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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지식 경영법
최형국/문학박사,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2015-02-23 08:45:20최종 업데이트 : 2015-02-23 08:45:2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정조의 리더십은 조선시대 국왕들 중 가장 탁월했다. 
그 핵심에는 경연(經筵)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경연은 일종의 토론식 논의의 장으로 국왕과 함께 당대의 지식인들이 고전 속에 담긴 풍부한 지혜를 서로 나누는 공간이었다. 
정조는 끊임없는 경연을 통해 성장하였다. 그 속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제왕학을 배운 것이다. 당대의 경연에 관한 사료를 읽어 보면 매 순간 정조의 날카로운 질문과 현실정치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경연 속에서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조의 지식 경영법_1
규장각도(奎章閣圖) : 정조가 역대 국왕의 시문을 비롯한 다양한 서적을 보관하기 위하여 1776년에 창덕궁 후원에 만든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의 모습이다. 이후 민생에 도움을 주고자 청나라를 비롯한 서양의 과학기술이 담긴 서적까지 수집하여 소장 도서가 3만여 권에 달했다. 정조의 지식 경영 기반은 규장각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첫 해(1777년)에 늦은 밤에 이뤄진 경연에서 논어를 읽다가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날 주제의 핵심은 그토록 강성했던 당나라의 군대가 철저하게 궤멸된 이유였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여 모든 물건과 지식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으로 모인다고 했을 정도로 당나라의 힘은 당대 최고였다. 
그래서 정조가 수원 화성의 북쪽문을 장안문(長安門)이라고 낙점한 것이기도 하다. 그 힘 역시 강력한 군대에서 나왔지만, 당나라 말기에는 지역의 반란을 수습하지 못해 백전백패의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당의 멸망을 부채질한 것이었다. 

정조는 진실로 궁금했다. 자신이 추구한 강력한 국왕권 역시 군사력을 바탕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 한계와 보완점을 미리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질문에 당시 시독관(試讀官), 즉 책을 받들어 읽는 관리였던 이재학(李在學)은 가장 먼저 대답하기를 "당시 국가경영을 책임진 임금의 의심병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전쟁의 선봉을 이끌 장수를 작은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아 임금이 믿지 못하여 자꾸 바꿔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는 중간에 신하들이 농간을 부려서 깨끗한 정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등 몇 가지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조는 세 가지의 당군의 패배 원인을 분석하였다. 
그 첫 번째는 임금이 기용한 장수를 스스로 의심했다는 것이다. 임금이 장수를 기용함에는 먼저 신중을 기하여 배치하되, 임명한 후에는 아무 의심없이 전장에 보내야 승패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군사와 관련된 모든 일은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가 전적으로 주관하고 통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군은 임금은 물론이고 입심이 좋은 신하들이 전장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군사를 이리저리 마음대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장수와 장수들이 서로 소통하며 전장의 상황에 따라 조화롭게 움직여야 함에도 각각 따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장수들 역시 주장(主將)의 지휘에 따라 전술행동을 펼쳐야 하는데, 휘하 장수들이 자신의 공을 드높이기 위해 독단적인 움직임을 감행해서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각각의 장수들 역시 주장이 직접 배치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치적인 이유로 낙하산식으로 내려 왔기 때문이다. 

경연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궁궐의 밤은 점점 깊어 갔다. 정조의 고민도 깊어 갔다. 조선후기 완성된 군사체제인 오군영의 상황이 당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이후 정조는 오군영의 한계를 뛰어 넘는 새로운 군대인 장용영(壯勇營)을 창설하고 진실로 믿음직한 조선의 군대로 거듭나게 하였다.  

정조는 지식을 단순히 머리 속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현실에 적용하려 애썼다. 돌처럼 굳어버린 딱딱한 지식이 아닌, 토론을 통해 현장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부드러운 지식 경영을 했던 것이다. 
고전에 담긴 지식과 철학은 오늘의 현실을 비춰 늘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고전의 힘이며, 정조의 지식 경영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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