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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병들면 누가 고쳐야 하는가
최형국/문학박사, 수원문화재단 무예24기시범단 수석단원
2014-08-24 12:07:18최종 업데이트 : 2014-08-24 12:07:1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조선시대 국왕 중 의술에 가장 관심을 보인 국왕은 정조였다. 
할아버지이자 선왕이었던 영조의 환후를 지켜보면서 십여 년간 의학서를 옆구리에 끼고 독파를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혹시 모를 독살이나 병증의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국왕이었다. 심지어 조선후기 최고의 의서라 불리는'동의보감'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풀이한 의서인 '수민묘전(壽民妙詮)'을 직접 완성하기도 하였다. 

정조의 의학에 대한 관심은 백성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자신의 핵심 배후세력인 장용영의 군사들이 머무는 수원 화성을 건설할 때에도 직접 처방전을 만들어 성을 쌓는데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 탕약을 만들어 내려주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무더위와 고된 피로를 한방에 날려 보내는 척서단과 제중단이 바로 그것이다. '수민묘전(壽民妙詮)'의 첫 두글자가 '수민(壽民: 백성의 목숨)'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조의 의학은 단순히 '몸'과 그것을 살리는 기술인 '의술'에 머물지 않았다. 정조는 사람도 병이 들고 아프듯 나라도 병들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의학을 통해 깨달았다. 정조가 남긴 의서인'수민묘전'의 서문에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원래 의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사람 병 고치는 것이나 나라 병 고치는 것이나 그 원리는 똑같다.'

병든 나라, 아픈 나라는 곧 그곳에 사는 백성들이 아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병든 나라를 치료하는 것이 곧 정치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정조는 사람에게 생기는 병을 치료하듯 나라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그 서문에 자세히 언급하였다. 사람이나 나라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병의 근원을 알아내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디가 아프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그곳을 도려내고 후벼 파야 직성이 풀린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일종의 징후에 온 정신을 빼앗겨 냄비에 물 끓듯 바글바글 거리면서 문제 자체를 더 큰 문제로 비화시켜 끝장을 보려고 한다.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아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얕은꾀를 내어 그 순간을 모면하고자 한다. 그 순간만 넘어가면 모두들 그 고통을 잊으리라 생각한다. 

정조는 이를 철저하게 경계하였다. 아무리 신의 영역에 도달한 신의(神醫)나 의성(醫聖)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병의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이것저것 비슷한 치료법을 마구 남발한다면 결코 병은 치유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아픔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 의사는 더 이상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이는 자객인 것이다. 

조선의 18세기, 모두들 찬란한 문화융성의 시대라 찬양했지만, 정조의 눈에는 큰 병에 걸린 시대이기도 했다. 그 나라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애써야할 정치가들이 정조의 눈에는 미덥지 않게 보였을 것이다. 
'수민묘전(壽民妙詮)'의 마지막 문장에는 그런 안타까움이 묻어있다. 나라의 재정은 동이 나고 백성들이 곤궁에 빠져 병들었는데, 자신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탄식이 드러난다. 

나라가 병들면 누가 고쳐야 하는가_1
수원 화성 서북공심돈에 걸린 무지개:얼마 전 잔뜩 흐린 날 저녁, 화성에 겹무지개가 떴다. 무지개의 아름다운 빛깔이 화성을 감싸 안아 더욱 그윽한 느낌이었다. 저 무지개처럼 정치가들이 희망을 주는 그런 나라를 꿈꿔본다.

정조가 재위 말년에 '의학'이라는 학문에 더 집착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저 정치적 시류를 따라 흘러 다니며 달콤한 사탕발림으로는 조선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정조의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본질은 똑같다. 병든 나라, 아픈 백성을 치유하는 것이 정치가들이 해야 할 본연의 임무인 것이다. 당리당략을 넘어 그 중심에 백성을 담은 정조의 마음을 다시금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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