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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도 좋은 연금이 될 수 있다
윤수천/동화작가
2015-02-02 07:56:16최종 업데이트 : 2015-02-02 07:56:1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추억도 좋은 연금이 될 수 있다_1
사진/김우영

내가 사는 수원은 성곽의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공원이 많은 고장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수원의 입문이라 할 수 있는 북문 옆 장안 공원을 비롯해 만석 공원, 효원 공원, 88 올림픽 공원, 광교 호수공원, 일월공원, 월드컵경기장 조각공원 등등, 크고 작은 공원들이 도시를 푸르게 꾸며주고 있다.

이들 도시 속의 공원을 찾는 이들 가운데는 운동가족을 위시해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도 많지만 한 세월을 살아낸 노인들도 적지 않다. 노인들은 주로 나무 밑에 모여 한담을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벤치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한창 젊었을 적엔 그런 노인들을 보면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 게 사실이다. 저렇게 할 일들이 없으신가. 매일 모여서 대체 무슨 얘길 저렇게 하시나. 그리고 저 벤치에 혼자 앉아 시간만 죽이시는 분들은? 딱해도 너무 딱하게만 보였다.

그러다가 H어르신을 만나 나의 이 잘못된 생각을 바꾼 게 어느새 20년이나 되었으니 세월 한 번 참 빠르다. 그날은 시내 초등학교에서 초대한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날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어린 학생들 그리고 일부 학부모들과의 만남을 마친 후 나는 머리도 식힐 겸해서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그날따라 공원은 노인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좀 떨어진 한쪽 구석에 놓인 벤치를 찾아 앉았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한 어르신이 나를 보더니 올해 몇이냐고 물었다. 오십 둘이라 했더니 한창 좋은 나이라며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기도 그런 호시절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지난날을 추억하는 즐거움을 가지고 산다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봐요, 선생. 추억도 좋은 연금이 될 수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연금?'

어르신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그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설명해 주는 거였다.
"물론 돈으로 받는 연금은 아니지요. 하지만 지난날을 추억하다 보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생의 보람과 즐거움, 행복을 돌려받게 된답니다. 후회스러운 것은 좀 더 인생을 값지고 아름답게 살아서 더 많은 액수의 연금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거지만, 이제 와서 그건 다 헛된 일이고...이 늙은이가 한 말 명심해서 부디 보람되고 멋진 인생을 사시오."
"어르신, 잘 알겠습니다. 전에 뭐 하셨는지는 모르지만...성함이라도......"
내 물음에 그는 껄껄 웃고 나더니 H라는 이름만 알려주고는 자리를 뜨는 거였다. 마치 내게 그 말을 전하려고 벤치에서 기다린 사람처럼.

그날 이후부터 나는 하루의 삶은 곧 노후의 연금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공원에 나와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다들 눈에 보이지 않는 연금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삶은 추억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 추억을 만들 것인가? 그건 곧 자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보람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노후에 행복한 연금을 받도록 하자.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다 도요는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여 99세 되던 해에 첫 시집을 세상에 내 놓았다. 그의 시 가운데 연금과 관련이 있는 재미난 시가 있다.
'나 말이야/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면/마음속에 저금해 두고 있어//외롭다고 느낄 때/그걸 꺼내 힘을 내는 거야//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연금보다 나을 테니까.'
'약해지지 마'란 이 시집은 발간 6개월 만에 70만 부가 팔렸고, 지금까지 150만 부라는 일본 출판사상 최고의 시집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자신의 삶과 애환을 담담한 필치로 노래하여 삶에 지친 일본인들에게 위로의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이다. 

오늘도 크고 작은 공원들이 우리의 도시를 푸르게 가꾸고 있다. 이들 공원을 찾는 도시인들 특히 한 세월을 살아낸 어르신들을 보며 생이 주는 '특별한' 연금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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