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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윤수천/동화작가
2015-04-26 12:40:28최종 업데이트 : 2015-04-26 12:40:2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예식장 부근의 차도는 주말마다 차량의 물결로 러시아워를 방불케 한다. 이는 물을 것도 없이 결혼식을 보러 가는 하객들 때문이다. 차도만 그런 건 아니다. 인도 역시도 마찬가지다. 전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물결에 휩싸여 간다. 주머니엔 축의금 봉투가 들어 있다. 

드디어 예식장 건물이 나타난다. 앞서 결혼식을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 다음 번 결혼식을 보러 가는 사람들로 예식장의 출입문은 터져나갈 지경이다.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예식장에 들어서면 오늘의 결혼식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눈에 띈다. 내가 찾는 결혼식은 2층이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 보지만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발길을 계단 쪽으로 돌린다. 나이를 먹으면 계단을 오르는 게 그리 원활하지 못하다. 군대에서 공을 차다가 삐끗한 왼쪽 다리가 이런 때는 어김없이 불편하다. 걸음을 처음 배우는 아기처럼 조심조심 계단을 밟고 오른다. 

마침내 저만치 앞에 신랑 부모의 얼굴이 보인다. 평소와는 달리 두 분의 모습이 오늘은 꽃보다도 더 화사하다. 나는 그들 앞으로 가서 정중히 인사한다. "축하합니다. 얼마나 기쁘세요?" "감사합니다. 이젠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됐습니다." 신랑의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은 표정이다. 나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오늘 결혼하는 아들 나이가 자그마치 45세다. 옛날 같았으면 이미 중년으로 자식을 둬도 두엇은 뒀을 나이다. 그러니 입이 함박 만하게 벌어질 수밖에. 

하지만 이건 신랑의 아버지 되는 K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요즘 결혼하는 신랑 신부의 나이는 대체로 30대 후반이거나 40대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후손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해서 임신이라도 해가지고 오는 신부는 흉이 아니라 1등 신부다. 참 별나다 못해 희한한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이렇다.

이제 인구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떠나 한 나라의 걱정거리로 확대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 가다가는 고령 인구는 날로 느는 데 반해 젊은이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사회, 이는 두말 할 것 없이 국력의 쇠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 역시 어둡다. 각 지자체마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손을 낳을 의무가 있다고 본다. 이 의무는 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신 신과의 약속이란 생각도 든다. 식물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고 자손을 퍼뜨리는 것은 이 의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식물의 번식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홀씨로 번식하기, 땅속줄기로 번식하기, 기는줄기로 번식하기, 뿌리로 번식하기, 알뿌리로 번식하기 등. 그 다양한 번식법이야말로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손을 퍼뜨리겠다는 식물의 의지와 용기의 표상으로 보인다.

결혼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_1
결혼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_1

길을 가다 보면 딱딱한 시멘트 바닥 사이로 난 풀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절벽 위 바위 틈새를 비집고 꽃을 피운 야생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사막 한가운데서도 자신을 굳건히 지키는 선인장을 보았을 것이다. 그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생명력 앞에서 우리는 우주가 보여주는 경이와 신비를 동시에 깨닫게 된다. 자연은 이처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가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봄이 무르익고 있다. 나날이 온기를 더해가는 따뜻한 햇볕과 바람, 짙어지는 녹색의 푸름 속에서 온갖 생명들이 삶의 환희를 노래 부르고 있다. 봄은 잉태의 계절이자 생산의 계절이다. 무엇보다도 싱글인 청춘 남녀들에게는 짝을 짓기 딱 좋은 철이다. 외로운 나그네의 길에서 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이 특별하고도 위대한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는가.

'외로운/별 하나가/역시/외로운 별 하나와/만났다//세상에 빛나는 별/두 개가 생겼다//언제나 춥고/쓸쓸한 여자/사내 옆에 서서/오늘은/따뜻해 보였다.'
나태주 시인의 '결혼'이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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