등이 있고 아동문학가로는 이원수가 있다.

광복 70주년은 세월의 깊이만큼 우리들 사고의 깊이도 깊어져야 하겠고, 용서와 포용의 폭도 더욱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가치를 지닌 작품과 작가에 대해는 일시적 정치적 행보만을 가지고 친일로 모는 것만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진정한 광복이 아닐까 싶다.
*본란의 내용은 e수원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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